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말랑말랑 리더쉽"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그리고 또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이게, 참 거시기하게도, 정치적 입장을 굳이 진보냐, 보수냐, 이름붙이자면 뭘까? 싶어서 생각을 해보니까, 아~, 참 쪽팔리게시리, 보수인 것이야!!!
"보수"
"보수주의"
위키백과 : 보수주의(保守主義)는 관습적인 어떤 것, 즉 '전통'을 굳게 지키고 그 기반으로 변화에 점진적으로 적응하는 정치이념을 말한다. (중략)
“ | 보수주의를 이름표 붙은 병에 집어넣으려 하는 것은 마치 공기를 흐르는 액체로 만들려는 것과 같다. ... 그 근본 자체로부터 나오는 문제인 것이다. 보수주의는 정치적 사상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습관, 감정적 상태, 삶의 방법에 더 가깝다. | ” |
— R.J. White, [1] |
차례
1. 시대적 과제가 있다.
2. 참여정부에서 이명박정부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배우자.
3. 대한민국은 관료국가다! 정도전이 꿈꿨던 그들의 나라!
4.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5. 세계시민으로 가자
6. 박정희가 아니고 역동성이다.
7. "종북좌빨"들은 목숨걸고 나라를 위해 싸운 전사들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8. 나라의 주인들은 어떻게 대접해 드려야 하는가?
9. 북한 지도부도 끌어안는데, 왜 우리 식구를 못 끌어안지?
10. 문제는 역동성이다.
말랑말랑 리더쉽
단군 이래 최초의 융합정치인이시며,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이시고, 위대한 미래 대통령이신 봉도사님께 일개 농사꾼, 하찮은 백성, 유기농장 알랑방구 대표농부 백아무개가 바라는 것은 말랑말랑 리더쉽이다.
1. 시대적 과제가 있다.
이 시대 시대정신(시대적 과제)은 무엇일까? 다들 잘 아시겠지만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기서 바로 정치지도자의 역사적 소명이 시작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라면 누구나(물론 가카나 그 떨거지들은 동의 안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서도) 동의할 수 있는 어떤 대전제가 필요한 것이지요.
어떤 일을, 할거냐? 말거냐? 만일 할 거라면 왜 할거냐? 어떤 일은 왜 해서는 안 되느냐? 이런 판단의 기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사회에 그런 커~다란 어떤 준거점이라 할 수 있는 게 뭐냐? 이랬을 때 저는 크게 네 가지 항목을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첫째.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보장 및 복지 확충
둘째. 우리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
셋째. 전세계 인류의 공존공영과 문화 창달에 기여
넷째. 환경문제 해결
어떻습니까? 여기에 만일 동의 안 한다면 나머지 글은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게 우선 전제가 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미 에푸티에이가 왜 안 되느냐? 이랬을 때, 첫 번째 항목에 딱 걸려들기 때문입니다. 빈부격차를 더욱 벌릴 것이고, 사회보장이나 복지를 개박살 낼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 간단하지 않습니까?
제가 고김대중 전대통령을 대통령으로서 유일하게 존경하고 흠모하는 까닭은 바로 두 번째 항목에 충분한 기여를 하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우선 이 네 가지 항목에 합의했다고 보고....
2.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배우자.
참여정부 들어서자마자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둘러싸고 부안은 준전시상태가 되어 한 동안 아수라장이었어요. 그러다가 평생 농사만 지어오던 늙은 농사꾼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경찰이 휘두른 몽둥이와 방패에 맞아 죽었고, 이라크에 어린 우리 애들을 보냄으로써 우리가 큰 나라에 완전 종속돼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하여 충분한 수치심을 안겨 주셨고, 느닷없이 완전 고압적으로 한미 에푸티에이를 체결한다고 하여, 야당 없는 백성들(열우당이 그냥 계속 야당이었으면 틀림없이 반대하고 나섰을 사안인데, 그 자들이 먼저 선수치고 나오니 함께 반대해 줄 야당이라고는 꼬마 노동당밖에 없고, 이거, 원, 눈만 껌뻑껌뻑 닭 쫓던 개 꼴 아닙니까)을 허탈케 하셨지요. 또한 우리가 보통 있는 자와 없는 자라고 쓰는 말의 진짜 뜻은 집 있는자와 집 없는 자라는 걸 알게 하셨어요. 새만금이나 천성산같은 것들은 그냥 넘어가죠. 목 아프니까.
어쨌거나, 정권이 바뀌었어요. 어라? 근데, 이게 뭡니까? 그 말 안 듣고 저항하고 태업하던 관료들이 분기탱천, 능수능란, 일사천리, 일사분란, 확철대오...아, 이건 아니다...어쨌든, 정말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셨어요. 알아서 척척척!!! 사람들이 확 바뀌어버린 거지요.
