춘천사람들

미세먼지(2호)-그 분이 오실 때가 됐는데

아하 2015. 11. 14. 22:05

그 분이 오실 때가 됐는데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 게 미세먼지다.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한 건 초미세먼지라고 한다. 미세먼지를 피하려면 집이나 회사에 들어앉아서 문을 꽁꽁 걸어 닫고 고성능 공기청정기를 돌리는 수밖에 없다. 외출할 때는 고성능 미세먼지 전용 마스크를 쓰고 나가야 한다.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미세먼지를 피할 길이 없다. 마스크를 쓰고는 숨이 차서 일을 할 수가 없다. 기분 아주 더럽다. 어쩔 수없이 일은 하면서도 은근슬쩍 살해당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검색을 해 보면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날아 들어온다는 설이 있고, 한국에서 생긴다는 설이 있다. 어느 게 맞는지는 알 수 없고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이 계속되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왜 시골로 왔나 싶고 이 나라에 계속 살아야 되나 싶고 농사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싶고 오만 생각이 다 든다.

시골 살이의 꽃은 봄과 가을이다. 정말 살기 좋은 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하늘이 주신 축복으로 느껴지는 날, 가만히 있어도 아무 짓도 안 해도 아무 일도 없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웃음이 올라오고, 하루 열여덟 시간을 몸으로 일해도 지치지 않는 날들이 있다. 일 년 다 해봐야 며칠 안 된다. 빌어먹을 미세먼지가 꼭 그런 때에 온다. 축복의 시간에 재를 확! 뿌려버린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건 최근 3년이다. 내가 짓는 애호박 값이 뚝 떨어져서 바닥을 기는 것도 최근 3년이다. 애호박 값이 올라가려면 태풍이 와야 한다. 산이 없는 평야지대 애호박 밭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야 겨우 산간 벽지 애호박 농사꾼들이 일 년 먹고 살 밑천이 생긴다. 농민 심보 고약타고 탓할 것 없다. 구조적인 문제다. 누군가 망해야 내가 산다. 여름이면 모여 앉아 태풍을 기다린다. “그 분이 오실 때가 됐는데...” 야속하게도 3년 동안 태풍다운 태풍이 한 번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미세먼지도 태풍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먼지를 확 한번 쓸어줘야 하는데 말이지.

위기다. 환경 재앙은 이미 시작됐다. 사회적 위기도 그렇고 자연이 몰고 오는 재앙도 그렇고 위기는 항상 강한 것들이 만들고 약자부터 거꾸러진다. , 그럼 나는 이제 비장하게 쓰러질 각오를 하자.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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