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호, 김경옥 선생님께
나누어 주신 민들레 80호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산촌유학 특집을 보고 싶어서, 서울 가는 길에 기윤이 형한테 민들레 구했느냐? 구해 봐야 하지 않느냐? 얘기 나누며 갔는데, 나누어 주셔서 참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일하다가 쉬는 시간 짬짬이 보고, 밤늦게까지 열심히 읽었어요. 양성호 선생님이 쓰신 글을 읽고는 냅다 명학이 형한테 전화했어요. 당장 “따로국밥 교사에게 고함”을 메일로 보내라! 글로 사람의 마음과 삶을 움직이다니! 놀라움을 “배아픔”으로 표현했지요. “형이 그런 훌륭한 짓을 하다니, 아, 배아퍼!” 뭐, 이런 식입니다(웃음). 즐겁고 명랑하고 유쾌하게 얘기 나눴습니다. 명학이 형 목소리가 한층 밝아져서 좋았어요. 민들레 80호가 준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표지에 써 있는 글]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여는 민들레 <80호> 2012년 두번째
기획 또 하나의 대안, 산촌유학
산촌유학의 현황과 전망 ; 따로국밥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 일본 산촌유학 40년의 반성
이 반짝이는 아이들이 어쩌다 중딩 같은 걸 하고 있을까?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만나다
어느 날 불쑥 우리 곁으로 다가온 협동조합 ; 우리가 보장받아야 하는 건 반값 등록금만이 아니다
현선생님은 이렇게 쓰셨지요.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닌지. 어른들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요(13쪽). 그리고 “교육에서 멀어지”자는 글을 책 한가운데 배치해 놓으셨어요. 반가웠어요. 교육과 관련해서 공부하고 오랫동안 생각해서 가 닿은 제 종착점도 바로 여기였거든요.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최선의 교육은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라구요.
인간이란 게 보고 배우는 존재잖아요? 보고 듣고, 보고 들은 대로 따라하는 게 인간이다, 따라서 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아이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길 바란다면 부모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따로 어떤 굉장한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교육과 관련해서 궁극적으로 물어야 할 것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내가 지금 당장 행복해질 것인가이다”라고 매듭을 지었습니다. 귀농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자유롭고 행복해지자는 것이 귀농이지 시골로 오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어디에 있느냐는 부차적일 뿐이다.
대안학교나 대안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제 의견을 묻는 분들께는 이런저런 얘길 했어요. 세 가지쯤 되나 봐요.
첫 번째는 욕망이 넘실대는 곳이다. 대안교육공간이 열악한 곳이어서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희생],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내놓은 만큼 돌려받길 바라는데[희생의 대가] 그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생각의 실현’이다. 결국 아이들 교육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그냥 쓰는 쉬운 말로 하자면 ‘지 맘대로’해 보고 싶어서 지지고 볶는 열정의 도가니탕이다라구요. 좀 극단적인 표현이지요? (쑥스런 웃음)
두 번째는 문약하다. 제가 알기로 대안교육운동을 주도하신 분들이 대부분 인문학을 공부하신 분들입니다. 인문학은 뿌리가 ‘귀족들의 교양’이예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이죠. 평민들의 학문인 실용학에 토대를 두어야 하는데, 귀족들의 교양에 토대를 두었으니 나약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내보이는 길, 출구는 딴따라나 룸펜밖에 없다. 꽉 막힌 길이다.
세 번째는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놀이는 한시적인 것으로 일을 위한 준비라 봐야겠지요. 몸이 다 크면, 식물로 치자면 영양생장이 끝나면 그 때부터는 일을 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일은 반복적인 강도 높은 훈련을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철의 규율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많이 놓친다고 봤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안교육이 대안성을 갖기 위해서는 장인교육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평민들의 학문인 실용학이 접목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하여 성인이 됨과 동시에 원하기만 한다면 자립할 수 있는, 자립해서 자율 속에 자유를 누리며 자족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민주 시민을 양성해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안교육이 가야할 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혁신학교라는 게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겨울이었나? 그래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학교’는 무슨 짓을 해도 ‘학교’라고 생각했어요.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인 것처럼(정말 극단 적인 표현이죠? 웃음)요. 그런데 혁신학교라니! 제 살아 생전에는 ‘학교’가 변하는 모습을 보지 못 할 거라는 일종의 신앙 같은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었는데, 세상에, 학교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예요. 이게 웬 청천벽력이란 말입니까. 혁신학교가 제 굳은 사고에도 새로운 물꼬를 틔워줬습니다.
