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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대기 협동조합을 만나다-3. 농협

아하 2012. 6. 6. 23:34

[썼다가 짤린 글 도입부입니다-_-;;]

저는 마흔 네 살 먹은 남성 농사꾼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용호리이고 애호박, 피망, 꽈리고추 등을 유기재배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원유기농>이라는 영농조합 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강원유기농>은 화천, 홍천, 양구 등지에 산재한 16명의 농사꾼이 조직한 단체이고 주로 여름철 채소를 각자 생산해서 공동으로 출하합니다. 우리 조합의 역사는 비교적 긴 편인데, 98년에 <북한강유기농운동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니 올해로 15년째입니다. 우리가 출하하는 농산물 중 50%정도가 소비자조합인 두레생협으로 갑니다.

제가 속한 조합을 열거해 보자면 먼저 생산자로서 우리 지역에 있는 간동농업협동조합, 영농조합법인 강원유기농, 두레생협 생산자회 등이고 소비자로서는 춘천소비자생활협동조합입니다. 2001년 춘천생협을 처음 설립할 때 저는 첫 사무국장으로 일한 인연이 있습니다. 제 인식은 제 경험치를 크게 넘어서지 못 합니다. 그러니 우선 농협 얘기부터 해 볼까 합니다.

 


1.

몇 년 전입니다.

“고추 말뚝 얼마씩 해요?”

“150짜리가 550원이예요.”

“왜 이렇게 비싸지? 화천농협은 500원인데 이보다 훨씬 짱짱하고, 신북농협은 더 싸다던데…”

“비싸면 거기 가서 사세요.”

“뭐라?”

제가 폭발하던 순간입니다.

제가 조합원으로 있는 간동농협엔 ‘구매계’가 있어요. 농협이 물건을 팔고 있으니 ‘판매계’라고 해야 맞을 텐데, 구매계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협동조합 원리상--제가 앞으로도 “원리상”이라는 단어를 많이 쓸 텐데요, 현실과 원리가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자꾸 씁니다. 이해해 주세요.---조합원이 주인이고 직원, 즉 조합원으로부터 일정한 급여를 받는 협동조합 활동가(직원)가 있는데, 활동가들이 조합원을 대신해서 물건을 공동구매해다가 나누는 것이니까, 물건 나누는 곳이 구매계가 됩니다. 그런데 구매계에서 일하는 우리 직원이 주인한테 물건을 “팔고” 있으니, 게다가 일반 농자재상 주인도 이 따위로 손님을 대하지 않는데, 지금 하는 행태가 이게 뭐냐 말이죠. 조합장한테 당장 전화 합니다.

“조합장님, 직원들 교육 똑바로 못 시켜요? 이게 뭡니까? 직원이 조합원한테 비싸면 딴 데 가서 사리니,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욧! 직원들이 조합원 알기를 똥 친 막대기로 아니, 조합장님 당신 월급 받아먹고 대체 하는 게 뭡니까?”

여기는 글이니까 공손하게 적었지만 쌍시옷 날려가면서 막 들이댔지요. 조합원이 이렇게 막 나가면 조합장님 꼼짝 못 합니다. 하하하. 조합장은 원리상, 직원 관리 잘 하고 조합 살림 잘 살펴서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라고 조합원들이 1인 1표의 민주적인 원리에 따라 뽑아 놓은 관리자거든요. 곰곰 생각해보면 조합의 조직원리는 민주주의국가 국가조직원리와 같아요. 조합 직원은 공무원에 해당해요. 조합장은 대통령과 같습니다. 권한이 크고 활동비도 많아요.

직원들이 조합원을 배신하고 업자와 결탁해서 이익을 빼돌릴 수 있어요. 똑똑하신 고위관료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죠. 조합장이 막아야 합니다. 관리하는 거지요. 그런데 조합장이 직원들과 한 통속이 돼서 조합원을 또 배신할 수 있어요. 그래서 국회의원처럼 조합 이사를 직선으로 또 선출합니다. 조합장을 견제해 달라는 거지요. 그래도 불안하니까 감사를 또 직선으로 선출합니다. 그래봐야 결국 다 한 통속이 될 수 있지만 말이죠. 하여튼 원리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 번 총회를 통해 예결산 안을 심의 의결합니다. 조합원 전체가 모여서 직접 점검을 하는 거지요. 그렇게 못 믿겠으면 조합원이 직접 모든 결정에 참여해서, 직접민주주의로 조합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이상일 뿐입니다.

우리 농사꾼들을 대신해서,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우리 입장에서 우리 일을 봐줄 사람들, 열심히 성실히 일하고, 일을 통해 쭉쭉 성장해가지고 업무 능력을 키우고, 그 커진 능력으로 더욱 열심히 조합원을 위해 헌신해 줄 활동가가 필요한 거지요. 조합원들은 이런 활동가를 위해 기꺼이 활동비를 지급하는 거구요. 그런데, 이 자들이 자기들이 주인이고 조합원이 손님인 줄 알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입니까. 조합 활동가 관리 권한은 조합장에게 있으니, 조합장한테 들이댄 겁니다.


