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겸 번역가 이현정씨가 번역한 훌륭한 책...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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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아메바"라는 좋은 책뿐만 아니라 환경 관련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 시금치 출판사에서
소비자를 위한 유기농 가이드북, 웬만하면 먹지 마세요!
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시고, 혹시 "쾌"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꼭 좀 봐주시고, 말씀해 주세요.
제가 본성이 워낙 공격적이어서, 고슴도치처럼 사람을 찔러요. 의식하지 못 한 채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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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사꾼과 이웃이 되려는 소비자의
아홉 가지 실천
1 알아차린다
뭘 먹든, 먹을 때마다 원재료가 수입농산물인지 우리농산물인지 자각하면서 먹는다. 습관을 바로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우선 먼저 알아차리기는 해야 한다.
2 책임소비한다
내가 내 몫을 충실히 먹을 때라야 계획생산도 되고 농사꾼도 웃는다. 여기저기 내 이익만을 좇아 돌아다니면 어디선가 반드시 농사꾼이 망해 울고 있으리란 걸 기억한다.
3 음식정의正義를 생각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안전하고 질 좋은, 정성껏 키운 우리농산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현실을 늘 돌아본다.
4 농사꾼이 먼저다
농사꾼에게 좋은 건 환경에도 좋고 소비자에게도 좋다. 농사꾼이 여러 위험물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5 맛과 향으로 고른다
모양이나 크기에 휘둘리지 않는다. 농산물은 모두 고유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오이면 오이 풋고추면 풋고추, 각각의 농산물이 가진 고유한 맛과 향으로 농산물을 평가한다.
6 결품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은 제멋대로라서 자연이다. 인간이 원하는 때에 맞춰 원하는 만큼씩 결코 주지 않는다.
7 쌀 때 충분히 먹는다
우리 제철 농산물을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버려둬도 잘 자랐기 때문에 풍년이고 풍년이라서 싸다. 산山농사가 풍년이면 들농사가 흉년이고, 산농사가 흉년이면 들농사가 풍년이라고 했다. 하늘이 우리를 어떻게든 먹고 살게 해준다는 의미로 쓰였다. 기후조건이 맞아서 잘 자란 농산물은 많이 먹을수록 좋다. 싸다는 건 가장 안전하다는 의미다.
8 비싸면 먹지 않는다
우리 농산물이 비싸다는 건 없다는 얘기다. 없어야 하는데 있는 건 부자연스런 방법이 동원됐다는 말이다. 결코 자연과 사회와 내게 좋을 리 없다.
9 집에서 먹는다
집에서 먹어야 유기농산물도 먹고 우리농산물도 먹는다. 집 밖에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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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말]
유기농산물, 웬만하면 잡숫지 마시라!
나는 우리 농산물 소비자가 고맙다. 참말로 고맙다. 덕분에 계속 농사짓고 살 수 있으니 늘 그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애쓴다? 애를 쓴다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 사실은 왕 노릇하려는 소비자를 느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왕 노릇하려면 신하도 있어야 하고 졸卒도 있어야 한다. 신하들은 왕 눈치를 보고 왕 비위맞추느라 졸을 잡도리한다. 잡도리당하는 졸이 기분 좋을 턱이 없다. 왕은 참을성도 없고 제 고집만 내세우고 신하나 졸병을 이해하지도 않고 변덕스럽고 쪼잔하고 제멋대로인데다가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는 깊은 눈도 없어서 어리석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그런 줄도 모르고 공부도 안 한다. 기껏 한다는 게 “물어, 브라우니!”다.
왕도 졸도 아니고 이웃으로 만나자
소비자가 왕이다. 그렇다. 하지만 왕들은 대체로 어리석다. 어리석은 왕은 신하와 백성을 두루 괴롭게 하고 종국엔 나라를 말아 먹는다. 정말 그렇다.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서 나는 소비자가 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왕 노릇하고 싶은 사람은 유기농산물 근처에 아예 안 왔으면 좋겠다. 어리석은 왕이 나라를 망치듯이 어리석은 소비자는 우리나라 유기농업을 망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내가 하는 이 얘기를, 좀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거들떠도 안 볼 것이다. 늘 그게 문제다. 헛일이라는 거 잘 안다. 틀림없이 이런 책 안 봐도 될 훌륭한 분들만 이 책 들여다보고 계실 것이다.’
유기농산물 나눔과 관련해서 애초에 소비자는 졸이었다. 열 개를 주문해서 세 개만 받을 수 있어도 감지덕지였고, 그나마 받은 물건도 풍신 나고 알량한 것들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해진 곳에 놓고 가는 물품을 직접 나가서 받고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도 여러 집이 어울려 서로 나누었다. 여럿이 모이지 않으면 아예 갖다 주지도 않았다. 이때 나는 소비자였다.