어라? 뭐~야 이거? 이거 봐라. 이거 좀 이상하다. 천년만년 복지부동에 철밥통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잖아, 이거!
이렇게 해서 이 분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예요. 저분들은 누구신가? 어떤 분들이시길래 저 모양[지랄]이지? 이러면서 좀 생각을 해 보게 됐어요. 그러니까 이게 다 가카가 정권을 잡은 덕분에 알게 된 겁니다. 얼띠기가 우리 사회, 우리 나라의 진정한 주인을 드디어 찾아낸 거지요.
3. 대한 민국은 관료국가다! 정도전이 꿈꿨던 그들의 나라!
지금 대한민국은 관료국가라는 게 제 주장입니다. 나라의 큰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이 관료라고 보는 거지요. 제가 10년 전에는 전경련이다! 이랬어요. 근데 10년 만에 바뀐 겁니다. 10년 만에 주인이 바뀐 건지, 아니면 제 눈이 바뀐 건지 알 수 없지만, 저는 늘 이 나라 주인 찾기에 골몰하고 있어요.
자 이분들은 누구신가? 행정 입법 사법 등 나라의 골간을 장악하고 계십니다. SKY출신이 80 퍼센트를 넘는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요. 우리 가카라면 KYS라고 바꿔부르고 싶어하시겠죠? 학교 댕길 때 공부 잘 했으니, 누구한테 한 번 제대로 꾸지람 들어본 적 없는 분들일 테지요. 공부만 잘 하면 만사 오케이 아닙니까. 똑같은 짓을 해도 공부 못 하는 놈들은 쥐어 터지지만 공부 잘 하는 분들은 용서가 다 되잖아요.
우리 같은 떨거지들이 데모합네 하면서 돌아칠 때 열공, 고시 패스, 현수막 쫙! 이렇게 사회에 첫발을 디디셨겠죠. 고시 패스하면 나라에서 국비로 유학도 보내줍니다. 석사나 박사를 하고 오셨겠죠. 어디서? 대부분 미국에서. 이거 통계자료 나온 거 혹시 있나요? 고시 합격자들 유학한 나라 통계. 있으면 좋을 텐데...어쨌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종미사대주의자가 됩니다. 식민지 백성이 식민지 모국을 동경하고 경외하고 야코죽고 추종하는 건 동서고금의 전통입니다. 우리 봉도사님처럼 기개 넘치는 분이야 “덤벼라 이 X새끼들아, 한 판 떠 보자!” 이랬겠지만, 천성이 심약하신 분들은 대부분 추종자가 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또, 이 분들이 미국에서 공부만 했겠습니까? 친구도 사귀고 줄도 만들고 부지런히 움직였겠죠.
아, 그 전에, 결혼도 했을 것이고, 집도 장만했을 것이고, 어쩌면 애도 낳았겠죠. 결혼은 곧 출세와 부의 발판이니 신중하게 잘 골라서 갔을 것이고, 집은 강남에, 애는 미국 유학. 뭐 이런 식으로 딱 정식화 돼 있지 않겠습니까. 재산 상태를 보면 적어도 30억~150억 정도.
얘기를 더 풀어가기 전에, 꼭 잘 들어주셔야 할 말이 있어요. 제가 다수의 ‘공복’들을 욕보이거나 씹거나 이럴려고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알아주세요. 공직에 계신 분들은 보통 50대쯤이 전성기가 아닌가 싶어요. 온갖 경험을 두루 거치며, 온갖 난관을 뚫고,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요직에 안착하신 소수(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로 볼 때, 아마 공직에 계신 분들도 9대 1로 나뉘어 있을 거라 봅니다. 그 중 1에 해당하는 분들 얘깁니다.)의 파워엘리트들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거예요.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 분들! 이 분들에 대한 얘깁니다.
이 분들은 동기나 선․후배들을 다 물리치고 요직에 안착하신 분들 아닙니까? 그 동안 경력을 착실히 쌓아 오시면서, 어느 구석에 어떤 명목으로 얼만큼의 돈이 있는지 빠삭하게 파악하고 계시죠. 이제 전성기입니다. 가장 의욕적이고 활동적인 때지요. 드디어 비로소 겨우,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일을 주물럭 조물락거릴 수 있게 된 거예요. 좋은 말로 하면 융통성, 삐딱하게 하면 꼼수가 가능해진 거지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성과를 낼 수도 있고 구석으로 밀어 놓고 되거나말거나 할 수도 있지요.