2. 

그렇다고 해서 농협이 마치 ‘악의 축’인 양 몰아가는 것도 어폐가 있습니다. 순기능도 참 많아요. 금융업무 면에서 보자면 농사꾼들은 돈 급할 때가 많습니다. 거름을 뿌리고 땅을 갈아서 심고 가꿔서 수확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계속 돈 들어가는 일이 이어집니다. 한 푼도 안 나오는 상태에서 말이죠. 숨이 찬 농사꾼들이 시중 은행에 가면 거들떠도 안 봅니다. 그나마 농협이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융통해서 쓸 수 있어요.

돈 꾸는 게 무슨 자랑도 아니고 또 돈 필요할 때 잘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있는 게 좋으냐 혹은 옳으냐라는 문제는 조금 더 깊고 자세하게 얘기를 나눠봐야 할 별개의 얘깃거리로 하고요, 어쨌거나 살림을 이어가기 위해서 당장 돈은 필요하고 빌리긴 빌려야겠는데, 빌려주는 데가 아무데도 없으면 괴.롭.다는 점에서, 농사꾼들의 괴로움을 농협은 비교적 잘 덜어주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농사꾼들이 조합 사무실에 가서 금융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들(사실은 협동조합 활동가들)과 얘기하다가 막히면 조합장실로 들어가서 조합장한테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조합장은 조합장이기 이전에 이웃이고, 누구보다 농사꾼들 형편을 잘 아는 동료 농사꾼입니다. 이웃이라도 보통 이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 때부터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함께 농사지어오고 함께 아이들을 키워온 절친입니다. 서로 사는 내막을 뻔히 아는 사이입니다. 직원들이야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차갑게” 업무를 수행할 뿐이지만 조합장은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고 “따뜻하게” 조합원을 돌볼 수 있습니다.

지금 농사꾼들이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도시에 있는 무수한 은행들에 비해 참으로 훌륭하고 갸륵하다 할 수 있지요. 혹시 도시에서 이런 은행 보신 적 있는지요? 지점장들이 직접 어려움에 처한 소액대출 고객의 살림 사는 형편을 잘 아는 상태에서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며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슬기를 모으는 그런 은행이 있는가 하는 겁니다.


3. 

제가 살고 있는 간동면은 1,200가구 2,500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돈과 사람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최대 최강 민간 조직이 농협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농협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1) 제가 조합장이라면 우리 농사꾼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첫째로 의료생협을 만드는 일입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서 늘 병원에 다닙니다. 읍내나 인근 도시 춘천으로 주사 맞고 약 타러 다니시는데, 잘은 모르지만 이게 대부분 진통제일 겁니다. 아직 농사일은 하고 있으나 어딘가 아파서 고생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니, 멀리 안 나가고 동네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고, 주치의 개념의 의사가 있어서 항상 돌봐 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요.

시급해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청년귀농학교 같은 겁니다. 농사지을 젊은 사람을 당연히 길러내야 합니다. 삼십대가 거의 없고 사오십 대도 드물고 육칠십 대가 대부분인데, 이대로 간다면 우리 농협도 곧 문 닫아야 할 형편이니, 젊은 농사꾼을 길러내는 일은 목숨줄 부지하기 위한 자구책이거든요. 해야 할 일은 많아요. 관내에 약국이 하나도 없으니 약국도 있어야겠고, 겨울철 놀이터로 탁구장이나 배드민턴장 같은 것도 운영하면 좋을 것 같구요, 아주 작은 영화관이나 도서관도 탐나는 품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죠, 조합장이 만일 이런 일 추진해 보자고 했을 때, 조합 이사들이나 조합원들이 좋아하겠느냐는 거예요. 제 생각에 다 반대하고 나설 것 같아요. “당장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조합이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려고 그래? 걷어 쳐!!!” 아이구, 귀 따가워라.

누가 뭐라고 해도 지역 단위농협의 주인은 조합원이기 때문에, 그 지역 조합원의 수준이 정확히 그 지역 농협의 수준입니다. 지역의 최대 최강 민간조직인 농협이 이런저런 확장성을 갖지 못 하는 이유는 아주 많지만 두 가지 치명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타율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타율성을 극복하고 자율적인 조직으로 나가려는 노력, 즉 조합원 교육을 안 한다는 것이예요. 조합원들 역시 팔고 사는 문제 외에는 별 관심이 없구요.

조합원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조합 운영 원리를 이해하고 조합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 윗분들이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겁니다. 원리상 각 지역별로 지역 단위 농협(그냥 줄여서 단위농협이라고도 합니다)이 있고, 전국 각지의 단위농협이 연합해서 연합회를 구성하는데요, 이 연합회 이름이 농협중앙회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농협중앙회 1,2,3대 회장은 모두 콩밥 먹었구요, 현직 대통령 절친이라는 4대 회장도 제가 보기에 콩밥 먹을 확률 거의 100%예요. 농협중앙회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거대 공룡조직이 되어버렸어요. 우리나라 농협 직원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행정공무원 숫자에 맞먹습니다.


