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학교자체가 갖는 폭력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다음 네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1. 자연상태에서 집단생활하는 동물 동년배 동성집단은 없다.
2. 밀실 사육은 이상행동을 유발한다.
3. 근대학교의 기원자체가 폭력을 목적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4. 학생들이 처한 상황은 견디기 힘든 인권탄압 상황이다.
5. 마무리
차분히 살펴보자.
학교폭력을 진정으로 근절하고자 한다면, 학교라고 하는 제도 자체에 대한 세세한 살핌이 필요하다.
1.
예컨대 우주 중학교 "1학년 3반"을 구성하는 아이들은 남성이다. 나이도 같다.
이게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금만 살펴보면 어색하기 짝이없는 일이다.
아이들은 "또래집단"을 형성하는 게 자연스럽다.
성장단계에 따라 또래집단이 구성되는 게 맞다.
학교를 시찰하는 아돌프 히틀러. /사진 germanhistorydocs.ghi-dc.org
형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또래집단을 떠난다. 동생이 그 자리를 채운다.
동생의 동생의 동생이 들어온다.
아이들은 형으로서, 동생으로서,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배우며 큰다.
같은 나이 같은 성을 가진 아이들끼리 모아놓으면, 협력보다는 경쟁이 자연스런 감정이다.
그냥 둬도 그런데, 주변의 모든 인간들이 이들을 저울질한다.
여기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는 다 겪어봐서 안다.
과도한 스트레스...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다.
참고로, 회사에서 어떤 팀을 구성할 때 전부 입사동기들로 구성했다고 생각해보라.
군대에서 분대나 중대를 전부 입대동기로 구성했다고 생각해 보라.
2.
밀식사육은 이상행동을 유발한다.
닭을 키울 때, 비좁은 우리에 몰아넣고 옴쭉달싹 못 하게 가둬놓으면,
제일 약한 놈은 살아남지 못 한다.
어떤 놈이 약한 놈 똥구멍을 쪼아서 피가 나면 모두가 달려들어 쫀다.
내장을 뽑아서 쪼아 먹는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양계장에서는 병아리때 부리를 자른다.
닭만 그런 게 아니다.
동물행동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 비교적 조화로운 공동생활을 영위하던
동물들이 우리에 갇히면 이상한 행동(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우리 속에 갇힌 채로, 충분한 먹이가 공급되면
먹이활동을 중심으로 생존을 위해 짜여진 역할분담과 질서가 깨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놀이를 즐기며 놀이를 중심으로 기능하던 또래집단과 또래집단의 질서같은 것이 깨지고
이상 사육 상태에 놓인 그것도 밀식사육 상태가 된 아이들의 이상행동은 어쩌면 당연하다.
3.
최초로 근대학교가 제도화된 나라는 프로이센이다.
학교는 부국강병의 기초가 되었다.
프로이센은 소독일주의를 제창하고 독일을 통일했다.
그리고 독일은 아우슈비츠를 낳았다.
"나치"를 가능하게 한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 학교다.
명령에 따라, 인간적인 사고 없이
터미네이터처럼 돌진하는 독일병정을 키운 모태가 학교라는 것이다.
독일식 학교제도는 일본을 통해 한반도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변함없이 그대~로다.
4.
아이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이는지 보자.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은 움직이고 싶다.
옆 아이를 괜히 툭 치거나 장난을 건다.
바로 분필이 날아오거나 폭언을 들어야 한다(우리땐 그랬다).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 좋다. 움직이진 않는다. 그럼 말이라도 하자. 소곤소곤 대화를 시도한다.
이제 불려 나가서 몇 대 맞고 욕 들어먹어야 한다.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 좋다. 그럼 잠이나 자겠다.
뒤통수 한 대 얻어맞고 벌 서야 한다.
잠을 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 좋다. 그럼 재미있는 상상을 하겠다.
이름을 몇 번 불리고,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어른의 비아냥과 폭언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것이냐?
수업을 재미있게 하든지. 아니면 좀 내버려 두든지.
아이는 저항할 방법이 없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이상행동을 유발한다.
5. 마무리
그럼, 왜 요즘들어 더 학교폭력이 극성인가?
이는 아이들의 스트레스 저항성이 훨씬 약화됐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의 강도가 훨씬 강해졋기 때문인 것 같다.
잠시라도 다 내려놓고 마음껏 놀 수 있는 틈을 안 주는 것이다.
압력밥솥 구멍을 다 막고 불을 땐다. 불은 점점 세진다. 터질 수밖에 없다. 폭발할 수밖에 없다.
우리 때만해도 숨 쉴 여력은 충분했다. 학교 끝나고 운동장에서 놀고 싶은 만큼 놀 수 있었다.
또래집단의 완벽한 붕괴, 집안에 형재자매의 부재, 부모와 교감할 시간의 절대부족 등등...
내 얘기의 핵심은 학교라고하는 제도 자체가 왜 필요한 것인지,
계속 있어야 하는 것인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는 없는 것인지...
이런 근본적인 성찰이 이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대학교가 서당을 붕괴시키고 태어난 것처럼
지금의 사회환경의 변화는
근대학교를 붕괴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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