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13

친환경 농사꾼에게 속박이를 허하라

친환경농민에게 "속박이"를 허하라백승우(농부) *이 글은 대산농촌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2014년 몇월혼가에 실은 글입니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호미귀신은 한 번 붙으면 절대 안 떨어진다고들 하신다. 농사에 한 번 맛을 들이면 영영 끊을 수 없단 말씀이다. 호미 귀신의 흔적은 도심에서도 발견된다. 조그만 땅이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대파나 상추, 고추 따위가 심어져 있고, 아예 시멘트나 벽돌, 아스콘 등이 흙을 남김없이 뒤덮어버린 데라도 커다란 화분이 조각 밭을 대신해 서있다. 때맞춰 씨앗을 뿌리고 정성들여 가꾸며 돌봐주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거둬들여서 낼름 먹어치우는 그 맛은 매우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이 일은 인류에게 아주 익숙하고 오랜 것이다. 최소한 1만여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살아가는 데..

농사 2015.02.28

귀농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하나요?

[전원생활 2006년 12월호에 쓴 글] 귀농하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요? “자네 부자 됐다면서?” “예? 무슨 말씀이세요?” “땅 사가지고 간 게 값이 많이 올랐다면서?” “예에~. 무슨 말씀이시라고. 오르긴 올랐어요.” 4년 동안 살다가 떠난 고성리에 가니 벌써 소문이 다 났습니다. 절대 빚은 지지 않겠다는 불문율을 깨고, 정부에서 시골로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정책자금(취농창업후계자자금)을 받아 땅을 샀는데 갑자기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빚을 내서 땅을 살 때,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농사지어서 과연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 3천 평이 넘는 땅을 농기계 하나 없이 다 지을 수 있을까, 빚낸 돈이 조금 모자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쓸어 모아서 땅 사는데 써버렸는데, 무얼 ..

귀농 2012.05.29

겨울이 길어서 좋아라

[2006년 11월 전원생활에쓴 글] **사진 시골로 내려오던 첫해 가을에 젖 떼자마자 데려다 키운 라는 로마황제처럼 긴 이름을 가진 우리 복슬이.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녀석을 어쩌나’ 싶어 시골을 뜨지 못 했습니다. ** 겨울이 길어서 좋아라! 이사하면서 원래 살던 형님께 여쭤봤습니다. “겨울에 기름은 얼마나 들어요?” “두 드럼 가지면 될 거다.” “두 드럼요? 얼마 안 드네요.” 이렇게 해서 저는 춘천에 사는 4년 동안 겨울에 실내온도 5도로 겨울을 나게 됩니다. 한 달에 두 드럼쯤 든다는 얘기를, 겨우내 두 드럼 드는 걸로 알아들은 거지요. 강원도의 겨울은 춥고 깁니다. 상강 전에 서리가 내리고, 입동 전에 얼기 시작해서 이듬해 춘분쯤 되어야 언 땅이 녹으니, 다섯 달은 겨..

귀농 2012.05.29

아름다운 사람들, 귀농자들

[2006년 10월 전원생활에 쓴 글] ** 사진 설명 :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을 초청한 ‘송화초등학교 아이들 공부방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에서 송화초등학교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 아름다운 사람들, 귀농자들 유기농산물의 경우, 원활한 유통망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이 직접 나서서 농산물을 유통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강원유기농유통사업단’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00년에 이미 강원도 춘천, 화천, 양구, 홍천 등지에서 유기농업을 하시는 분들이 힘을 합쳐 연합체를 만들고 유기농산물을 유통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는데요, 경영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몇 년 동안을 적자에 허덕여야 했는데, 작년에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하신 우평주님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귀농 2012.05.29

풀, 지구를 지키는 전사

[전원생활 2006년 9월호에 쓴 글] 풀, 지구를 지키는 전사(戰士)! 농사짓는 귀농이라면 마땅히 풀에 대해 경외(敬畏)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들 하는데요, 이게 상당히 뻥이라는 걸 주말농장이라도 해 본 분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그저 콩을 심어도 풀이 나고 팥을 심어도 풀이 납니다. 냅두면 풀밭이 되지 절대 콩밭이나 팥밭이 되지 않습니다. 풀은 정말 인간이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위대한 생명체입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인류가 발전시켜온 문명이라는 게 풀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입니다. 풀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하고 잘 자라는지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유월에 잠시 방심하면 유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우기..