유기농을 하는 농사꾼들이 애초에는 왕이었다. 그 분들은 뼛골 빠진다는 고단한 농사일을 감내하는 농업노동자이면서 열정에 불타는 사회운동가였고 생태적 각성을 촉구하며 새로운 문명을 예지하는 선각자고 스승이었다. 멋졌다! 유기농업은 산업이라기보다는 사회운동이었다. 내가 시골로 내려와 처음 가입한 농사꾼 단체도 그래서 ‘북한강유기농운동연합’이었다. 그런데 점차 운동은 퇴색해서 사업이 되었고 운동판은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왕들 틈에 슬쩍 끼어볼까 싶어 시골로 와서 농사꾼이 되었는데, 이런 젠장, 시나브로 또 졸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왕도 졸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웃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이웃끼리는 나란해서 우러를 것도 없고 깔볼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서로 주고받을 게 있으면, 공평하게 나누면 된다. 들어나 보셨는지? 등가교환이라고. 내가 농사지어 내놓는 농산물이 귀하듯이 내 농산물을 사먹는 소비자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도 귀하다. 늘 하는 얘기지만 우리 사회에서 돈이라는 놈은 피와 땀과 눈물과 영혼까지 쪽쪽 빨아먹고 자라는 아귀 같은 녀석이 아닌가. 그러니 서로 귀함을 인정하고 공평하게 나누는 게 옳다. 이웃이 되려면 최소한 이런 정도는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는 계획생산 하고 책임소비 하는 일종의 사회주의적인 경제시스템이었다. 지금도 상당히 그렇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 다 밝혀졌듯이 계획경제는 문제도 많고 무엇보다 매우 비효율적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비효율적이기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농사만 한 게 없다. 유기농업은 더욱 그렇다. 유기농업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것인지 이 책 본문에 잘 드러나 있다. 이 비효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마음이 없으면 유기농산물을 아예 안 먹는 편이 좋다. 어느 날 시장나라 대왕마님이 군림하셔서 원래 비효율적인 것을 효율적인 것으로 바꾸라고 명령하시면 삐걱거리고 고장 난다.
유기농, 남 좋으라고 하는 소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유기농보다 우리 농업에 더 관심이 많다. 유기농은 그저 우리 농업이 살아남을 궁색하고 어찌 보면 유일한 방편이라는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소비자의 건강보다 농사꾼들 건강이 더 우선이다. 소비자가 백 명 느는 것은 물론 환영할 일이지만 그보다 농사꾼 하나 느는 게 더 절실하다. 이런 내 관점은 이 책을 엮는데 기꺼이 글을 보내주신 다른 세 분의 관점과 조금 다를 수 있다. 친환경농산물 시장은 매년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농사꾼은 줄어들고 농촌은 갈수록 시들어간다. 이는 마치 대기업이 커가면서도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 하는 것과 같다. 뭔가 잘 못 돼 가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농산물의 안전성과 소비자의 건강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기농업이 우리 농업의 대안으로,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제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아니다”라고 답해야 할 것 같다.
안전한 농산물을 먹는다고 사람이 건강할 것 같으면 세상에 아플 사람이 없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된다. 건강에는 타고난 체질, 생활환경, 생활습관, 생각습관, 정신상태, 마음씀씀이 등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나? 단순히 유기농산물 먹는다고 더 건강해질 리 없다. 만일 진짜로 더 건강해진다면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 유기농산물 못 먹는 사람은 건강까지 잃어야 한다. 정의롭지 않다. 온갖 먹을거리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유기농산물마저 오직 건강 생각해서 먹는 건강기능식품처럼 인식돼서는 안 된다.
유기농산물은 소비자보다는 오히려 농사꾼의 건강과 더 긴밀히 연관돼 있다. 소비자가 유기농산물을 소비해줌으로 해서 농사꾼 누군가는 농약이나 제초제가 주는 직접적인 피해에서 벗어난다. 그렇다. 유기농산물 구매는 우선적으로 남 좋으라고 하는 구매행위이다. 그래서 단순히 내 가족의 건강만 생각해서 유기농산물을 잡숫고 계시다면, 웬만하면 잡숫지 마시라고 하는 것이다. 건강에도 별 도움 안 되고 유기농업에도 별 도움 안 된다.
이런 돼먹지 않은 소리를 왜 자꾸 하는가? 유기농업이 그저 관행농업이 갔던 길, 자기 소멸을 향한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만들지 못 하고 있다는 답답함 때문이다. “이게 다 소비자들 때문이다!”라고 남 탓만 하고 앉아 있는 중이니 한심해도 이해하시길.