자~ 이 분들은, 고시 패스 현수막이 고향집 골목길과 학교 정문과 소도지 여기저기에 나부낄 때부터, “용”된 분들이잖아요. 이 분들은 인생에서 단 한번의 실패도 맛보지 못한 대단히 유능하고 뻣뻣하고 잘나신 분들이예요. 이 분들이 아주 조금 있는 윗분들 말고 어디 가서 고개 숙일 일이 있겠어요? 친구를 만나도 다들 앞에서 굽실거릴 테고, 동네 무슨 꼴푸장엘 가도 영감 땡감 찾아가면서 굽실거릴 테고, 안 그렇겠어요?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가장 활동적이고 의욕적으로 뭔가 해 보려 하고, 할 수 있는 자리에 드디어 다다르신, 입법-사법-행정부의 골갱이라 할 만한 자리에 계신, 바로 이 분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눈앞에 닥쳐온 정년퇴직에도 대비하셔야 합니다.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는 유관민간기업의 고문으로 가시거나 대학의 교수 따위로 다시 새출발 해야 하는 고충도 또한 이해해야 합니다.
자, 밑그림이 대충 그려지지요. 이 분들의 성장과정-재산상태-가족관계-얼라들 교육 상태-친구관계-사교관계-미래노후설계 등등 이 모든 걸 종합한 이 분들의 심리상태-가치관-세계관 등등을 종합해서 버무려서 제대로 이해해야 비로소 “왜, 지금 우리 사회가, 지금 이러한가?”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또한,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추구하는, 앞서 얘기한 네 가지 사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의 단초도 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4.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곰곰이 생각을 좀 해 봤어요. 나이 사십이 넘도록 맨날 나라 안에서만 돌아다니다가, 몇 년 전에 인도에 다녀오면서 생각이 깊어졌지요. 갠지즈강을 따라 4천~5천 년 전 영화를 누리다가 지금은 쇠락한 농업지대를 주로 쭉 돌아봤어요. 하리잔들이 사는 집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어요.
빛 한 줌 안 들어오는 흙과 소똥으로 지은 집(결핵균은 햇빛에 죽는데 빛이 없으니 병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에 살림이라고는 밥 끓여 먹을 식기 서너 개가 다인, 그런 분들을 쭉~ 돌면서 보고 왔어요. 밥 끓여 먹을려면 불이 있어야 되는데, 불은 어떻게 때냐고요? 흙으로 만든 화덕에 소똥 말린 걸로 불쏘시개해서 불 피우고 석탄 덩어리 넣어서 밥 해먹더라고요. 화력이 좋아서 하나 만들어 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쫌 했지요.
이렇게 넘들 심란하게 사는 거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되잖아요. 훌륭한 안박사님처럼 부채의식도 막 생기고요. 특히 봉도사님이나 저처럼 명민한 사람들은 이런 여행을 한 번 하면 그냥 바~로 세계 인민의 실상에 눈 뜨게 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이 막 생기고 그러지 않습니까! 집 안에서 수도꼭지만 돌리면 뜨거운 물이 줄줄 나오는, 이 삶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새삼 알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를 일본이나 미국 유럽 여러 나라들과 비교해서, 문제가 많다는 둥 어쩐다는 둥 이런 소리는 다 개소리다. 이런 말에 흔들리면 안 된다. 그네들은 식민지 본국이고, 우리는 식민지 속국이었다는 걸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되고 절대 까먹어도 안 된다. 식민지 속국이라는 건 목에 빨대 꽂았다는 얘기고 식민지 본국이라는 건 빨대로 모든 양분을 쪽쪽 빨아 먹었다는 얘긴데, 어떻게 수십년간을 혹은 수백년간을 쪽쪽 빨린 자들이 쪽쪽 빨아먹은 자들과 일대일 맞대미까고 달라들려고 하는가 이 말입니다. 얼토당토 안 한 얘깁니다. 우리 비교 상대는 저들이 아니고 우리 옆에 있던 나라들이죠. 아프리카-아시아에 산재해 있는 식민지였던 나라들. 이 나라들하고 비교를 해야, 제대로 비교가 되는 거지요. 특히 저 북쪽에 있는 북한.
그러니까, 소위 우리나라 지식인들이란 분들이, 서양 지식인들이 무슨 히틀러 나치가 유대인들을 잡아 족친 일을 가지고 설레발을 치니까, 그거 읽고 덩달아 헬렐레 해가지고 그게 무슨 인류 역사상 가장 잔악아고 극악무도한 참살인 양 착각하고 그런 눈으로 우리 사회를 보고 이러면서 꼬여가는 거지요. 일제가 바로 이 땅에서 바로 얼마 전에 저지른 만행과 악행에 비하면 솔직히 그거 새발의 피 아닙니까!
