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전원생활 2006년 2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명당이 따로 있나요?
아이들을 데리고 야트막한 뒷동산으로 올라갑니다. “각자 자리를 하나씩 잡아 보세요.” “아무데나요?” “예. 마음대로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앉아 보세요.” “혼자만 있어야 되는 거예요?” “예. 그게 좋겠어요. 우선 다 흩어져서 혼자만 있어 보세요.”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한 군데씩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어떤 아이는 오랫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자리를 잡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냉큼 앉기도 합니다.
우리집 삽살개 숫놈 '배통통 천하태평 복슬복슬 곰돌이'와 암놈 '원'이 사이에서 태어난 삽살 강아지들입니다.
“자, 이제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편하게 앉아 보세요.”
아이들이 모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한참 후에 다시 그 자리에 잠시 누워있게 합니다. 일어나서 친구를 데려다가 자기 자리에 앉아보고 누워보게 하고 자기가 왜 그 자리를 선택했는지 서로 얘기를 나누게 합니다. 볕이 잘 든다든지, 시야가 탁 트여서 바라보는 경치가 좋다든지, 커다란 나무 옆이라서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든지, 친한 친구가 가까이에 자리를 잡아서 자기도 따라 그 옆에 앉은 것이라든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말해주면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왜 그 자리를 선택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고 서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얘기를 모두 마치고 나면, 산에 사는 동물도 그렇게 자기 이유를 가지고 사는 곳을 정한다고 말해주는 것으로 놀이를 마무리합니다.
소위 말하는 아이들 ‘생태놀이’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만으로는 다 채우지 못 하는 2%를 채워줍니다. “아하!” 하는 깨달음이 있는 재미있는 놀이입니다. 이런 식의 깨달음을 생태적 각성이라고 하는데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의 영역을 동물이나 자연으로까지 넓혀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것, 이웃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자연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귀농하시려는 분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적당한 귀농지를 찾게 될 텐데요, 예컨대 서울이나 수도권을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인근 어디에 터를 정해야 할 것이고, 또 전국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분이면 그렇게 하면 될 것입니다. 처지에 맞게 범위는 대충 정하면 되는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터를 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럭저럭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서 자리를 잡았으면 싶은 땅을 찾았을 때, 살기에 좋은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망설이게 되는데요, 이 때 앞서 얘기한 생태놀이를 혼자서 한 번 해 보면 됩니다. 하루 종일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 봐서 편안하고 좋은 느낌이 오는 곳이면 좋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옛날 분들은 집 자리를 보거나 묫묘자리를 쓸 때 이렇게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명당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자기하고 잘 맞는 곳이면 된다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런 거 한 번도 못 해봤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 생각을 했기 때문에 땅도 땅이지만은 농사스승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때만해도 도시사람이나 농촌사람이나 모두 유기농이란 것이 생소할 때여서 유기농을 하시는 분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러니 농사일을 배우려면 유기농하시는 분 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농사일도 배우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막연하기는 했지만 생태공동체 같은 걸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를 벗어나서 자급자족하는 조그마한 마을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거지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경북 울진 쌍전리라는 곳입니다. 유기농하시는 강문필선생이 계신 곳인데요 고추농사로 유명한 분입니다. 전화를 드리고 처음 찾아갔을 때 집 앞 다랭이논에서 벼베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낫 하나 주십사 해서 일을 거들어 드렸습니다. 쓱싹쓱싹 베어서 눕혀 놨다가 단을 엮어서 세워 놓는 데까지 하고 일을 마쳤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콤바인으로 베어서 털어버리니까 낫질할 일도 별로 없는데 여기는 산 중턱 다랭이논에 집에서 먹을 거나 심어먹는 정도니까 그냥 낫으로 베고, 탈곡기도 옛날에나 쓰던 ‘워렁워렁’으로 털면 된다는 것입니다.
저녁밥도 얻어먹고 술도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 역시 이만저만해서 시골로 들어와 농사짓고 살려고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엄청 반가워하십니다. 젊은 사람이 귀한 산골이고 게다가 유기농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기쁘셨던지 올 거면 당장 들어오라고 구체적인 제안을 하셨습니다. 마침 그 동네에는 두어 해 전에 귀농하신 분들이 두 분 계셨고, 강선생님과 이 분들이 함께 땅을 사기로 했다고 합니다.
“어떤 땅인데요?” “어, 좋은 땅이야. 초짜도 농사 지어먹을 만 해.” “제가 끼어도 될까요?” “의논해 보고 결정해야겠지만, 다들 싫다고는 안 할 거니까 그건 걱정할 것이 없어요. 내가 사기로 한 걸 자네가 사면 되니까.”
이래서 다음날 귀농하신 분들도 만나보고 땅도 둘러봤습니다. 유기농을 하려면 오염원이 없어야 하는데 한 가운데 끼인 밭이 문제였습니다. 배추농사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 땅이어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던 차에, 그 분이 몇 해째 농사를 망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리하고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농하신 두 분과 강선생님, 이렇게 세 집에서 각각 힘닿는 대로 얼마만큼씩 농지를 인수하기로 하고 곧 계약을 할 거니까 저도 생각이 있으면 빨리 계약금 준비해서 가지고 다시 내려오라고 합니다. 그 쪽에서도 상의를 해서 저를 끼워줄지 여부를 결정해서 알려주시기로 하고, 저도 땅을 구입할 것인지 말 것이지를 일주일 내로 연락을 드리기로 하고 일단 올라왔습니다.
별 기대 없이 그냥 인사나 드리고 올 생각으로 찾아갔던 것인데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통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후 몇 차례 더 가보고 이런저런 것들을 좀 더 자세히 확인한 후에 마침내 땅을 구입했습니다. 인기배우 황정민씨가 말하는 것처럼 저는 별로 한 일도 없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들고 들어앉은 셈입니다.
이미 그 동네 시세에 맞게 값이 정해져 있었어서 딱히 흥정할 것도 없었고 혹시라도 문제가 있는 땅을 떠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일도 없었습니다. 거기 살고 계시는 분들의 배려로 쉽게 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일이 풀리려면 이렇게 술술 풀리나 싶어 좋았습니다. 이렇게 농지를 구해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겨울을 났습니다. 내복도 안 입고 얇은 외투만 하나 걸치고 길거리를 다녀도 춥지를 않았습니다. 희망에 차서 보낸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매섭고 추운 시골 추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마냥 좋았습니다. 명당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좋은 분들 이웃으로 두고 서로 나누며 함께 살 수 있으면 거기가 바로 명당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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