대안학교가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제도교육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걸 보면서, 대안학교가 보편교육의 대안이었다는 걸 새롭게 깨우쳐 알게 된 거지요. ‘일반’학교가 하도 뻘짓을 하니까, ‘일반’학교가 적어도 이 정도쯤은 돼야해, 라는 현행 제도교육에 대한 일종의 대안이었다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 하면, 대안사회를 준비하고 맞이할 활동가를 양성하는, 인재양성소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대안학교라는 것이 한계가 분명한 시도가 아니었나 싶은 거예요. 주관심사가 “내 아이”잖아요? 독재정권시절 혹은 일제 강점기에 “내 아이”가 민주투사, 독립투사가 되어 도망 다니고, 붙잡혀서 고문 받고, 감옥살이하고, 살해되기도 하는 위험한, 불순한 삶을 살겠다고 할 때, 이를 용인하고 받아들이고 지원할 마음을 기꺼이 냈을 부모가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내 아이”를 붙들고는 결코 사회적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회적으로 현재 받아들여지는 가치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대안적인 가치는 늘 틈이 있어서 서로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보편교육은 현재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하기 힘든 일입니다.
저는 대안학교와 관련해서 대안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과연 대안적인 삶을 살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안학교가 열어 보일 대안적인 삶이란 게 과연 어떤 것일까? 대안적인 삶을 살기 위해 무릅써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삶을 위협하는 뭔가를 내 놓을 준비나 각오는 되어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진 거지요.
그날 옥상에서 김경옥샘하고 얘기 나누면서 잠시 얘기를 꺼냈는데요, 저는 결국 시대정신과 학교가 만나야 대안학교라 할 수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으로 흐르고 있어요. 언제나 사회는 그 시대에 해결해야 할 어떤 과제를 가지고 있고 이를 해결해 낼 사람을 필요로 하잖아요? 그 일을 할 사람을 길러 내는 학교를 대안학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신흥무관학교라든지 오산학교라든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투사를 길러내야 했을 거고요, 독재시절에는 민주투사를 길러내야 했을 것이고요, 그렇다면 지금은?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고 여기에 온 힘을 기울일 인재를 길러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거지요.
저는 우리시대의 시대적 과제는 크게 보아 네 가지가 아니겠느냐 싶어요. 첫째는 우리 사회 내부 문제, 즉 극심한 빈부격차의 해소와 협력경제사회 건설 둘째는 우리 민족의 평화적인 통일과 화합 그리고 진정한 독립 셋째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는 구호와 지원 및 협력 넷째는 환경 위기에 대응할 생태적 삶의 실현 같은 것들요.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전문 인력을 키워내야 하겠지요.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뛰어난 능력을 가져야 할 거예요.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협력경제 사회를 만들려면 탁월한 경제적 감각과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구요, 통일과 독립을 이끌어내려면 일본말 미국말 중국말 러시아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각 나라의 역사와 사회에 정통한 외교가라야 할 것이구요, 국제 사회에서 활동할 사람이라면 전 인류를 끌어안는 따뜻한 가슴과 단단한 몸 지치지 않는 열정과 깊은 지혜와 폭넓은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구요, 우리 사회를 생태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면 하하 대체 얼마나 큰 능력을 가져야 할까요?
이렇게 능력이 뛰어난 자가 진정으로 대안적인 가치를 지향한다면, 무릅써야 할 것은 또 얼마나 많겠어요? 국가권력이 아직도 물리적 폭력을 가하고 있긴 하지만 옛날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니까 이제 목숨까지 내 놓을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 예를 들면 가난해지는 것,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 외톨이가 되어 손가락질 받는 것, 과로로 인한 신체적인 노화(웃음). 이런 것들 따위는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지요?
외딴 산골 마을에 틀어박혀 농사짓느라고 꽤 오랫동안 책도 신문도 방송도 잘 보지 못 했어요. 이미 다들 나누신 얘기를 쌩뚱맞게 하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교육이라면, 아이들 가슴을 뛰게 하고, 뭔가 해야겠다는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문한 탓인지 저는 아직 대안교육진영에서 그런 패기 넘치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 했어요.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육사의 메타포는 요 근래 십여 년 동안 저를 감싸고 있는데요, “총을 들고 싸우는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행복한 인간”이라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지점을 가리키고 있지 않나 싶어요. 강철 같으면서 동시에 무지개 같은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 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저는 과연 그런 교육을 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급절망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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