귀농 2012.05.29

땅이 주는 위안과 평화

[전원생활 2006년 8월호에 쓴 글] ** 벌써 10주년을 맞은 전국귀농본부. 전북 정읍에서 이사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맨 왼쪽이 귀농운동본부를 창립하고 이끌어 오신 이병철 상임대표. 땅이 주는 위안과 평화 춘천으로 들어와 첫해에 주력했던 농사는 깻잎입니다. 얼음이 녹자마자 잎들깨 씨앗을 상토에 넣어 모를 키우고, 언 땅이 풀리면서 본밭에 퇴비 뿌리고, 갈고, 로타리 쳐서 어린 모를 심었습니다. 이제 슬슬 전문용어가 나오죠? 상토는 뭔가 하면 한문으로 쓰면 상토(床土)로 모판에 넣는 흙을 말합니다. 모판은 모를 길러내는 판이지요. 농사꾼이 농사를 지을 때, 논밭에 바로 씨앗을 뿌려서 재배하는 방법도 있고, 모를 미리 길러서 어느 정도 크면 밭에 옮겨 심는 방법도 있습니다. 모를 미리 길러 옮겨..

귀농 2012.05.29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도 않게

[전원생활 2006년 7월 호에 쓴 글]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도 않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남 화순에서, 시골 내려가면 꼭 해보고 싶었던, 거의 대부분의 일을 다 해보았습니다. 꿈같은 1년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아직도 농사지을 땅도, 집사람이랑 편안하게 지낼 집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 문제, 예를 들면 함께 지내던 사람들과의 불화, 경제적인 곤궁, 안사람의 불평 등등 많은 문제가 겹쳐서 서울로 다시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보니, 벤처 열풍이 온 도시를, 온 나라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였습니다. 한 몫 잡은 사람들은 졸부가 되어 있었고, 한 몫 못 잡은 사람들은 신세한탄을 하며 어떻게 해야 단단히 한 몫 잡을 것인지 암중모색 하고 있는 걸로 보였습니다..

귀농 2012.05.29

시골 가면 뭐 하고 싶으세요?

[전원생활 2006년 6월호에 쓴 글] 사진 : 간동면에 하나뿐이던 오음리 약국이 간판을 내렸다. 약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쓸쓸히 앉아 계신 모습이 마치 지금 시골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 시골 가면 뭐 하고 싶으세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화천군 간동면입니다. 구만리부터 간척리까지 열두 개 리(里)가 길게 늘어서서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그 중심에 오음리가 있습니다. 오음리에 약국이 하나 있었습니다. 면 단위에 약국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요. 그런데 지난 겨울 약국을 지키시던 할아버지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약국집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고 몸이 불편하셨습니다. 손님이 약국 문 열고 들어가면 판매장과 연결된 안쪽 살림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시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귀농 2012.05.29

생태공동체, 그 아름답고 허망한 꿈

[월간 전원생활 2006년 5월에 쓴 글입니다.] 생태 공동체, 그 아름답고 허망한 꿈 실패한 공동체 실험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원칙으로 이러저러한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연하게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공동체였습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가수리 만수동 골짜기에 여덟 사람이 모였습니다. 여덟 사람이라고 하면 당시 거의 그 마을 전체 인구 삼분지 일에 육박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상주하는 사람이 여덟에 두세 달 머물다 가는 분들이 끊이지 않아서 집에는 늘 열 명 이상의 식구가 복닥거렸습니다. 귀농하려는 분들이 흔히 혼자서는 좀 막연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해서 누군가와 함께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어울립니다. 술 한 잔 같이 하면 마음이 탁 ..

귀농 2012.05.29

들어나 봤나? 부역

[월간 전원생활 2006년 4월에 쓴 글입니다] 들어나 봤나요? 부역(賦役)이라고! 시골로 내려와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동네 아저씨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어쩐 일로 우리집까지 다 찾아오셨어요?” “응, 동곡 걷으러 왔어. 자네도 이제 동네 주민이 되고 했으니까 당연히 동곡을 내야지.” “예? 동곡요?” “응, 한 집당 두 말씩이여.” 도시에서 갓 내려온 신출내기는 응당 내는 거라니까 그냥 내기는 하지만 뭔가 찜찜합니다. 동곡이 뭔가 싶어서 사전을 찾아봐도 안 나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됩니다. 동곡뿐만 아니라 부역도 있습니다. 부역이란 국가나 공공 단체가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지우는 노역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아, 아, 용호리 이장..

귀농 2012.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