그리고 또 양놈들이 어디 유대인만 죽였습니까. 이미 14~15세기부터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분탕질 친 놈들 아닙니까. 아메리카 대륙 싹쓸이하고, 아프리카 인민들을 개, 돼지처럼 마구 죽이고 잡아다가 부려먹고, 식민지 만들어, 온 세계 인민들의 피를 빨아 마신 놈들이, 겨우 무슨 나치 학살 정도에 그토록 충격을 받았다는 게 뻔뻔하고 낯가죽 두꺼운 놈들 아닙니까. 멍청한 놈들이거나.
아, 죽이는 방법이 너무나 흉측했다?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노예선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일제가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한 농민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남경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아, 또 흥분해가지고, 흠, 흠, 진정하고....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식민지였던 나라들 보세요. 아직도 여기 독재, 저기 독재(나라이름이나 그 나라 상황 잘 몰라서 디테일 약함)에, 밥은 쫄쫄 굶지, 정말 개판 아닙니까. 심지어 바닷물이 들이닥쳐서 이삼십만 명이 죽고 수백만 이재민이 생겨서 도우러 들어가겠다는데도 못 들어오게 하는 나라에, 배고파 죽게 생겨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국경 넘는 인민들 등에 대고 총질해대는 놈들에, 생난리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근현대사를 쭉 관조해보면, 근대의 문턱에서 수십 년 간을 목에 빨대 꽂힌 채로 피를 쪽쪽 빨리고, 외세의 개입으로 그토록 험한 참담한 동족상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그 몸 가지고, 어떻게든 일어서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기적이다, 정말 기적이다, 이렇게 민주화된 나라, 이렇게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다시 없다!!!!
5. 세계시민으로 가자
자, 그럼 또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면 어쩌다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을까? 정말 기적 같은 일이고 신기한 일 아닙니까? 저는 그런데 봉도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가 포인트입니다. 이 명제에 동의를 해야 해요. 자꾸 저 식민지 본국놈들(우리 목에 빨대 꽂고 피 빨아먹은 놈들)하고 우리를 자꾸 비교하니까 움츠러들고 기죽고 마음이 급하고 바쁘고 옹졸해지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시대적 사명, 세 번째, 네 번째를 보지도 못 하고, 그리로 나갈 생각도 못 하는 거예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우리가 가진 이 엄청난 성취를 보지 못 하는 거고, 그러니까 당연히 자긍심도 없고, 세계시민으로서의 당당한 기품을 갖지도 못 하고 쫌팽이가 돼서 이 쫍은 땅떵어리로 사유와 사고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우리 선조들은요, 님 웨일즈가 받아 적은 아리랑을 구술한 김산같은 분을 보세요. 벌써 열 서너 살에 벌써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인이었단 말이예요. 안중근 의사(1879∼1910)가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할 때 나이가 서른둘입니다. 무슨 조선평화론이 아니고 “동양” 평화론이예요. 안목 자체가 쨉이 안 됩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왜 필요하냐, 이런 얘기였구요, 어쨌거나 우리의 관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나? 이거죠.
말 빙빙 안 돌리고 단도직입으로 팍 치고 나가자면 대한민국 현대사는 박정희와 전태일로 압축해서 말할 수 있고, 바꾸어 말하면 ‘역동성’과 ‘헌신성’이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떠세요? 삘이 팍 오지 않습니까?
6. 박정희가 아니고 역동성이다
제가 89학번입니다. 재수 안 했으면 88학번입니다. 그래서 저보다 나이 어린 형, 누나가 많습니다. 저는 원래 기질이 나약하고 우유부단해서 운동도 제대로 못 하고 주변만 살살 맴돌면서 어리부리하다가 군대엘 갑니다. 첫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이죠. 학교를 4년 다 다녔지만 졸업을 못 한 채로 군대에 갔다가 돌아 와서 어쨌거나 학교를 한 해 더 다닙니다. 이때, 박정희에 대한 리포트를 하나 쓰는데, 기가 막힌 리포트였습니다.
그 때가 어떤 때였냐면, IMF가 빵 터지기 직전, 사회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쌩쑈를 하던 땝니다. 거품이 목에까지 차서 터지기 직전이었던 것인데, 아무도 몰랐죠. 그저 사회주의를 믿은 죄를 고해성사하고 자본의 품으로 와락 안기거나 안 그러면 숨죽이고 모색하는 척 하면서 방황하던 시기예요. 제가 당시에 그냥 피부로 느낀 사회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그때 저는 박정희를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죠. 당시 고대 최장집 교수가 쓴 “박정희정권의 평가“, 계간『대화』5호, 1999. 를 읽습니다.(연대가 잘 못 된 것 같죠? 위키백과에서 찾아 퍼왔는데 1994나 1995 정도가 맞을 거예요.) 박정희와 관련한 모든 텍스트 중에 가장 적확한 시각을 보여주셨어요. 시간 나면 꼭 구해서 읽어 보세요.
