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화천엔] 2015년 4월호 특집 “나는 농사꾼이다” 중 한 꼭지. 사진은 6년이나 된 오래된 사진.
농담, 농사이야기
백승우
지난 밤 꿈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나와 서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사 꿈같지 않아 부리나케 일어나 꿈속에 들은 꿈같은 얘기를 적었습니다. 농사이야기라서 농담입니다. 그냥 농담이니까 재미삼아 보시면 되겠습니다.
돌이: 순아, 우리 농부들이 농사지어 먹고 사는데 제일 어려운 점이 뭔 줄 아니?
순이: 팔아먹는 게 제일 힘들다고들 하던데? 맞아?
돌이: 딩동댕! 맞았어, 맞았어. 바로 그거야. 그러면 팔아먹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졌는지는 아니?
순이: 누가 그러더군. 이게 다 수입농산물 때문이라고.
돌이: 역시 딩동댕! 아주 좋았어. 그러면 수입농산물은 다 어디 있는 거니? 수입농산물이 잘 안 보이잖아?
순이: 원물보다 가공품이 더 많은 거 아니야? 대기업에서 값싼 외국 농산물 사다가 다 가공해서 팔아먹으니까 안 보이는 거지.
돌이: 또 딩동댕! 세 번 연속 딩동댕은 아주 드문 일인데, 역시 순이는 정말 훌륭한 아줌마야. 소주, 맥주, 막걸리, 포도주, 과일주스, 라면, 국수, 빵, 과자, 피자, 햄버거, 짬뽕, 짜장, 콩기름, 옥수수기름, 들기름, 참기름, 포도씨유, 올리브유, 초콜릿, 커피 등등등 이게 다 수입농산물이잖아. 게다가 소, 돼지, 닭 먹이는 사료가 다 수입농산물이지. 사람들이 이런 수입농산물로 배를 채우니, 우리 농민들이 농사지어먹을 품목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고, 수입 들여오기 힘들어서 그나마 돈이 되는 품목은 몇 개 안되니까, 사람들이 돈 되는 그 몇 개 안 되는 품목으로 다 몰려들어서, 여지없이 농산물 값이 폭락해버리는 거라고.
순이: 그래서 농민들이 어려운 건 알겠는데, 과연 해결책이 있느냐는 말이지.
돌이: 없어. 전혀 없어. 깜깜 절벽이야. 사람들은 경쟁력을 키우자고 하는데, 경쟁력 키우자는 건 무서운 말이야. 정말 무서운 말이지. 농사 규모를 키우자고 하는데, 산 허물고 바다 메워서 규모 키울 건가? 아니잖아. 지금 농사짓는 집 열 집, 백 집 거 다 모아서 한 집이 짓자는 말이라고. 열 집 백 집을 한집으로 만들자는 거야. 그러면 한 집 먹고 살게 하려고 아홉 집, 아흔아홉 집 죽으라는 거잖아. 이건 무서운 얘기야.
순이: 살 길이 그것밖에 없으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돌이: 하나 살고 아홉 죽고, 하나 살고 아흔 아홉 죽는 길이 있다고 하면, 그 길을 사는 길이라고 봐야겠니? 죽는 길이라고 봐야겠니?
순이: 어? 그렇게 말하니까 살 길이 아니고 죽는 길이네?
돌이: 아흔 아홉은 살리지만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길, 아니면 아홉은 살리지만 도저히 하나는 마저 다 살릴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나는 잃어야 하는 길, 이런 길을 사는 길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겠니?
순이: 그러니까 네 말은 규모화라든가 경쟁력을 키우자는 얘기는 다 죽이겠다는 얘기라서 무서운 얘기라는 거지?
돌이: 바로 그거야. 고루 잘 살자고 해야 하는데, 경쟁력을 키우자고 하거든. 그러면 다 죽는 길로 곧장 가는 거야.
순이: 그러면 농민이 고루 잘 살 길은 있는 거니?
돌이: 꿈같은 얘기라서 꺼내기 민망하다. 유식자들이 하는 소리야.
순이: 궁금하잖아, 그게 뭔데?
돌이: 우리는 그냥 먹고 살려고 무심코 농사를 짓는데, 그런데 사실 잘 따지고 들어가 보면, 농사짓는 일이 농산물만 만들어내는 게 아니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좋은 일 여덟 가지를 저절로 하게 된다는 거야. 그게 뭐냐면 우리 땅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일,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을 곧장 흘러가지 않게 오래 가둬서 지하로 스며들게 하는 일, 자연환경을 지키는 일, 경관이 보기 좋고 아름답게 되는 일, 문화적 소산을 지키고 이어가는 일, 지역사회를 유지하고 활성화하는 일, 식량안전을 지키는 일, 사람들이 쉬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터전을 가꾸는 일 등등이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라고 하는 건데, 이걸 돈으로 따지면 수십조 원이나 돼서, 농산물 값을 다 합한 것보다 외려 이 돈이 더 크다는 얘기야.
순이: 그래서?
돌이: 농민들이 농사를 안 짓고 도시로 다 나가버리면, 나라에서 일꾼을 사서 이 일을 꼭 해야 하는 거라고.
순이: 그렇겠지.
돌이: 그러니까 어차피 일꾼 줄 돈을 농민들한테 줘야 한다는 얘기야. 농민들한테 나라에서 월급을 줘야 한다는 거지. 얼만큼? 기본적으로 먹고 살 만큼. 농민이 기본적으로 먹고 살 만큼의 소득은 정부가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 그게 <농민기본소득 보장제>야.
순이: 옳아! 그거 아주 좋겠는데?
돌이: 그 대신,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먹고 살 만큼은 보장해줬으니까 농민들도 환경을 정말 잘 지키는 농사를 지어주시라는 거지.
순이: 그 무공해농사라는 거?
돌이: 응. 요즘은 친환경농사라고들 하지. 유기농, 무농약 이런 거.
순이: 사람들이 다 유기농하면 생산량도 줄어서 폭락하는 일도 없겠네?
돌이: 그렇지, 그렇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니까. 게다가 먹고 사는 걱정이 없으니까 쎄가 빠지게 농사를 많이 지을 필요도 없고. 힘닿는 데까지 적당히만 지으면 되겠지.
순이: 그러면 골고루 다 산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너무 게을러지지 않을까?
돌이: 좀 게으른 게 더 좋지 않니? 넌 죽기 살기로 아등바등 사는 게 좋아?
대화가 이쯤에 이르렀을 때, 누렁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와서 뒷발을 멋지게 들어 올리고 갑돌이 발등에 오줌을 찍 갈기고 지나갔다. 개꿈인가? 우리한테는 꿈같은 얘기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농민을 다 살리는 나라도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더 뭔가 한참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 적을 수 없다. 아쉽지만 여기서 끝.
※백승우는
“농사도 짓고 글도 쓴다. 농사 주작목은 애호박이고, 함께 쓴 책으로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토종곡식-씨앗에 깃든 우리의 미래> <내손으로 가꾸는 유기농 텃밭> 등이 있다. 용호리 이장 일을 보고 있고, 화천현장귀농학교 일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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