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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대기, 협동조합을 만나다-1

아하 2012. 4. 11. 02:59

깔대기, 협동조합을 만나다

 

협동조합, 가난한 자들의 연대에서 부자들의 연대로

협동조합이 뭘까? 한 마디로 말해봐.

가난한 자들의 연대.

오호? 그럴 듯한데? 그게 아직 유효한가? 이제 세상에 별로 가난한 자들도 없잖아?

맞어. 그래서 사실, 이제는 부자들의 연대로 바뀌어야 해.

부자들의 연대?

그렇지. 아무 대가 없이 내 놓는 것. 이를테면 내셔널트러스트 같은.

그거 말고 아는 것 없어?

아, 하나 더 있어. 최근 논의를 시작한 ‘농지신탁’ 같은 것.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그런 게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 나도 잘 몰라. 농사지어 먹고 사느라고 너무 바빴어.

그래, 그래. 농사꾼이 벼슬이다. 그런데, 무슨 거? 농지신탁?

원주 한알학교 류하[開門流下]선생이 제안했어. 돈들 모아서 농지 사서 관리자[귀농하는 경작자] 두자는 얘기1)....<미주1>

멋지네! 그 얘긴 자세히 더 듣고 싶은데, 그건 일단 접어 두고 근데, 아까 부자들의 연대라고 했지? 우리가 부자야? 부자 맞어? 아직도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좋아, 몇 가지 물을 테니까 대답해봐. 밥 굶는 사람이 많니? 밥 잘 먹는 사람이 많니?

다들 밥은 먹고 살지. 바빠서 가끔 건너뛰는 거 말고야 뭐.

옷은 어때?

평생 입고도 남을 만큼 집집마다 쌓여 있지.

그래, 그래. 집은 어때?

내 집이든 남의 집에 세 살든, 어쨌거나 다들 비 안 새는 집들에 대체로는 살고 있지.

좋았어. 그럼, 아플 때 병원 가는 건 어때?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사람들 얼마나 돼? 돈 10만원 없어서 목숨 잃는 사람 있을까?

웬만하면 큰 부담 없이 병원 가지. 아주 돈 많이 드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웬만한 건 된다고.

애들 교육은? 돈이 없어서 글자 못 배우고 셈법 못 배우는 애들 있어?

없다고 봐야겠지.

거봐. 사는 데 필요한 건 다 갖추고 있잖아. 이건 엄청난 부자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대체 하고 싶은 소리가 뭐니?

나는 미국 놈들이 지가 미국이라는 나라 시민이란 걸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면, 구역질이 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이거야. 전세계 자원의 절반가량을 몇 안 되는 그 자들이 다 거덜을 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야. 그리고 또 부시 같은 한심한 놈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는 정말 한심한 놈들 아니냐고. 난 기회 있을 때마다 그놈들을 열라 손가락질하고 아주 욕을 욕을 개욕을 해댔던 건데, 어느 날 보니까, 그 손가락이 나를 향했어.

크하하하하! 이명박이?

그래, 씨바, 졸라 짜증나는 거야. 이명박이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는 걸 보면서 난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 이것들이 정말 무슨 미개인도 아니고, 걸신들린 그지 새끼들2)<미주2>인가 싶었어. 넌덜머리가 나더라고. 이 나라에 쪽팔려서 정말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생각했지. 근데, 하여튼 촛불이 날 구했어.

흐흐흐흐...좋아, 좋아, 부자 얘기나 좀 더 해봐라.

가만 보니까, 우리도 이제 만만치 않은 거야. 주변을 봐. 온통 큰 차, 멋진 차로 가득해. 어라? 이건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우리가 소비하는 게 세계 10위권이야. 무지막지하게 막 퍼 쓰고 살고 있는 거라고. 굶주리는 20억 인민이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는 거야. 그러면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우리는 너무나 가난하다고 이러고 있는 거야. 웃기는 얘기 아니야? 문득 부처님 사문유관(四門遊觀)이 떠올랐어.

잘 나가다가 왜 삼천포로 빠지니? 하여튼, 그래서 미국놈들 비난하는 건 그만 뒀니?

아니지. 지금도 막 욕하고 다니지만, 꼭 토를 달지.

무슨 토?

우리도 똑같은 년놈들이다 하고. 부처님이 왕궁에만 살다가 문 열고 나가 보니 어땠겠니? 이건 뭐 그지새끼들에, 환자들에, 시체들로 넘쳐나고 있는 것이야. 인도는 지금도 그렇잖아. 꼴카타 멋진 호텔에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차려입고, 딱 문열고 나가면 아이들이 손 내밀고 개떼처럼 달려들잖아. 그러니 정신적인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 우리같은 말종들이야 신경질이나 내고 코 막고 눈 돌리고 마는 거지만, 고귀한 영혼을 가진 싯달타 태자는 그러지 않았지. 왜 저자들은 저리 살고, 왜 나는 이리 사나. 내가 이렇게 호화롭게 살아가는 이 재부는 어디서 왔나. 진지하게 성찰을 시작한 것 아니냐고.