이게 다 유기농사꾼 책임이다
대형마트 식품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상품 대부분은 수입농산물이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율이 20여 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잘 느끼지 못 한다. 수입농산물을 늘 입에 달고 살면서도 수입농산물을 먹고 있다고 자각하지도 못 한다. 수입해 들여오는 것들이 농산물인 채로는 잘 보이지 않고 몸을 살짝 바꿔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수입 쌀은 막걸리나 떡이나 김밥이나 공기밥으로 둔갑하고, 수입 밀이나 옥수수는 라면이나 빵이나 과자 사탕 짜장면 짬뽕 피자 식용유 (수입 곡물 사료 먹고 큰)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 달걀 치즈 등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눈에 잘 안 보인다.
수입농산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누구일까? 그렇다. 수입농산물을 식재료나 식품, 사료 등으로 가공하는 대기업이다. 중소기업이 하면 혼 날 일도 대기업이 하면 괜찮다. 그래서 수입농산물은 더더욱 우리 눈에 잘 안 보인다. 대기업이 총생산의 단 10%라도 우리 농산물을 의무적으로 구입해서 라면이나 과자를 만들어야 지속적으로 영업행위를 할 수 있다는 식의, 그 흔한 소위 쿼터제 같은 제도적 장치도 없고 감히 할 생각도 못 한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식품 광고에 반드시 “수입농산물 100%로 만든다”는 멘트를 넣어야 방송 광고를 내보낼 수 있게 한다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방법을 찾아 봐야 할 것이다.
우리 벼농사를 목 조르는 압제자가 외국에서 들여오는 쌀만이 아니다. 위에 열거한 수입농산물로 만든 모든 식품이 쌀을 대신한다. 쌀 자급 100%는 그래서 허구다. 소비자를 잃은 논은 밭으로 바뀐다. 밭에는 채소와 과일을 심는다. 일상적으로 과잉생산 상태에 있는 채소와 과일이 일상적으로 폭락한다. 기후조건이 좋으면 무조건 폭락이다. 견디지 못 하는 농사꾼부터 차례차례 농사를 접는다. 우리 농업은 이렇게 점점 벼랑 끝으로 끝으로 몰려가고 있다. 구조조정당하고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당해왔다. 가공 식품을 만드는 재료로서의 기능은 거의 완벽하게 상실했고, 그나마 자급율 높던 육류가 사료로서가 아니라 생물로 들어오고, 과일에 신선채소까지 몰려온다. 서서히 서서히 아주 서서히 숨통을 아예 끊어 놓을 태세다.
그렇다면 수입농산물에 빼앗긴 농업영토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대기업에 맞서 우리도 거대해져야 할까? 농산물 내다 파는 거대 기업농에 맞서 우리도 거대 기업농이 되어야 할까? 땅이 부족해서 불가능하다. 가능할지라도 그렇게 해 봐야 농사꾼이나 소비자에게 득 될 게 전혀 없다.
유기농사꾼들이 소비자들과 힘을 합쳐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유기농업이 우리 농업의 대안이다. 그건 아마도 이런 형태일 것이다.
작은 유기농장 온갖 농산물 |
농사꾼이 협동해서 운영하는 작은 식품 회사 |
골목골목을 다 장악한 구멍가게. 이를테면 생협 매장 |
농사꾼의 정성이 담뿍 담긴 값진 밥상 |
농사꾼 => |
유통활동가 => |
소비자 |
*마땅히 농사꾼의 영역이어야 할 부분은 수입농산물과 대기업이, 유통활동가가 있어야 할 부분은 대형 유통 체인점이 다 차지했다.
우리는 작으니 쪽수로 밀어붙여야 한다. 촘촘하게 거미줄처럼 엮어 짜야 한다. 수입농산물이나 대기업을 밀쳐내고 그 자리를 우리가 다시 되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농사꾼들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하는 유기농업이 도도하게 밀려드는 수입농산물의 파고를 타고 넘을 만큼 충분히 작고 충분히 가치 있게 잘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원리원칙대로 적용해 보자면 유기농산물은 관행농산물에 비해서 원가가 낮아야 맞다. 부림소로 땅을 갈고 종자도 채종해서 쓰니 씨앗 값도 안 들어가고 비싼 화학비료도 안 쓰고 농약도 안 쓰고 제초제도 안 쓰니까 생산비를 낮출 수 있다. 게다가, 농가부산물을 활용해서 가축을 기르고, 가축 분뇨를 활용해서 거름을 쓰고, 섞어짓기 돌려짓기 사이짓기 등으로 땅을 잘 활용해서 병해충도 없고 생산성도 올라가야 한다. 수확한 농산물은 보잘 것 없지만 들어간 것도 없으니 무조건 수익이 나야 한다. 말하자면 유기농업의 기본 원리는 이런 것일 텐데, 우리는 참 너무나 멀리 있다. 시장 속으로 아주아주 깊숙이 들어왔다. 밖으로만 향하던 원망의 눈길을 안으로 돌린다. 이게 다 유기농사꾼 때문이다!
