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통문 61호(2012년 봄)를 읽고
1.
안녕하세요. 화천 사는 백승웁니다. 통문 잘 받아 보았습니다. 알차게 꾸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1호부터 최근호까지 빼놓지 않고 통문을 다 받아 보았으니 열혈독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30여 호까지는 몇 호에 누가 쓴 어떤 글이 있다는 것까지 기억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 합니다. 땡기는 글만 골라서 쏙쏙 빼먹고 맙니다.
지난 호와 이번 호 보면서 반가웠습니다. 제 관심사와 통문의 관심사가 통한 것입니다. 저는 전부터 귀농통문 독자들이, 받아 본 책에 대한 감상을 적어서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독자들이 농사짓느라 바쁘기도 하고, 과묵하기도 해서 그러려니 했지요. 그러다가 지난 호부터 “내가 먼저”라는 생각으로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
61호를 통 털어서 제 마음에 가장 크게 울린 대목은 소란님이 쓴 글 「도시게릴라 농부를 꿈꾸며」에 나오는 이 대목,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할머니가 했다는 이 말입니다.
“네가 다국적 기업에서 당근을 사는 순간 너는 옆집 마크가 심은 당근에 화학비료를 주게 할 당위를 만들 것이고, 그 화학비료를 사기 위해 마크는 더 많은 시간을 노동해야 하고, 마크의 가족들은 아빠와 보낼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우울해진 마크는 아프게 될 것이고, 아픈 마크들이 많아지면 너는 사회적 비용을 대기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하고, 너는 돈이 없어서 유기농산물을 사는 것은 꿈도 못 꿀 테고 너 또한 아프게 되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때문에 마음이 아플 것이고, 세상 사람들은 우울해지고…전쟁이 나고…굶어 죽고…”(121쪽).
“영국 최초의 변혁마을 토트네스”에서 만난 헬레나 할메 얘기를 읽어 가면서 온 몸에 전기가 찌르르 흘렀습니다. 얘기 속의 마크는 바로 화천 사는 백아무개이니까요.
날로날로 제대로 된 ‘상품’을 요구하는 유기농산물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제대로 된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의심되는 소위 친환경 유기농 미생물제재를 뿌려 대느라 정신없는, 출하 시간에 맞춰 애호박이며 피망이며 꽈리고추 따위를 잘 따 담아 상자에 넣어 보내느라 허둥대는, 날로날로 난폭해지고 거칠어지는 백아무개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광섭이 형은 소를 닮았다. 살아온 궤적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겉모습도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외양간에 있는 소랑 어울려 한 컷.
3.
고산 송광섭님의 「고산일기」는 땅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서정시같았습니다. 읽는 동안 거칠고 난폭하던 마음이 따뜻하고 푸근해졌어요.
여러 해 전에 완주 고산 광섭형 집에 갔을 때, 마당 한켠 외양간에 맨 두어 마리 소를 돌보는 형 모습을 사진에 담은 적이 있어요.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서 참 닮았다 싶었습니다. 말 수도 적고, 글도 많이 쓰지 않는 분인데, 어찌 섭외를 하셨는지, 참말로 소 같은 글을 실어 주셔서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이환의님의 「귀농의 시작과 정착에 관한 단편들」을 보면서는, 제 지난 시간들이 마구 솟구치고, 나도 내가 보낸 시간을 꺼내 나누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면서, 낄낄거리면서, 끌끌끌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뒤란에 묻어 둔 김장독에서 시큼하게 잘 익은 김장김치를 꺼내 먹는 듯한 감칠맛을 느꼈습니다.
4.
두 번에 걸친 특집 농지는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앞으로 전개할 “농지”와 관련한 논의의 네 축을 제대로 잡아 낸 편집의 백미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간에서 전개할 운동․ 농지은행 개선․ 불법 농지 소유에 대한 철퇴․ 땅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 일깨우기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텐데요, 정말 환상적입니다.
조금 더 뚝심 있게 이 주제를 밀고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예를 들면, 「농지와 귀농운동」같은 포괄적인 이름을 걸고 토론회 같은 걸 한 번 열어서, 땅, 즉 농지를 중심으로 하는 서로 다른 여러 생각을 나누고 모으는 자리를 만들고, 여기서 논의한 바를 세 번째 특집으로 다루는 방식도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도시 아파트 가격의 하락, 귀농 귀촌을 지향하는 인구의 증가 등으로, 우리 사회 지배세력이 의도적으로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선도적으로 농지 문제를 제기해서, 이런 시도를 원천봉쇄하는 동시에, 귀농귀촌의 핵심 의제로 농지소유 문제를 설정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5.
김석기님의 「골든 시드와 토종종자」는 전문기자들의 발굴탐사보도를 보는 듯했습니다. 대체 이런 거대한 음모 같은 흐름을 우리는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요? 널리 나누어 읽고 공동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희식님의 「탈핵운동은 내 삶이 벗어나야 할 모든 굴레까지」는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를 이룬 나라 사람들이 철저하기 자기반성을 하고 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직접 가서 보는 듯이 생생히 그려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멀리 유럽까지 가서 보아야 하는 수고를 덜어 주셨으니, 노자돈이라도 좀 보태드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아주 적절하게, 뒤. 늦. 게. 들었습니다. 하하하.
저는 맨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짬밥 억수로 먹은 소위 귀농 고참입니다. 제 눈에는 그러니, 익숙하고 잘 곰삭은 분들의 목소리가 더 잘 들어옵니다. 반갑기도 하고요. 새로 통문을 만나는 분들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새로 읽기 시작하는 분 중 누군가 통문 읽은 소감을 나누어주시면 참말로 고맙겠습니다.
6.
이상이 통문 61호를 읽은 소감이구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도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렇습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한 마디로 압축해 표현하자면「규모화․조직화」구요, 농촌정책은 「탈농재촌」입니다.
탈농재촌이란 농사는 짓지 말고 그냥 농촌에 살아달라는 것이구요, 규모화조직화란 농사꾼들이 덩치를 불려라, 모여서 한 덩어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정부의 농업농촌정책이 마침내 성공했다고 쳐보자구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 세대는 거대기업을 상대로 노동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살았습니다. 처음엔 임금이나 노동강도, 노동자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 등을 놓고 싸웠고, 지금은 일자리를 놓고 아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농업농촌 정책이 성공하는 날, 그러니까 우리 다음 세대나 다다음 세대는 삼성이나 현대 같은 거대화된 농기업과 먹을거리를 놓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게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 정부의 승리는 우리 국민의 재앙이라고 말합니다. “귀촌”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언짢아지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소는 누가 키우라고?”를 외치는 개그맨처럼 저도 외칩니다. “대체 농사는 누가 지으라고?”
7.
다음호에는 ‘농가경영체 등록’이나 ‘농업회의소’같은 낯선 것들이 농업판에 들어오는 현상에 대해, 그 흐름과 앞으로 미칠 파장 등에 대해 자세히 다뤄 주셨으면 하는 바램도 전합니다(끝).
2012. 4. 30. 화천 용호리에서 백승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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