4. 

농협과 달리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했을 때, 그 확장성이 얼마나 큰지를 보려면 마땅히 충남 홍성군 홍동면으로 가 봐야 합니다. 1,600세대 4,0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일개 면에 협동조합 형식으로 구성된 단체들이 수없이 많고 이 조직과 조직,조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얼키고 설켜 있어서, 외부인으로서는 도무지 그 전모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충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맨 밑뿌리에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길러내는 걸 목표로 세워진, 요즘은 널리 잘 알려진 대안고등학교 풀무학교(1958~)가 떡 버티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재를 마구 생산해 냅니다. 졸업생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사들까지 동네 일에 왕성하게 헌신적으로 개입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확보됩니다. 그 다음은 돈입니다.

풀무신용협동조합(1969~)이 있습니다. 신용협동조합, 소위 신협은 지금은 전국각지에 널려 있는 제3금융권일 뿐이지만, 시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협을 통해 농사꾼들 집안 장판 밑에 혹은 항아리 속에 혹은 장롱 구석에 들어가 죽은 채로 엎드려 있던 쌈짓돈이 꾸역꾸역 모여 들어서 여러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장사 밑천이 됩니다. 학교와 신협, 이렇게 사람이 있고 돈이 있으니 사업은 이제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소비자와 직거래를 통해 농업 생산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기 위해 농산물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홍성풀무생협(1980~)이 만들어지고, 유기농 쌀을 다 팔지 못해 애 먹다가 생각해 낸 떡 공장 홍성풀무(주), 축산물이 직접 소비자를 만나도록 하는 풀무축산(주), 유기농업 해 먹기 어려우니까 연구해서 잘 해 보자는 갓골생태농업연구소, 유기농업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을 직접 생산하는 영농조합법인 미생이세상(1996~), 냄새나고 덩어리도 커서 상당히 골칫거리인 축산 부산물을 황금덩어리로 환골탈태시키는  홍농농협 부산물비료공장(1995~) 등 농업 생산과 판매를 지원하는 이와 같은 기관들이 먼저 한 축으로 죽 늘어섭니다.

애 낳아 키우는 일도 혼자 하기엔 힘이 부치니까 함께 하자 해서 만든 공동육아 갓골어린이집(1979~)이 생기고 어디서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농업인의 협력과 성장의 발판인 홍성여성농업인센터(2001~)가 세워지고, 함께 모여 생산적인 일을 하며 노는 반짇고리공방(2007~), 갓골목공실(2007~) 등이 연이어 자리 잡게 됩니다. 

풀무학교생활협동조합(1977~)이 나타납니다. 학교가 담장을 허물고 마을로 튀어나온 겁니다.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농사꾼들이 생산한 좋은 농산물을 도시 사람들한테만 먹이지 말고 동네 사람들도 함께 먹자는 취지로 유기농산물과 가공식품을 나누는 작은 가게(매일매일 유기농 밀로 빵을 만드는 빵집이 요 안에 있음)를 열고, 쉼터(갓골 나들목)를 만들어 놀고, 동네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재처리하는 풀무비누공장 등을 운영합니다.  

농사꾼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세상이 밝아지고 맑아질 것이니 열심히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는 뜻으로 밝맑도서관(2007~)을 세우고, 서로 가진 책을 돌려 읽으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 생각이 모아지자 여지없이 느티나무 헌책방(2006~)이 들어섭니다. 환경과 생태 농업 관련 책을 출판하는 그물코 출판사(2004년 홍동면으로 전입)나 대안에너지 단체인  에너지전환(2007년 홍동으로 전입) 등 홍동으로 찾아 드는 좋은 단체는 환영하고 모셔옵니다.

이 외에도 장애가 있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는 꿈이 자라는 뜰(2009~),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살며 서로 돕는 하늘공동체(1997~), 은퇴한 분들을 위한 농사짓는 실버타운 은퇴농장사람들(1995~), 홍동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동네를 찾아오는 수많은 순례객을 맞이하기 위해 세운 홍성환경농업교육관(2000~)과 농촌생활유물관(2002~) 등등 필요하면 만들어 버리며 문어발식으로 마구마구 확장해가고 있는 이 수많은 협동조직을  어떻게 다 이 짧은 글에서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2) 



1) 현재 우리나라 지역단위농협의 최대치를 보려면 경기 안성 고삼농협 사례를 보면 됩니다.

2) 몇 번 찾아간 경험과, 귀농해서 홍성 주민이 된 이환의, 장한나님과의 전화 인터뷰 그리고 풀무학교50주년 기념사업회가 펴낸 “다시 새날이 그리워” 등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