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수입농산물 때문이다!

양배추 싹이 트고 있다

“이게 다 수입농산물 때문이다!”

 

계간 『귀농통문』2013년 겨울호에 쓴 글입니다.

밭은 말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십여 년 농사지으면서 겨울 되기 전에 깊이갈이하고 부족한 유기물도 좀 넣어주고 호밀까지 뿌려서 나름 흡족하게 갈무리하기는 처음입니다. 긴 비에 작물이 일찌감치 망가져버린 덕분입니다(ㅠㅠ).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농사지으면서 제일 힘든 게 뭐냐고 누가 물어보면, 버리는 게 제일 고통스럽다고 대답합니다. 일은 사실, 힘은 들지만 늘 보람이 있어서 즐겁거든요. 힘들게 산을 올라가는 걸 즐기는 것처럼 농사일은 힘들지만 마음 깊은 곳에 즐거움을 줍니다. 심지어 농사일은 중독성도 있다, 중독성이 상당히 강하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동네 할머니들은 잘 알고 계십니다. 처음 여기 화천으로 이사 왔을 때, 텃밭에서 일하는 이미 구댁인 우리 안사람한테 할머니들은 “새댁! 일하지 마. 호미 귀신은 한 번 붙으면 영영 안 떨어져.”라며 농사일이 갖는 중독성에 대해서 경고를 하셨어요.

 

일이란 게 좀 그렇잖아요. 쉬운 일 계속하면 지루하고,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은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될똥말똥한 일을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힘닿는 데까지 아등바등 쌩똥을 싸면서 몰입해서 일할 때, 재미도 나고 신명도 붙고 그러지 않나요? 저는 그런 편인데요, 그래서 농사가 늘 재미가 나는데, 신나게 달려가다 벽에 콱 머리를 처박는 느낌이랄까, 하여튼 그런 장벽으로 느껴지는 일, 도저히 안 넘어서지는 일이 농사지은 거 팔아먹는 일입니다. 채소 농사의 경우, 기후 조건이 좋아서 풍년이 들면 무조건 농산물이 남아돌고 값이 폭락해요.

 

 

“그러게 왜 채소농사를 지어? 곡식농사 지으면 될 거 아냐?”라고 면박을 주실 지도 모르겠는데요, 손바닥만한 떼기 밭만 다락다락 붙어 있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곡식농사지어서는 먹고 살 수가 없어요. 아니,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곡식농사를 지어도 겨우겨우 먹고 살 수는 있겠지만 저처럼 평범한 욕망과 욕구를 가진, 게다가 결혼까지 해서 아내가 있는 중년 남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삶을 살아야 해요.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채소 농사가 그나마 돈이 되니까 채소농사를 짓는 것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농사짓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팔아먹는 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팔아먹기 어려울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데요, 남들처럼 연구 주제를 “내” 농산물을 어떻게 잘 팔아 먹을까로 잡았다면, 흔히 하는 얘기 있잖습니까? 어떻게 “특별한” 농산물을 지어서 “차별화”하고 “특화”해서 “명품”을 만들어가지고 “특별한 고객”에게 “특별한 가격”에 팔고 어쩌구하는 얘기요, 저도 그렇게 했다면 정말 어쩌면 돈도 많이 벌고 농장도 크게 꾸리고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보다는 쫄딱 망해서 다시 서울로 쫓겨 올라가서 시들한 삶을 살고 있을 확률이 훨씬 높긴 하지만 말이죠, 어쨌거나, 이 모지란 인간이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처지이면서 늘 생각하는 건 “우리” 농산물이란 말이죠.

 

이를테면 생각이 이런 식으로 뻗치는 겁니다. ‘15년 전만해도 애호박 농사가 정말 수지맞는 농사였다는데, 지금은 뼛골만 빠지는 그저 그런 농사가 된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애호박 농사를 짓기 때문일거야. 그러면 옛날에는 애호박 농사를 안 짓던 사람들이 왜 자꾸 애호박 농사를 짓는 것일까? 다른 거 마땅히 지어 먹을 게 없으니까 자꾸 애호박을 짓는 거겠지. 그러면 왜 다른 거 마땅히 지어 먹을 게 없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곡식 농사가 돈이 안 되니까 채소나 과수로 옮겨 오는 구나. 게다가 정부에서 돈을 많이 들여서 논에 하우스를 지어서 채소 농사를 짓도록 부추기는 구나. 넓고 비옥한 땅에서 곡식 농사를 안 짓고 채소 농사를 지으면, 일단 우리 같은 떼기밭 채소농사꾼이 살아남기는 그른 것인데, 가만있자 첫 번째 문제는 <지금> 농사꾼들이 곡식 농사지어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채소농사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뭔지 알아봐야 할 테고, 두 번째 문제는 <앞으로> 농사꾼들이 곡식 농사를 안 지으면 우리 애들이 먹고 살 걸 안정적으로 마련하기 힘들 텐데, 그래 가지고 세세손손 살아갈 수 있을까? 식량은 없으면 굶어 죽는 거고, 채소야 없으면 짜게 절여서 옛날처럼 쬐끔 집어 먹으면 그만인데, 어쩌자고 이러는 거지? 자료를 좀 찾아봐야겠군!’ 이런 식으로 연구를 거듭하는 것인데요….