오호. 그럴 듯한데, 계속 해봐.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왔겠어. 인민들 피 빨아먹고 산 거지. 아, 내가 흡혈귀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그 흡혈을 당장 멈추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 거야.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문 열고 나가서 봐야 해.

 

 

사진출처 : 무위당 장일순 http://www.jangilsoon.co.kr/

 

이 좁은 땅덩어리에 갇혀서 아웅다웅하지 말고 사문유관해야 한다는 거야. 우리가 얼마나 흥청망청 써대고 먹어대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이제 우리가 벌여야 하는 협동조합운동은 부자들의 연대라고 말하는 거야. 이제 우리나라엔 온통 부자들만 있잖아. 조합운동 처음 시작할 때하고는 상황과 조건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얘기지.

너, 제법 하는데. 이런 엄청난 생각을 대체 누구한테 들은 거냐? 이실직고해라.

나는 농사꾼이야. 농사꾼은 손발은 바쁘지만 머리는 한가해. 늘 생각할 수 있단 말이다, 바보야. 상추를 보자고. 상추엔 하얀 진액이 흘러. 그러면 생각을 해 봐야해. 얘들은 이 독한 액을 왜 제 몸에 갖게 된 걸까? 왠 거 같니?

자꾸 묻지 말고, 그냥 쭉 얘기해. 귀찮아. 원하는 답이 뭐야?

제 몸 지키려고 그러는 거거덩. 야들야들하고 아삭아삭하고 맛있잖아. 벌레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독한 액이라도 품어야 살지, 안 그러면 못 살아. 내가 지금은 까먹었는데 옛날 책 들여다볼 때 이런 사조(思潮)가 있었다고. 뭐냐면, 지금 있는 것들이 최선이라는 거야. 상추가 지금 상추로, 인간이 지금 인간으로, 소나무가 지금 소나무로 있는 것은 그것이 아주 오랜 시간 맞이한 상황과 조건에 적응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최선의 결과물이라는 거지.

그 얘기가 왜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니?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쳇!

응, 신협 얘기 할라고.

참말로 서론 참 길다.

신협은 가난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 돼.

왜?

외줄 타는 거 구경 해 봤니?

갑자기 또 웬 외줄이야?

아슬아슬하고 손에 진땀이 배잖아.

그래서?

사람 사는 게 그랬을 거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난한 사람 사는 게 딱 그랬을 거야. 가난한 사람은 지금도 그렇고. 자칫해서 뚝 떨어지면 천길 낭떠러지야. 밑에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어.

그럼 부자는?

혹시 떨어지더라도 바로 밑에 돈으로 만든 푹신푹신한 방석이 푹석 받아주잖아. 떨어질 일도 없고.


사회적 위기는 가난뱅이에겐 재앙, 부자에게는 절호의 기회

너, 농사 잘 짓는 농사꾼하고 농사 못 짓는 농사꾼하고, 언제 차이가 딱 나는 줄 아니?

언젠데?

날씨 좋은 해에는 아무 차이가 없어. 너도 풍년, 나도 풍년. 그래서 다 망해. 농산물 값이 똥값이 되어가지고 다 망해 자빠지는 거야. 막 갈아엎고 난리가 나. 근데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든지 가뭄이 이어진다든지 태풍이 몰아친다든지 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고. 농사기술이 좋은 놈이나 좋은 땅을 가진 놈이나 좋은 시설을 가진 놈들은 아주 떼돈을 벌고, 그걸 하나도 못 가진 자들은 완전 망하는 거야. 자연재해는 하늘의 신자유주의야, 씨바. 우리가 다 똑같이 살아가는 것 같은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부자와 가난뱅이는 완전히 정반대의 세상을 사는 거라고. 너, 소설 토지는 읽어 봤냐? 내가 토지를 읽고 농사꾼이 될 생각을 냈잖아. 나는 소설 토지에 <조선 농민의 사면 복권>이라고 부제를 달아 줬어요.

이제 그만 하고, 신협 얘기를 좀 해.

그 얘기 하는 거야. 들어 봐. 토지에 보면 서희 증조할머니 얘기가 잠시 나오는데, 만석꾼 최참판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건 가뭄이야. 먹을 게 없어. 그러면 봄에 쌀 한 섬 빌려주고 가을에 땅 뺏는 거야. 그냥 닥치는 대로 낼름낼름 주워 먹는 거라니까? 사회적 위기가 닥치면 이런 일이 벌어져요. 우리도 얼마 전에 겪었잖아. IMF! 죽어자빠진 건 사회적 약자들이야. 근데, 책임지는 놈은 하나도 없어. 불러서 물어보면 모른대지, 기억 안 난다대지. 이런 개새끼들! 아주 달려가서 아구통을 날려버리면 딱 좋겠더라고. 그때 있는 놈들은 강남 룸쌀롱에서 “이대로!”를 외치며 건배했대잖아. 순 개썅노무시키들.

