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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독" 중 진화의 일반법칙에 대한 언급

아하 2015. 4. 4. 21:31

존 유드킨 지음, 조진경 옮김, 설탕의 독, 이지북, 2012.

영국에서 <Pure, White and Deadly>로 1972년 출간

존 유드킨은 설탕이 심장병을 일으키는데 일조한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지루한 논증 중에 다음과 같은 소리를 한다.

"특정 원인이 특정 질병을 일으킨다는 증거"와 관련해서 논증하고자 할 때 살펴봐야 할 사항 중에 "일반법칙에 관해서는 환경 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요즘 특별히 기억해야 할 한두 가지 생물학적 원칙이 있다고 본다. 첫째, 변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거나 지나치게 심하지만 않다면 살아 있는 유기체는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정도가 아주 심하면 유기체는 죽을 수도 있다.

모집단 구성원 중에는 특히 내성이 강해서 대부분 죽을 때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변화가 계속되면 생존자 가운데서 결국 새로운 모집단이 발생할 것이고, 그구성원은 모두 강한 내성을 가질 것이다.

모집단에서 상당한 변질이 일어나려면 약 1000~10000세대가 필요하다. 인간을 기준으로 하면 약 3만~30만 년의 시간이다." (124쪽)

"널리 알려진 질병의 원인이 음식이 아닌지 우려할 이유가 있다면, 최근에 먹기 시작했거나 먹는 양이 많이 늘어난 식품 성분을 살펴야 한다. 여기에서 '최근'이란 진화의 관점에서 짧은 기간, 즉 10000년을 의미한다. 거꾸로 식품의 성분이 인간의 식생활에서 오랫동안(100만 년 이상) 중요한 부분이었다면 그것이 질병의 원인일 것 같지는 않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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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효소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시중에 나와 있는 효소라는 것이 설탕물일 뿐이다."는 주장이었다. 막연히 알고 있던 지식을 점검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발효에 대해 살펴봤다. 효소라는 것은 없다. "효모"라는 균이 있을 뿐이다. 효모는 당을 분해해서 알콜을 만드는 기특한 균이다.

효소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 같다. 

매실이나 산야초나 개복숭아나 사과나 기타 등등의 재료를 설탕에 재우면 삼투압으로 그 물체에 있던 액체가 다 빠져나온다. 그리고 고정된다. 설탕은 보존제로 기능한다. 소량의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효모균이 알콜발효를 시도하지만  조건과 환경이 맞지 않아 실패한다. 효소를 마시면 약간 술 기운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식물에 있던 액체를 뽑아 변질되지 않게 저장하고 있는 설탕물은 나쁜가? 그렇지 않다. 설탕이 처음 도입될 때는 약으로 쓰였다. 

효소가 병을 고치는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도 병을 고친다. 인간은 물적인 존재이면서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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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의 저자인 유드킨도 유전적인 요인이 제일 크다고 말하고 있다. 

" '원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해야 한다. 첫째로 내가 이야기하려는 질병 중에는 열 때문에 얼음이 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설탕 때문에 생기는 질병은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121쪽)

번역이 정말 아쉬운 책이다. 역자가 책을 이해하지 못 하고 번역한 대목이 너무 많다.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그 의미를 알 수 없고, 앞 뒤 호응이 안 맞는 대목 투성이다. 여기도 

얼음이 녹는 원인은 열이다. 와 같은 방식으로 어떤 질병의 원인이 설탕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질병은 없다.

로 번역했으면 좋았을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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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은 그저 적당히 먹으면 된다. 너무 많이만 안 먹으면 괜찮다. 정도의 얘기다.

적당히는 얼만큼일까?

모르겠다.

"가장 중요하게 기억할 점은 세상에 정말로 유독한 물질 또는 유독하지 않은 물질은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물질의 성질뿐만 아니라 그 양이다. 본질적으로 무해한 물질은 없다. 물도 많이 먹으면 위험할 수 있다. 그리고 완전히 해로운 물질도 없다."(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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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은 소화가 안 되는 셀룰로오스와 소화가 되는 당과 녹말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당이 되고 마는 탄수화물은 몸에 좋을까?

곡식에서 얻는 성분은 탄수화물이다.

유드킨의 독특한 관점, 본질적인 주장은 여기에 있다.

"널리 알려진 질병의 원인이 음식이 아닌지 우려할 이유가 있다면, 최근에 먹기 시작했거나 먹는 양이 많이 늘어난 식품 성분을 살펴야 한다. 여기에서 '최근'이란 진화의 관점에서 짧은 기간, 즉 10000년을 의미한다."(125쪽)

"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식단은 가능한 한 예전 사냥과 채집을 하던 시절에 먹을 수 있었던 식품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믿는다."(139쪽)

"진화의 측면에서 인류를 포함한 모든 동물은 최근까지도 다른 동물을 사냥하거나 다른 동물이 먹다 남긴 고기를 찾아다니면서 먹이를 얻었다. 우리 조상은 20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육식동물이었으며, 우리가 식량 생산자가 된 지는 1만 년이 채 안 된다."(33쪽)

진화의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식사는 육식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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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33쪽에 쓴 글을 유드킨은 입증할 수 있을까?

단지 이 양반의 허망한 추측일 뿐인 것은 아닐까?

인간 따위가 자연 상태에서 쉽게 잡아 먹을 수 있는 동물이 그렇게 많이 있었을까?

인류가, 우리가 상상하는 바의 "사냥"을 한 이유는 식량보다 오히려 옷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인류의 흔적이 늘 강가에서 조개무지와 함께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조상들은 수명이 우리 만큼 길었는가? 

우리 조상들은 우리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건강을 유지했는가? 

음식과 관련해서 말할 때, "질병"이라는 함정에 빠지면 놓치는 게 너무 많아 보인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