 

일하는 짬짬이 십여 년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찾아낸 결론은 이런 겁니다. “이게 다 수입농산물 때문이다!” 우습죠? 남들은 연구 하나도 안 하고도 뻔히 아는 사실을 무슨 십여 년 동안이나 거창하게 연구씩이나 해가면서 알아내느냐? 제가 좀 그래요(ㅠㅠ). 어쨌건, 제가 알아낸 걸 다시 재구성해보자면 이래요.

 

다 수입해다 먹으니까 농사지어 먹을 게 없어지는 거지요. “농산물”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다들 생물(生物)만 생각하는데요, 제가 진짜로 무서워하게 된  수입농산물은 다 비닐봉지나 병이나 깡통이나 플라스틱 그릇 속에 담겨 있어요. 빵이나 과자 부스러기는 말할 것도 없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찬찬히 관찰해보면, 예를 들면 국내에서 만든 것이 틀림없는 국내산 음료나 국내산 소주, 국내산 조미료, 국내산 식용유, 동네 김밥, 식당 공기밥, 막걸리, 포장마차 떡볶이까지 말이죠,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식음료라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내용물은 거의 다 수입해온 농산물이란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밀이나 고기로 말하자면, 밀 자급율은 최근 몇 년 사이 눈부시게 급등해서 3% 수준이고 고기는 수입 곡물 사료가 몸 바꾼 거라 봐야 해요. 수입농산물을 엄청나게 섭취하니까 밥을 적게 먹을 거 아니에요? 밥을 적게 먹으니까 쌀이 남아돌고, 농사꾼들은 쌀로 생계를 꾸릴 수 없으니 논이 밭으로 변하고, 정부가 “고품질․고소득” 운운하면서 원 없이 지원한 비닐하우스가 논밭을 뒤덮으면서, 채소는 날씨가 좋으면 무조건 값이 폭락해버리는, 일상적인 생산과잉 상태가 된 거지요.

 

여기서 꼭 오해하지 마셨으면 해요. 아침밥을 잘 챙겨 먹자거나, 수입농산물로 만든 식품 먹지 말고 국산 농산물을 애용하자거나, 이런 얘기 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처한 상황,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으니까, 만약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이런 구조를 바꿀 수 있는지, 바꾼다면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뭐, 이런 얘기를 해야 해요. 그러니까 백아무개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편의점에 쑥 들어가서 아무 음료나 하나 사 가지고 나왔을 때, 그 음료가 국산 농산물을 원료 삼아 만든 음료일 확률을 최소한 10%정도라도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를 들자면, 이런 문제인 거지요. 식품법을 바꾸면 되는지, 농업정책을 바꾸면 되는지, 정치를 잘 하면 되는지, 농민기본소득 보장을 주장하는 녹색당 의원이 스무 명쯤 배출되면 되는지…. 이런 식으로 끝까지 “구조”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우리 농산물이 식품이 되어서 비닐봉지나 병이나 깡통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큰 장벽이 있어서 농사꾼들이 살기 어렵다고 일단 결론을 내렸어요. 가격도 문제가 되고 제도나 법도 문제가 돼요. ‘값싼 수입농산물 사다가 거대한 공장에서 각종 식품첨가물을 섞어서 대량생산해서 장시간 전국 대량유통 해먹는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모든 제도가 정비되어 있어서, 농사꾼도 망하고 소비자도 망한다, 조금 더 큰 눈으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곡물을 엄청나게 수입해서 제대로 깔끔하게 먹지 않고 죄다 쓰레기로 버리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 가난한 아이들이 굶주리기까지 하는 도덕적인 문제도 있다.’라고 정리를 마치고, 그렇다면, 강원도 산골짜기 채소 농사꾼이 폐농하지 않고 계속 농사지어먹고 살 수 있기 위해서, 이제 해야 할 일은 농사꾼 손으로, 우리 농산물로, 비닐봉지 ․ 플라스틱상자 ․ 유리병 ․ 깡통 등에 들어갈 식품을 만들고 원활하게 유통되도록 농업정책과 제도와 법을 손보는 일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는데요, 정책이나 제도나 법을 손보는 것, 이런 게 바로 정치 아니겠어요? 이런 될 것 같지 않은 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정당은 우리나라에는 녹색당밖에 없으니 녹색당으로 제발로 걸어 들어가는 거지요. 지금은 공공의 적처럼 사람들이 얘기하는 정당도 옛날 민주노동당 시절에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냈어요. 영세 자영업자가 최소한 5년 동안은 쫓겨날 걱정 없이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게 만든 법인데요, 저는 이게 그 정당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도 한 10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미미하더라도 뭔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인데요, 뜻밖의 강적이 또 나타난 거예요.

