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부탄3. 박환영님의 1999년 부탄 여행기-부탄의 문화 민속 엿보기

아하 2016. 3. 29. 23:22

절판된 책이었다.

박환영 지음, 지구상의 마지막 샹그리라 부탄의 문화 민속 엿보기, 민속원, 2001.

정가는 12,000원.

중고 책방을 뒤지니 중고책값 15,000원. 그나마 딱 한 권뿐이었다.

 

"엿보기"라고 해놔서 볼 생각이 없었다. 

똑바로 봐도 시원찮을 판에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엿보기라고 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사서 읽었다.

<2001년>이 가지는 무게 때문이었다.

부탄에 대해 떠들썩해지기 전에

한국 사람이 거기에 가서 거기를 보고 쓴 글이라서, 걍 무조건 보기로 했다.

 

글은 그저 조금 고리타분하고 그저 그렇게 무난한데

쉼 없이 쏟아지는 그노무 "필자"라는 단어 때문에 읽는 내내 피곤했다.

왜 글 쓰는 자가 "자기"를 가리키는 말을 "나"라고 안 하고 "필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아~~~주 싫다. 말 느낌이라도 좋으면 봐주련만 필. 짜. 이런 거친 소리다.

 

유장한 훈계조의 사설은 휙휙 건너 뛰면서 "사실"에 대해 기술한 부분을 주의 깊게 봤다.

 

# 이혼

부탄 사람들은 이혼이 흔하다고 한다.

이혼이 마치 인생의 실패인 것처럼 혹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나라는

아무래도 한국뿐인 것 같다.

이혼한 부부도 친구로 오래오래 잘 지낸다고 한다. 남편이나 아내의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여성들이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고 활동력도 강해서 부모들은 절에 가서 딸 낳게 해달라고 빈다.

남자가 여자네 집으로 장가 드는 일이 많아서

장인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주요한 이혼사유다.

 

화천현장귀농학교 박기윤 교장샘한테 이 얘기를 했다.

"형, 남자들이 우위를 차지하는 영역은 그래서 종교밖에 없대요."

박샘이 즉각 답했다.

"종교는 남성 우위로 굳어진 채로 수입돼서 그럴 거다."

대단한 직관이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나는 주로 자료를 있는 대로 긁어 모으고 분석하고 종합해서 사태를 판단하려는 성향이 강한데

박샘은 통찰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책에 나와 있는 너절~하고 별로 설득력 없는 설명보다 짧고 간결하고 바르고 산뜻한 해석이다.

부탄에 불교가 전해진 건 8세기였다.

 

# 민족 문제

부탄 사람들은 전체 인구가 75만명 정도밖에 안 된다.

나무늘보나 팬더처럼 위태위태해 보인다. 

멸종하지 않고 자기정체성을 지키면서 앞으로 쭉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보기에도 위태위태해 보이는데, 자기들 입장에서는 훨씬 더 그럴 것이다.

게다가 바로 옆에 있는 시킴 왕국이 스르르 사멸해버리는 모습을 봤다.

시킴 왕국은 인도로 흡수되어버렸다. 

 

늘 자기 정체성의 위협을 느끼는 부탄사람들은

슬금슬금 남쪽 지역으로 기어들어와 땅 개간하고 겨우 자리 잡고 살고 있는 네팔 사람들을

국경 밖으로 다 내쫓아버렸다.

당연히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1988년~1993년 일이다.

쫓겨난 사람들 수가 자그마치 10만에 육박한다고 한다.

쫓겨난 사람들은 네팔 남동쪽 자파 지역에 거대한 난민촌을 이루고 있다. 

 

# 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건 이 정도였다.

그리고 부탄과는 별 상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아주 뜻밖에 이런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마이클 아리스 교수는 부탄에 5년(1967~1972) 동안 머물면서

부탄 왕실의 개인교사로 일했으며,

부탄 정부의 공식적인 번역가 그리고 부탄사 연구가로 활동했다.

또한 그는 버마 민주화 운동으로 1991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키의 남편이기도 하였다."(38쪽) 

 

그러니까 지금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남편 때문에

대통령이 못 되고 있는 거였다. 우습다.

 

마이클 아리스 교수는 1999년 급성 뇌암으로 죽었다.

 

# 문자와 언어

부탄 사람들은 문화와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문화와 전통의 으뜸은 문자와 언어다.

그런데 글자를 보면 자기들의 말(종카어)을 글로 옮기면서 영어 알파벳을 빌려 쓰고

영어를 공용어로 해 놓았다. 1960년대에 벌어진 일인 것 같다.

관혼상제례와 의식주를 다 서양, 특히 미국한테 내줬어도

그나마 말과 글이 있어서

나름 독자적인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있다고 우기며 버티고 있는

궁색하기 짝이 없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에도,

"저것들은 뭐 저따위냐?"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래도 괜찮은지 궁금하다.

부탄에 가면 괜찮냐고 꼭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