핵심은 이겁니다. 박정희는 역동성이다. 당시의 시대정신은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걸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잘 살아 보세!”였고, 깃발 들고, 나를 따르라.................!!! 했는데, 어쨌거나 다들 따라 갔다는 것 아닙니까. 저 혼자 뛰어간 게 아니고, 우루루 뛰어갔다는 점. 단일 깃발 아래 전국가적 에너지를 완전 응집해 냈다는 점.
새가 한 번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데 드는 에너지가 100미터 전력질주하는 정도라고 하잖아요. 성냥을 살살 천만번 긁어봐야 불이 안 붙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거죠. 한 번에 탁! 내리쳐야 불이 확! 붙지 않습니까. 불을 확 싸지르고 냅다 들고 뛰었다는 점. 을 높이 평가합니다.
세계 정세로 볼 때, 우리나라는, 어쨌거나 그 때에 세계 산업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쬐끔 열려 있었고, 여기로, 냅다 뛰어서, 문이 닫히기 전에, 우짜든동 한 발 걸치고 올라섰다는 점. 결국 박정권의 훌륭한 점은 국민을 추동하고 흔들어 깨워서 갈 곳을 정하고 냅다 뛰어갔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는 것이 최교수님의 장황한 설명을 앞 뒤 다 자르고 내 맘대로 이해하고 편집한 내용입니다.
7. "종북 좌빨"들은 목숨 걸고 나라를 위해 싸운 전사들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군복 입고, 썬글라스 끼고, 피켓 들고 시위하러 나오시는 할아버지들...이 분들 만나서 얘기 나눠 본 적 있으세요? 약 25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조선일보를 첫 장부터 끝 장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으시고, 사오백 페이지에 달하는 월간 조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시며 나라 걱정하는 분들입니다. 움직이는 조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근데, 조선일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신문인가요? 이놈들 빨갱이 아닙니까? 여기가 대한민국이지 조선입니까? 조선일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가든지, 조선시대로 가든지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야지!! 어떻게 북쪽 빨갱이새끼들이 지들 나라 이름에 써 먹은 죽은 단어를 신문 제목으로 떡 붙여놨단 말이야! 안기부에 연락해서 당장 잡아들여야 해!!! (에이, 괜히 했어, 아무도 안 터져.)
이 할아버지들 대단한 분들입니다. 우습게 볼 분들이 아니에요. 뼛속까지 조선일보인 분들입니다. 조선일보의 화신이라 할 수 있지요.
무슨 돈 받고, 혹은 앞으로 돈 받아먹으려고 할 수 없이 동원돼서 시위에 나가는 분들 아닙니다. 전국 각지 구석구석에서 새벽밥 먹고 새벽차 타고, 시위 나가려고 미리 자기 돈 들여서 사 놓은 군복 입고 워카 신고 썬글라스 끼고, 자발적으로 기꺼이 나라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 먼 길을 달려가시는 거예요. 그리고요, 시위 한 번 다녀오시면 벌써 눈빛이 달라져요. 젊은 시절 전선을 넘나들며 목숨 걸고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 다시 뭉쳐서 나라를 위한 거사를 한 판 치르고 왔으니 왜 안 그러시겠어요.
우리 동네에도 한 분 계시는데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형 아버님이시고, 돌아가신 울 아부지랑 나이도 같으세요. 열다섯에 해방을 맞았고, 스무 살에 전쟁이 터진 거예요. 이북에 계시다가 구월산(남쪽이 지리산이라면 북쪽은 구월산)에서 의용군으로 참전하셨어요. 구월산에서 퇴각하면서 당신 아버지랑 단 둘이 월남하는 바람에 온가족이 북에 남겨졌어요. 이 분 아직도 정정하시고, 레이서여서 할리데이비슨을 한 번 타 보고 싶어 하셔요. 서울 가셨다가 청계천 들러서 가격도 물어보시고, 하루만 빌리는데 얼마냐니까 200만원 달라고 했대요. 좀 귀여운 구석이 많은 분이세요.