 

양상추를 미국에서 직접 수입해 들여왔어요. 재작년인가? 작년인가 그래요.  양상추가 어떤 채솝니까? 수분함량이 많고, 조직이 허술해서,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지면 밭에서 그냥 바로 썩고 물러버리는 채소잖아요.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7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약 50~60일 정도는 ‘수확 제로’ 상태가 돼요. 제 아무리 고도가 높은 고랭지라고 해도 이 시기에 양상추를 수확할 수 있는 상태로 키우는 건 불가능해요. 밑둥부터 다 썩어버리니까요. 이 시기에는 미리 수확해서 저장해둔 물건이 시장으로 나오는데, 저장한 양이 다 쓰이고 얼마 남지 않게 되면 여지없이 값이 폭등하고 품귀현상이 나타납니다. 매년 그래요. 방법이 없거든요. 저장도 까다로워서 상처가 조금이라도 있거나 병이 조금이라도 있는 녀석들은 저장 중에 망가져버리고요, 시들지 않고 결구된 채로 아삭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랩 포장을 해야 하고 저장 온도도 세심하게 유지해야 하는 등 상당히 까탈스런 녀석인데, 미국에서 수확해서 태평양을 건너 대한민국 시장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저장이나 이동 등의 문제로 그나마 수입농산물이 못 들어오고 우리나라 농사꾼들 먹여 살리던 신선채소까지, 그것도 양상추 같은 잘 시드는 까다로운 녀석까지 쳐들어온 걸 보고 제가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직감적으로 느겼지요. 끝.났.구.나!

 

한-중FTA를 체결하면 이제 중국에서 밀고 들어오겠지요. 몇 구백 퍼센트를 넘나드는 상당히 높은 관세를 물면서도 중국 농산물은 이미 우리나라 시장을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는데, 대한민국과 중국이 벌이는 자유무역협정은 말할 것도 없이 두 나라 사이에 재화나 용역이 자유롭게 오가는 걸 가로막는 유무형의 장벽을 찾아내서 다 허물자는 얘기니까 농산물과 관련해서는 관세장벽을 허물겠지요. 대한민국 정부에서 돈을 내서 수행하는 정책연구 자료를 보면, 연구자들은 농업을 사양산업으로 분류하고, 저항이야 있겠지만 이번이야말로 사양산업을 정리하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언급하고 있더구만요.

 

앞서 든 예를 다시 써먹어보자면, 이제 한 10년만 지나면, 백아무개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재래시장에 쑥 들어가서 아무 “무우”나 하나 사 가지고 나왔을 때, 그 무우가 국산 무우일 확률을 최소한 10%정도라도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거지요.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면, 농사꾼들이 다 몰려나와서 한-중FTA를 막아내기 위해서 열심히 싸워야 할 것 아니요?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 농민 전사들이 이제 다 늙어버렸어요. 몇 년입니까? 싸워 오신 세월이…. 평생을 싸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텐데, 시민들의 호응도 시들하고, 농사꾼들은 늙어지고, 편하게 무임승차해먹어온 저 같은 귀농한 농사꾼들은 아직 싸울 줄을 모르고…, 그러니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들은 다 어둡고 칙칙합니다. ‘멸종’이라는 단어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 농사지어먹지 않는 인구 5천만의 나라. 현재 도시화율 90%. 조금만 더 있으면 도시국가가 될 텐데,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소멸하지 않은 도시문명은 없었던 것인데요, 여차하면 씨가 마를지도 모르는 겁니다. 제 생각이 너무 극단적이고 음울한 것 맞지요? 설마 그렇게까지 되기야 하겠어요? 이제 여기 강원도 산골짜기는 본격적인 겨울이 오나 봐요.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빗발․눈발이 오락가락하는 차고 쌀쌀한 날입니다. 겨울 잘 나시고 새봄에 힘차게 기지개 켜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