네 개의 글, 네 개의 논리
이 책은 그렇게 기획되었다. 길을 잃으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농사라는 게 본디 긍정이고 밝고 맑고 아름다운 것이니까 참신한 언어로 생동감 있게, 좀 구린 느낌 안 들게 써 주세요.”라고 부탁은 드렸다.
환경운동가 유정길님은「유기농의 기반, 살림의 철학」에서 생태주의의 근본정신을 짧고 간결하게 핵심을 일러주신다. 유기농사꾼과 소비자의 마음자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국제 유기심사원 유병덕님은 「유기농이 대체 뭐길래?」에서 유기농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왜 우리가 유기농인지 아닌지를 판단함에 있어 농사의 결과인 농산물을, 눈에 쌍심지를 켜고 현미경을 들이대고 뭐가 나오나 안 나오나 뚫어져라 바라보는 대신, 농사짓는 과정 그 자체를 주목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쌀, 두부, 우유 등의 실제 인증 심사 방법을 덧붙였다.
도시농부이며 생협활동가인 안병덕님은「밥상을 바꾸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에서 “유기농은 완전하고 온전한 음식whole food으로 우리 몸에 이롭다”고, 또한 “유기농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막고 생태계와 농촌을 살린다”고 주장한다. 여러 근거 자료를 통해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주장한다. 이런 글은 자칫 급졸음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실 것 없다. 결론을 앞세우고 근거를 뒤에 두었으니까 글 읽는데 익숙지 않은 분은 각 단락 앞부분을 먼저 보시고, 정말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면 뒤도 짬나는 대로 읽어 보시면 된다.
농사꾼 백승우는 「“소비자”는 어떻게 유기농을 망치는가?」에서 우리 농산물이 어떻게 생산 유통 소비 되는지를 그려 보이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농사꾼들에게 소비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보내게 되는지, 농사꾼은 그 메시지를 어떻게 농사를 통해 실현해 내는지 드러내 보려 애썼다. 그렇다. 애썼다는 건 애는 썼다는 얘기다. 그리고 유기농사꾼으로서 유기농업을 비판한다. 남 탓만 하면 안 되니까 제 탓도 좀 하는 척 했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들께 몇 가지 당부 말씀도 올리고, 마무리로 시골로 내려와 함께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살자고 손짓도 좀 했다.
나는 이 책의 기획자이자 엮은이로서 우리농업이나 우리농사꾼에게 누가 될 만한 부분은 어떻게든 걷어 내거나 완화시키려 애썼다. 농약을 치든 비료를 뿌리든 나한테는 농사꾼이 더 소중하다. 관행농업과 유기농업을 대립적인 관점에서 보는 데 나는 반대한다. 우리는 다 농사꾼이다. 유기농업은 우리 농업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유기농업은 관행농업이라고 하는 엄마 배 속에 든 아기다. 엄마가 쓰러지면 아이도 끝이다. 아이는 얼른 자라 엄마를 대신해야 한다.
우리나라 농업이 하루라도 빨리 모조리 유기농업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똑같다. 이 바뀜은 농사꾼이 아니라 소비자 손에 달렸다고 나는 본다. 네 사람의 관점이 같은 부분이 많고 다른 부분도 조금 있다고 보시면 되겠다.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 글쓴이들 사이에 있는 약간의 차이를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다르게 마련이다.
끝으로 나는 이 책에 ‘지역 순환 먹을거리 체계’ 혹은 ‘로컬푸드운동’이라 불리는 활동과 노력과 어려움과 희망을 담은 글도 함께 싣고 싶었다. 농사꾼이 지은 농산물이 먼 거리를 달려 멀리 있는 “소비자”를 목숨을 걸고 찾아가는 대신 가까이 사는 이웃에게로 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다. 춘천 봄내살림에서 활동하는 이진천님께 글을 요청했다. 그리고 또 요즘 한창 들불처럼 퍼져가고 있는 도시농업운동과 관련한 얘기도 담으려 했다. 우리나라에서 도시농업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텃밭보급소 안철환님께 글을 요청했다. 고투입 다수확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그대로 뒤따라서 상업화되어버린 유기농업을 안타까워하며 각성과 결단을 통해 ‘소농小農’으로 돌아 가자시는 전희식님께도 글을 부탁드렸다. 하지만 나의 역량부족으로 세 분의 글은 이 책에 다 담아내지 못 했다. 여러 글이 서로 어울리고 긴밀하게 연결돼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내 솜씨로는 부족했다. 세 분 선생님과 독자께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로컬푸드나 도시농업, 소농 등의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책을 엮어보고 싶다. 뜬금없는 요청에 군말 한 마디 없이 값진 글을 써주신 여섯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3년 1월 농사꾼 백승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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