이 분들을 끌어안지 못 하는 좌빨은 영원히 좌빨일 뿐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현충일날 괜히 현충원 가서 폼 잡지 말고 이 분들 청와대로 초청하고, 관용차 보내서 한 분, 한 분 다 모셔오고, 성대하게 차려서 잡숫게 하고, 이 분들 하시는 말씀 귀 기울여 들어 드리고, 자꾸 이거저거 여쭤봐서 무용담을 끄집어내고, 잘 들어 드리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뭐라고 하시면, “예, 잘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드리고, 아니, 아니, 이 분들 말씀대로 하라는 게 아니고, “당신의 생각과 마음은 제가 잘 알겠습니다.” 하라는 거예요. 그게 뭐가 어려워요? 욕심 같아서는 일 년에 두어 번은 해야지요.
이 분들이 일 년에 두 번씩 모이세요. 살아 있는 조직이에요. 그런데 매년 모이는 애들이 줄어든다고 씁쓸해 하세요. 다 죽어뻐렸다고.
이 분들을 옳게 포용해내지 못 하면, 계~~~속 조선일보에 휘둘려야 해요. 이 분들 다 돌아가실 때까지! 두 번째 과제 수행하기 어려워요.
8. 나라의 주인들은 어떻게 대접해 드려야 하는가?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 하고 계시는 이 X같은 분들을 어떻게 대접해 드려야 할까? 이 문제가 안 풀리는 겁니다.
탈레반이나 폴포트처럼 아작을 낼 수도 없는 일이고, 전장군처럼 삼청교육대 같은 걸 만들어서 다 보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김장군처럼 삼척탄광으로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베트남처럼 재교육 수용소에 영구 수감해 버릴 수도 없고...우짠다....이 분들이 차라리 일제에 빌붙어 먹은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들이라면, 드골이 그랬던 것처럼 다 찾아내서 가차 없이 싸그리 쓸어버릴 수나 있지,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 좋은 아저씨 아줌마들 아닙니까.
그러다가 어제 조카 결혼식에 다녀오느라 서울 나들이를 했어요. 기름 값이 많이 드니까 춘천 나가서 전철 타고 갔다 오자는 걸 사정사정해가지고 겨우 집사람 차를 타고 갔어요.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아주 사람이 곤죽이 돼서 영 타고 싶지 않아요. 시골에 박혀서 일만하다가 어쩌다 한 번 도시 나가면 어찌나 피곤하고 몸이 늘어지는지 아주 죽을 맛입니다.
작은 승용차지만 단 둘이서 타고 오가는 동안 집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어요. 우리 집사람은 “금강지(金剛智-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결코 깨지지 않는 굳센 지혜)”라는 법명에 어울리게 참으로 지혜로워서 매번 내 꽉 막힌 사고를 뻥뻥 뚫어주곤 합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우선 이것부터 좀 보시죠. 길지만 볼 만 합니다.
도이머이
1986년부터 시작된 도이머이는 매우 흥미로운 단어다. ‘도이’는 ‘바꾸다’(change), '머이‘는 ’새롭다‘(new)라는 뜻으로 ’도이 머이‘란 ’새롭게 바꾼다‘라는 말인데, 통일 이후 20세기 말 베트남의 복잡다단한 정치상황과 경제, 문화 및 베트남인의 인성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도 없다 싶다.(…)
종종 ’베트남식 개혁․개방‘이라는 용감한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도이 머이‘를 시작했던 시절의 베트남 지도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다.(…)
도이 머이가 소련, 동구, 중국의 개혁․개방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슬로건일뿐더러 가는 방향까지 비슷하다면, 왜 그 흔하고 멋지기까지해서 한자 문화권에서 꽤 인기 있는 단어인 ‘개혁’이란 말을 쓰지 않고 ‘도이 머이’라 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때 그렇게 한자문화권에서 유행하던 ‘혁명’은 베트남에서도 큰 사랑을 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개혁’이란 단어는 사용이 기피되는가? ‘까익 망(혁명)’에 비해서 ‘까이 까익(개혁)’은 발음하기가 다소 불편해서인가?(…) ‘도이 머이’, 순수 베트남 음절로 조합된 이 단어는 어감이 매우 예쁘고 발음하기 쉬우며 의미도 명확하다.(…)
뜯어고친다는 의미가 강한 ‘개혁’은 기존의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전제된다. 예를 들어 ‘정치개혁’이란 기존 정치 행태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당연히 개혁에 대한 저항을 예상해야 한다. 경제개혁, 사회개혁 모두 마찬가지다. 개혁은 많은 경우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개혁의 대상이 사회에서 퇴출․제거 되거나, 반대로 개혁의 주체가 몰락하기도 한다. ‘도이 머이’는 개혁을 추구하기는 하되,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안인 것이다.(…)
어느 날인가 베트남어 선생님 코아(Khoa) 교수가 ‘도이 머이’를 설명해줄 때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문학전공자인 그분은 풍부한 감수성의 소유자로서 수업 중에 흥이 나면 시도 읊고 기막힌 목청으로 노래도 잘 부르셨다.