흥분하지 말고, 제발 차분히 좀 얘기를 해라.

나는 그래서 이 부자새끼들이 늘 사회적 위기를 아주 의도적으로 조장한다고 봐. 지금도 하는 짓 보라고. 아주 인민들 모가지에 빨대 꽂아 놓고 쪽쪽 빨아대고 있잖아. 이러면 반드시 위기가 올 텐데, 이 놈들은 그게 더 좋은 거야. 열불나는 일이다. 어쨌거나, 1932년생인 우리 엄마 진술에 따르면 옛날에 장리니, 곱장리니 이런 게 있었대.


그 당시는 쌀이 금 같으고, 비료 한 푸대 살라믄 쌀 한 가마니 줘야 되고 그런 때였응게. 초여름에 보리 한 가마니 갖다 먹으믄 쌀 한 가마니 줘야 되고, 봄에 쌀 한 가마니 갖다 먹으면 쌀 두 가마니 갖다 줘야 되고 그렸어. 이렇게 하나 갖다 먹고 두개 갖다주는 걸 곱장리라고 그러고, 하나 반 갖다주는 걸 장리라고 허고 그렸다. 곱장리 내먹고, 장리 내먹고 그렇게들 살었지. 그런게, 쎄빠지게 농사져서 넘 좋은 일만 식이고 살은거여.

또 농사 지어 주기로 허고 고지내서 먹고도 살고. 고지내먹는다는 말이 먼 말인지 너 아냐? 논 한 배미(1200평) 모내주고, 지심 매주고, 나락 벼주는 것까지 혀주기로 허고 쌀 대두 서말 갖다 먹는 건디, 이걸 ‘고지먹는다’고 그렸니라. 논일을 달싹 다 혀주는 건디. 등짐지는 건 안 해줬다. 등짐 지는 건 워낙 힘든 일이라 품삯도 더 쳐주는 것인디, 보통 품삯보다 배반이나 쳐주고 그렸으니까.3)<미주3>


이렇게들 살 때 말이지, 애가 덜컥 아파봐. 가뭄 들어봐. 홍수 나봐라. 우리집도 그랬거든. 먹을 게 없어서 김제평야 멀쩡한 전답 버려두고 서울 올라가서 청계천변에 거적대기로 집 지어 살며 빌어먹은 적도 있더라고.

정말로?

그래. 그리 오래 전도 아니야. 우리 꼰대한테 들은 얘기니까.

너는 나이 사십도 넘은 놈이 말 뽄새가 그게 뭐냐? 꼰대가 뭐야? 꼰대가? 아빠라고 해야지.

뭐,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당시에 한 집안으로 볼 수 있는 식구들이 얼마나 많았겠냐고? 보통 삼대나 사대가 한 집안을 이루니까, 할아버지 할머니에 형제들에 그 밑에 줄줄이 달린 자식들까지 대략 계산하면 한 삼사십 명 되겠지. 이 중에 하나라도 아프거나 혹은 죽거나 아니면 사고 쳐서 목돈 들어갈 일 덜컥 터지면 시쳇말로 좆 되는 거야. 자칫하면 유일한 생산수단, 즉 생존수단인 땅을 잃고 바로 나락으로 떨어져버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 태반이 그랬을 걸? 신협은 바로 이러한 때에 구세주처럼 나타났다고 봐야지. 정말 구세주였을 거야. 하느님은 멀리 있어도 신협은 가까이 있었으니까. 정말인지 한 번 볼까? 원주신협부터 보자고.


가난한 자들의 구세주 원주신협

 

 

사진출처 : 무위당 장일순 http://www.jangilsoon.co.kr/

 


1) 류하, “농지의 민공유제운동을 전개하자”, 귀농통문61호, 전국귀농운동본부, 2012. 참조.

2) 백승우,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작은것이아름답다 2006년 8월호. 난 이 글에서 히딩크의 “배고파”와 영화 친구의 장동건이 한 대사를 절묘하게 엮어 짜서 멋진 드라마 한 편을 펼쳤다. 원고지 단 두 장에. 아주 조금만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 삶의 근원을 지배하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뿌리! 이것은 종교야. 신앙이고. 신이야. 봐 봐.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놈을 보면, ‘걸신(乞神)이 들렸다’고 말했어. 그렇지? 나왔지? 신! 그러니, 이 빌어먹을 시대, 우리 문화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걸신들린 문화인 게야. 걸신이 지배하는 시대, 즉 ‘걸신의 시대’.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먹고 먹고 또 처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아.”

3) 백승우, 고생고생 사람 잡던 보리농사, 귀농통문29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