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생태공동체, 그 아름답고 허망한 꿈

아하 2012. 5. 29. 22:18

[월간 전원생활 2006년 5월에 쓴 글입니다.]

생태 공동체, 그 아름답고 허망한 꿈

실패한 공동체 실험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원칙으로 이러저러한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연하게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공동체였습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가수리 만수동 골짜기에 여덟 사람이 모였습니다. 여덟 사람이라고 하면 당시 거의 그 마을 전체 인구 삼분지 일에 육박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상주하는 사람이 여덟에 두세 달 머물다 가는 분들이 끊이지 않아서 집에는 늘 열 명 이상의 식구가 복닥거렸습니다.

귀농하려는 분들이 흔히 혼자서는 좀 막연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해서 누군가와 함께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어울립니다. 술 한 잔 같이 하면 마음이 탁 통하는 것 같아 신이 납니다. 너도 시골 가서 살고 싶어 하고 나도 시골 가서 살고 싶어 하니까 우리 함께 가보자는 겁니다. 보통 출발은 흔쾌합니다.

저는 당시 귀농지로 울진에 땅을 사 놓았지만 집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집이 필요했고, 화순에 전통한옥을 짓는 대목수가 계셨습니다. 찾아가 보니 젊은 사람들 여럿이 대목수님과 한 집에 함께 살면서 집도 짓고 농사도 지으면서 재미나게 살고 계셨습니다.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끊이지 않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정원과 단순하고 소박한 한옥,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품위 있고 정갈한 뒷간 등 외형적으로도 정말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저도 바로 짐 싸들고 내려가서 합류했습니다. 제가 내려갈 때 갓 결혼한 젊은 부부가 함께 내려갔습니다. 신랑은 경복궁에서 일하던 목수였고 신부는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던 간사였습니다.

정면 여섯 칸 측면 세 칸짜리 집을 함께 지어서 완공을 보았고, 외따로 떨어진 다랑이 논에 다마금이라는 소위 토종 볍씨를 구해다 손모를 내고 손으로 김을 매고 낫으로 베어서 워렁워렁이라는 발로 밟는 옛날 탈곡기로 떨어서 바람에 날려 티를 골라내고 찧어다가 밥을 해 먹었습니다.

곡우 무렵에는 인근에 있는 야생 녹차밭을 돌며 찻잎을 따서 직접 덖어서 차를 마시고, 감잎으로 감잎차를 만들고, 가을에는 감 따다가 곶감 걸고, 감식초를 만들고, 겨울에는 석 달 동안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절구질을 해가며 죽염을 구워냈습니다. 가까이 있는 담양에 가서 대나무를 구해오고 인근 야산에서 간벌한 소나무를 자르고 뽀개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황토를 퍼옵니다. 대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마디마디 속 찬 부분을 뚫어서 소금을 채우고 송진으로 밀봉한 후, 황토를 반죽해서 대다무를 통째로 감싼 다음 창호지로 다시 한 번 감싸서 황토가 대나무에서 떨어지는 걸 막고 또 서로 늘러붙지 않게 합니다.  

이렇게 준비한 대나무 봉을 가마에 켜켜이 쌓아 올리고, 찬 계곡 물로 몸을 청결히 하고 사람을 치유하는 좋은 죽염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을 올리고 송진으로 불을 댕겨 사흘밤낮을 쉬지 않고 소나무를 태웁니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가마 속에 남는 것은 대나무 굵기의 소금봉입니다. 이걸 돌절구통에 넣고 나무절구를 들고 쿵덕쿵덕 절구질해서 가루를 만들고, 이 가루를 다시 대나무에 채우고 황토를 입혀 불을 피워 소금봉을 만들고 또 절구질해서 가루를 만들기를 아홉 번 반복합니다. 겨울 한철이 온전히 필요한 일입니다. 죽염으로 장을 담으면 죽염 된장이 됩니다.

가을에는 짬을 내서 황토나 뻘, 감물로 광목천에 물을 들이는 천연 염색을 해서 필요한 만큼 쓰고 나머지는 서울 인사동으로 올려보내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학교, 학교 졸업하고 회사로 이어지는 소위 주류의 삶에서 벗어나서 난생 처음 해 보는 모든 일이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직접 만들어 쓰고 길러서 먹으며 세상에 흔치 않은 귀한 진짜배기 물건을 만들어서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매우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우리가 눈 똥과 오줌은 다시 거름이 되고 손발과 간단단 도구를 써서 일을 하기 때문에 자연과 환경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생태적인 삶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공동체가 깨졌습니다. 모두가 마음 속에 꽤 큰 상처를 입고 뿔뿔이 흩어져버렸습니다.

 

[이 해 겨울 한슬이네 가족이 내려와 함께 김장을 담았습니다]

한 식탁에서 공동식사를 하는 형태로 진행된 우리의 실험뿐만 아니라 당시 전국 곳곳에서 각자 자기 집에 살면서 공동으로 농사를 짓는다든지 하는 여러 공동체실험이, 단 하나의 성공사례도 없이 모조리 다 깨지는 걸 보았습니다.

이런저런 방식의 공동체 실험을 했던,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할 짓이 왜 경쟁뿐인가?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살 수 있지 않은가? 짧은 생을 살면서 왜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허비해야 하는가? 짧게는 일 이년, 길게 잡아 삼사십년이면 쓰레기가 될 물건을, 자연을 파괴하며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그것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도 않은 새로운 물건을 얻기 위해 왜 그렇게 발버둥 치면서 살아야 하는가? 단순하고 자립적이며 생태적이고 동시에 협력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태공동체를 이루고 싶은 꿈은, 물론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형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화순에서 함께 살다가 뿔뿔이 흩어진 경험에서도 아직 다 배우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꽤 괜찮은 인간들인데, 나 자신도 그렇게 못돼먹은 인간은 아닌데, 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서로 상처만 주게 되는 것일까?’

남녀가 부부로 만나 살아도 뜻을 맞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자식으로 만나도 원수가 되는 일이 잦습니다. 그런데 시골 가서 살자는 딱 한 가지 공통분모밖에 없는 사람들이, 함께 뜻을 맞춰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술자리에서야 모든 것이 통하는 것 같고 함께 살아도 잘 살 것 같지만, 에헤, 천만의 말씀입니다. 웬만하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게 낫다는 말씀을 감히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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