“도이 머이! 도이머이란 바꾼다는 뜻이지. 바꿔 바꿔 바꾸고 바꿔서 새로워진다는 거야. 모든 걸 바꾼다는 것이니 적도 친구가 되고 친구가 적도 되고 외교관계도 바꾸고 경제도 바꾸고 정치도 바꾸고……”
(…) 내가 “당도 바꿔야 할까요?”라 하자, 내질문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말았는지 “그럼 당도 바뀌어야지, 다 바뀌어야 하는 것이 도이 머이인걸, 도이머이!” 감정이 고양되면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눈길은 혁명을 외치는 전사마냥 허공을 직시하며 강조하는 부분에서 오른손 왼손이 절도 있게 오르내렸다. 그리고 선생님은 최종적으로 꾸옥 루이(쌀소주) 한병을 어디에선가 꺼내와 잔에 따르고 ‘도이 머이’를 위해서 나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그런데 만일 이 대화에서 ‘도이 머이’ 부분에 ‘까이 까익(개혁)’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심각하고 엄격하고 비장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특히 당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개혁’이란 단어가 들어갔다면 코아 선생님의 얼굴은 굳어졌을 것이고, 아마 나는 관할 공안에 불려다녀야 하는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 도이 머이 이후 갑자기 아름다운 새 세상이 온 것은 물론 아니다. 배급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바뀌는 가운데 무수히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평생을 오로지 조국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사회에서 밀려나고, 약삭빠른 기회주의자들이 돈을 번 것은 당연히 예견된 현상이었다. 고귀한 이념의 선전은 희극적인 말장난으로 폄하되고, 시장경제, 즉 돈이 진실인 사회로 바뀌면서, 혁명세대는 정신적 공황상태까지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이하 생략).
『최병욱, 베트남 근현대사』, 창비, 2008. 201쪽~207쪽
올해 우리동네 농사꾼들 계 묻어서 베트남으로 여행갑니다. 애호박 수확기간인 7~10월 넉 달 동안 계 묻어서, 농사 뒷정리 다 해 놓고 본격 여행 시즌 시작되기 직전에, 패키지 상품 중에 제일 싼 거 골라서 가는 겁니다. 짜여진 일정에 따라 다니면서 흥청망청 놀다 오는 건데요, 가 보면, 전국의 농사꾼들을 여행지에서 다 만나게 됩니다. 작년부터 시작했어요. 작년엔 상해-항조우를 다녀 왔지요.
올해는 베트남으로 가기로 했어요. 장마철에 방현석이 쓴 소설 같지 않은 가슴 아린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 2003)』을 읽었고, 서리 와서 수확 끝난 뒤로 화천 도서관에 있는 베트남 관련 책들을 조금 봤어요.
방현석, 하노이에 별이 뜨다, 해냄, 2002
김용옥, 앙코르와트 월남 가다, 통나무, 2005
최병욱, 베트남 근현대사, 창비, 2008
오구라 사다오, 한 권으로 읽는 베트남사, 일빛, 1999
등등입니다.
호치민 평전이 있나 싶어서 호치민 치니까 아무 것도 안 나오고, 호지명을 검색하니까 김광휘 장편소설 『호지명의 딸』만 나옵니다. 호아저씨는 제가 태어난 날 돌아가셨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그렇다고 얘기했더니, 저한테 막 그러는 거예요. “아, 그럼 자네가 호치민의 환생이란 말인가!!”
제가 사는 이곳은 베트남으로 전쟁 나가서 죽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밟았던 조국 땅입니다. 파월장병 훈련장이 있던 동네예요. 그래서 "파월장병 만남의 장" 이라는 거창한 건물이 몇 년 전에 지어졌는데, 군의원들은 서로 자기가 돈 따다가 지었다고 자랑을 하지요.
어쨌거나 요즘 베트남은 아주 가까운 나라가 되어 있어요. 동네 형님들 늦게까지 노총각으로 살다가 어리고 예쁜 베트남 신부들 맞아서 행복하게 알콩달콩 잘들 살고 계세요. 베트남에서 오신 형수들은 일도 부지런히 열심히 잘 하시고, 애도 쑥쑥 잘 낳고, 근검절약하며 살림도 잘 하십니다. 농촌지역 총각들이 외국인 신부와 결혼하는 비율이 34%라는 기사를 몇 해 전에 농민신문에서 봤으니까 지금은 아마 더 높아졌을 거예요. 진정한 세계화와 국제연대는 농촌에서 비롯된다!!!
