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

그러니 악플을 두려워 말자

아하 2012. 3. 30. 00:13

자공이 질문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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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blog.daum.net/lovechaste/8825826?srchid=IIMA3zXa10#A1262DF01497985E8BB3790&srchid=IIMA3zXa10

 

주자의 주석에는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 또한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 행(行)에 구합苟合(迎合)이 있으며, 반대로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이 미워하고 마을의 선한 사람들 또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行)에 실(實)이 없다 하였습니다. 



구합은 정견없이 남을 추수(追隨)함이며, 무실(無實)은 선자(善子)의 편이든 불선자의 편이든 자기의 입장을 갖지 못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견이 없는 입장이 있을 수 없고 그 역(逆)도 또한 참이고 보면, <논어>의 이 다이얼로그가 우리에게 유별난 의미를 갖는 까닭은, 타협과 기회주의에 대한 신랄할 비판이면서 더욱 중요하게는 파당성에 대한 조명과 지지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편부당(不偏不黨)이나 중립을 흔히 높은 덕목으로 치기도 하지만 바깥 사회와 같이 복잡한 정치적 장치 속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화된 징역 모델에서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싸울 때의 '중립'이란 실은 중립이 아니라 기회주의보다 더욱 교묘한 편당(偏黨)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심리적 충동도, 실은 반대편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심약함'이 아니면, 아무에게나 영합하려는 '화냥끼'가 아니면, 소년들이 갖는 한낱 '감상적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이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입장과 정견이 분명한, 실(實)한 사랑의 교감이 없습니다.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할 수도 없습니다.


                                                                                                    - 신영복, 「강의」 중에서

글 퍼온 곳 : http://bbs3.telzone.daum.net/gaia/do/starzone/detail/read?bbsId=S000001&articleId=11489862&objCate1=96&forceTalk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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