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우리농업이 처한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서

아하 2015. 10. 11. 07:41


농업농촌농민

-삼농(三農)은 마지막 사회 안전망이다

백승우(농부, 작가)

 

저는 우리 사회에 혹시 닥칠지 모르는 사회적 위기와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에 대한 얘기를 하려 합니다. 사회적 위기는 항상 사회적 약자부터 쓰러뜨립니다. 옛날부터 그랬지요. 사회적 위기는 강자에겐 기회이고 약자에겐 재앙입니다. 가물이 들거나 큰물이 나서 흉년이 들면 보리고개에 보리 한 말 꿔주고 유월 망종 지나 보리타작하면 한 말 반을 받았습니다. “장리라고 합니다. 아주 죽을 지경이 되면 금리가 치솟아서 한 말 꿔주고 두 말 받는 곱장리까지 성행합니다. 못 갚으면 땅이 날라 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는 똑같습니다. 우리도 1990년대 말에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사회에 몰아닥친 갑작스런 위기로 인해 극빈층은 노숙자로 나 앉았고, 차상위 계층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서민들은 유일한 재산인 집을 날려야 했지요. 부자들은 어땠습니까? 더욱 부자가 되었잖아요. “이대로!”를 외쳤다고 하지요?

산업으로서의 농업이 지금 이대로 계속 간다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회적 위기에 우리 사회는 더욱 더 취약해질 겁니다.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날로 커지고, 우리 농업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농업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다면, 2008년에 국제 곡물가가 급등할 적에 가난한 나라 가난한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걸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서 폭동이라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 세대는 일자리를 구걸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대로 쭉 간다면 어쩌면 다음 세대나 다다음 세대는 먹을 걸 구걸해야 하는 시대를 살지도 모릅니다.

힘 있는 자들, 돈 있는 자들은 한사코 사회를 위기 상황으로만 몰아가려 합니다. 사회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정책만 입안해서 힘으로 밀어붙입니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하는 게 자기들에게 지금도 이익이고 위기가 닥쳐도 이익이라는 걸.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힘없는 다수밖에 없습니다. 농업과 관련한 논의는 그래서 이 정책이 옳으냐 저 정책이 옳으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누가 힘이 더 세고, 누가 더 힘이 약한가 하는 정치의 문제가 됩니다. 자기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한다면, 혹은 사회적 약자의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농업과 농민을 구석으로 몰아대는 우리 정부에 대해서 안 돼!”라고 말해야 합니다


 

다른 모든 역할을 다 떠나서,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농사꾼들은 스스로 빈곤하면서도 사회 안전망으로 기능합니다.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업과 농촌과 농민의 붕괴는 우리 사회 가장 마지막 사회 안전망의 붕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우리 삼농이를 살릴 것인가를 놓고 잠시 살펴봐야겠습니다. 우리 농업은 여러 가지 모순이 중첩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첫째. 농지는 적고 인구는 많아서 식량 자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데 오히려 먹을거리는 남아돈다.

둘째. 농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농민이 없다. 어떻게 하면 농민을 늘릴 수 있을까? 농민을 늘리자면 땅이 많아야 하는데 땅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규모가 작은 소농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소농은 규모가 작아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으니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규모를 키워 가격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농민 수를 줄여야 한다.

셋째. 먹을거리가 남아도니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데, 소비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국산 농산물은 너무 비싸다. 특히 국산농산물로 만든 가공식품이나 과일이나 축산물 등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사치품에 가깝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국산 농산물 축산물 및 가공식품 생산을 늘려서 값을 떨궈주길 바란다. 값이 떨어지면 농가소득이 줄어든다. 그런데 농가소득을 높여야 농업을 유지할 수 있다.

넷째. 농가들의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득은 높이되 빈부격차는 줄여야 농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농산물 품질과 관련해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품질(외관과 맛 안전성 등)에 대한 기대는 굉장히 높다. 이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기술과 고가의 시설 투자 등 기업형 농가가 필요하다. 영세 소농을 구조조정해서 정리하고 특별한 소수를 전문화해야 한다. 농촌이 텅 빈다.

삼농이를 살려 내려면 제가 보기에는 이 네 가지 모순 덩어리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입니다. 제가 문제를 잘 정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산업화된 나라라면 모두 안고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해법이 필요합니다.

 

*백승우. 화천 산골짜기에서 채소 농사, 글 농사 지으며 산다. 함께 쓴 책으로 <소비자를 위한 유기농 가이드북-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씨앗에 깃든 우리의 미래-토종 곡식>, <내 손으로 가꾸는 유기농 텃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