베트남에서 돈 벌러 일 오시는 분도 많아요. 올해 우리 동네에 예쁜 아가씨 둘이 일을 오셨는데, 원뿔 모양의 베트남 모자를 쓰고 머리를 길게 늘여 묶고 하늘하늘 걸아가는 모습이 마치, 와~ 완전 이국적이었습니다, 소설 『싸이공의 흰옷』에서 막 걸어 나온 것 같은 착각!
다시 돌아가서, 도이 머이! 궁지에 몰리면 변하기 마련입니다. 가만 있을 때는 위험하지 않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위태롭습니다. 균형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아주 조심해서 신중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9. 북한 지도부도 끌어안는데, 왜 우리 식구를 못 끌어안지?
저한테 총 주고 딱 한 사람만 쏴라, 괜찮다, 하면 누구를 쏠 것인가? 아마 저는 위대한 지도자 김머시기 동지를 쏠 거예요. 기아로, 전쟁이나 질병도 아니고 쪽팔리게 기아로 우리 동포 이백만~삼백만을 굶겨 죽인 원흉으로 지목하고 그 양반 대그빡에 쏠 겁니다.
그런데, 그 양반들 다 끌어안아야 하지 않습니까? 지은 죄로 따지자면 아주 아작을 내도 시원찮을 판인데, 끌어안아야 하지 않습니까?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왜 그런지 우리는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런. 데. 왜? 우리랑 같이 살고, 우리랑 같이 섞여서, 멀리 저 우주로 나가 쳐다보면 똥간 구데기들처럼 그저 뻐글뻐글 뒤엉켜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저 우리 사회 주인님들을 왜, 도대체 왜, 끌어안고 함께 나가지 못 한단 말입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금강지가 저에게 일깨워준 핵심입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보여 준 포용의 리더쉽, 달라이 라마가 전세계를 향해 날리는 저 비극적인 평화의 메시지, 가야를 병합하여 온전히 끌어안고 인접국들과 싸워 이긴 신라 귀족들의 리더쉽, 왜 우리는 이런 멋진 말랑말랑한 리더를 만나지 못 하고, 맨날 증오와 분노 속에 살아야 하느냐, 이런 말입니다.
10. 문제는 역동성이다
불교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교리 중에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게 있습니다. 나에게도 이익이 되고 타인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인데, 나한테만 이익이 되고 타인에게는 손해가 나는 짓은 어긋난 행동이고, 타인에게 이익이 되지만 나에게 손해가 나는 것도 어긋나는 일이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나를 희생해서 타인을 이익 보게 한다, 이런 것도 이치에 안 맞다는 겁니다.
아시아의, 세계의, 공존공영의 미래 비전을 내 보이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도 이익이고, 저 타국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우리 사회에 이익이라고 할 때, 그것이 소수에게는 이익이고 다수에게는 손해가 나는 그런 게 아니고, 저 주인님들에게도 결국에는 이익이 되고, 우리 같은 머슴님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그런 어떤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말랑말랑한 정조대왕같은 능청스러움과 끈기와 지혜를 가진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하다.....이런 얘깁니다.
단죄!
이건 리더쉽이라 할 수가 없어요.
저는 대한민국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아주 작은 기둥에 묶인 코끼리가 생각나요. 어릴 때부터 쭈욱 묶여 있었기 때문에, 지가 이제는 커서 저까짓 작고 힘 없는 기둥쯤이야 쑥 뽑아버릴 수 있는데, 쭈욱 묶인 채 큰 관계로, 여전히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묶인 채로 사는 거예요. 얼마나 불쌍해요.
진정한 세계화의 깃발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지배하고 빼앗고 수탈하는 세계화가 아니라, 서로 돌보고 나누는 세계화로 방향을 잡고, 국가간의 연대를 통해, 대한민국 자체가 뒤따라 오는 우리의 동지국가들을 돌보고 나누고 일으키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세계시민의식을 갖춘 성숙한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을 다시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이 나라 주인님들께는 이 일을 함께 하자. 이렇게 하는 것이 너에게도 이익이 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함께 가자. 잔말 말고 따라와, 뛰어! 달려라 주인님들!
저는 이것이 다음 정권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끝!
덧붙임 글: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가며, 잠시 집사람이 컴퓨터 켜 놓고 집 비운 사이에, 긴 글 단숨에 쓰느라고 지쳐서, 뒷부분을 잘 정리 못 한 것 같음. 다음에 조금 더 자세히 써 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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