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은 깡패다.
법과 제도라는 것이 단지 허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줄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 해서든 줄 수 있다는 것,
주기 싫으면 법과 제도를 핑계삼는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지게작대기를 들고 쳐들가가서 깽판을 쳐도,
쟤들은 꼼짝 못 하고, 결국 나는 무사하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농사꾼은 오랜 경험을 통해
법과 제도 위, 정치의 영역에 있다.
농사꾼은 정치가다.
내 몸뚱아리로 내가 일해서 내가 벌어먹고 사는데, 어느 잡놈이 나를 건드려?
농사꾼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두려울 것이 없다.
농사꾼은 단순무식하다.
눈 앞의 현상, 내가 한 경험, 내 친구들에게 들은 친구의 경험으로 인식이 한정돼 있다.
현상의 이면을 보지 못 한다.
날고 뛴다고 해 봐야 가진 놈, 쎈 놈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 한다.
결국 세상이란 게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안타깝다.
"농사꾼을 위한 인문학강좌"를 당장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어야 한다.
농사꾼은 피해의식이 가득하다.
어릴 적 학교에서부터 커서 사회에 나와서도 좆 같은 새끼들이 우릴 무시하고 깔본다. 좆도 아닌 것들이.
하지만 저새끼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 힘을 가진 놈들이다.
당하는 것도 많이 봤다.
저항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일대일로 붙었을 때는 자신 있지만, 뭔지 모를 저 덩어리들은 두렵다.
세상에서 가장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못 한다.
마치 시각장애인이 모든 것을 의심하며 더듬더듬 세상을 더듬어 나가듯이
농사꾼도 눈 가리운 채로, 세상을 헤쳐 나간다.
이제 나는 농사꾼이다.
뼛 속까지 농사꾼이다.
저 세계를 비워내고, 이 세계로 왔다.
눈 뜬 농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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