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농업연수

육. 아바나 알라마르 농장 : 쿠바 vs.북한

아하 2013. 1. 14. 17:09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Havana,_Cuba.jpg

위성으로 본 아바나. 중앙에 아바나 만. 거기서 오른쪽으로 쭉 가다가 폭 들어간 만의 오른편이 알라마르동(洞)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Havana

Districts

The city is divided into 15 municipalities[28] – or boroughs, which are further subdivided into 105 wards[29] (consejos populares). (Numbers refer to map).

Havana Municipalities.png
  1. Playa: Santa Fé, Siboney, Cubanacán, Ampliación Almendares, Miramar, Sierra, Ceiba, Buena Vista.
  2. Plaza de la Revolución : El Carmelo, Vedado-Malecón, Rampa, Príncipe, Plaza, Nuevo Vedado-Puentes Grandes, Colón-Nuevo Vedado, Vedado.
  3. Centro Habana: Cayo Hueso, Pueblo Nuevo, Los Sitios, Dragones, Colon.
  4. La Habana Vieja : Prado, Catedral, Plaza Vieja, Belén, San Isidro, Jesús Maria, Tallapiedra.
  5. Regla : Guacanimar, Loma Modelo, Casablanca.
  6. La Habana del Este : Camilo Cienfuegos, Cojimar, Guiteras, Alturas de Alamar, Alamar-Este, Guanabo, Campo Florido, Alamar-Playa.
  7. Guanabacoa : Mañana-Habana Nueva, Villa I, Villa II, Chivas-Roble, Debeche-Nalon, Hata-Naranjo, Peñalver-Bacuranao, Minas-Barreras.
  8. San Miguel del Padrón: Rocafort, Luyanó Moderno, Diezmero, San Francisco de Paula, Dolores-Veracruz, Jacomino.
  9. Diez de Octubre : Luyanó, Jesús del Monte, Lawton, Vista Alegre, Acosta, Sevillano, Vibora, Santos Suárez, Tamarindo.
  10. Cerro: Latinoamericano, Pilar-Atares, Cerro, Las Cañas, El Canal, Palatino, Armada.
  11. Marianao : CAI-Los Ángeles, Pocito-Palmas, Zamora-Cocosolo, Libertad, Pogoloti-Belén-Finlay, Sta Felicia.
  12. La Lisa : Alturas de La Lisa, Balcón Arimao, Cano-Bello26-Valle Grande, Punta Brava, Arroyo Arenas, San Agustín, Versalles Coronela.
  13. Boyeros: Santiago de Las Vegas, Nuevo Santiago, Boyeros, Wajay, Calabazar, Altahabana-Capdevila, Armada-Aldabo.
  14. Arroyo Naranjo: Los Pinos, Poey, Víbora Park, Mantilla, Párraga, Calvario-Fraternidad, Guinera, Eléctrico, Managua, Callejas.
  15. El Cotorro: San Pedro-Centro Cotorro, Santa Maria del Rosario, Lotería, Cuatro Caminos, Magdalena-Torriente, Alberro.

알라마르 농장 : 쿠바 vs. 북한

알라마르 농장은 아바나시(市) 아바나 델 에스데 구(區) 알라마르동(洞)에 있다. '마르'는 바닷가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만‘이나 ‘포’ 혹은 ‘진’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영일만, 마포, 서귀포, 성산포 같은. 지도에 보면 아바나만(灣)에서 오른쪽으로 해안을 따라 가다가 첫 번째 나오는 만(灣)에 있다.

#1.

“사람들이 먹을 게 없어 배가 고픈데 왜 채소인가? 곡식이 아니고?”

내가 조합장 미겔씨에게 물었다. 미겔은 뜸도 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굶어 죽는 사람은 없었다.”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대답이었다. 내가 뭘 궁금해 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쿠바는 춥지 않다. 유까, 말랑가, 고구마, 토마토, 콩, 옥수수, 구아바, 사탕수수 등등 열대작물이 다 있다. 과일도 끊이지 않고 난다. 우리는 사탕수수즙 마시고 고기기름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다.”

 

왼쪽 알라마르 협동농장 조합장 미겔씨. 오른쪽은 통역을 해 주신 정호현씨

왼쪽 알라마르 협동농장 조합장 미겔씨. 오른쪽은 통역을 해 주신 정호현씨

 

#2.

쿠바에 온지 만 1년 정도 되었다는 쿠바주재 코트라관장 000씨는 말했다.

“먹을거리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특히 채소. 한번은 채소가 너무 먹고 싶어서 (손으로 그릇에서 채소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시늉을 반복하며) 썩은 것도 그냥 막 집어 먹었어요. 그리고 배탈 나고.”

먹을 게 아주 없는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단지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온갖 게 다 풍족한 우리식의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왼쪽은 한쿠바교류협회 쿠바 지사 신입사원 김여진씨. 가운데 000님. 오른쪽 화천현장귀농학교장 박기윤님.

쿠바에는 북 대사관이 있고, 검색해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분께 들은 적나라한 얘기는 다 할 수 없다. 관료주의의 전형적인 문제들이 다 있다. 앞서 소개한 이성형님의 글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를 보면 아주 조금 언급돼 있다.

 

#3.

쿠바는 뚜렷한 계절구분이 없다. 연중 따땃하다. 우리가 쿠바에 머물렀던 11월 20일~12월 5일은 쿠바에서는 제일 선선한 때라는데 내가 사는 강원도 화천 5월 10일 경, 종상(終霜)일이 지난 때와 비슷했다. 새벽 너 댓 시쯤에 집에서 나갈 때는 추워서 내복에 두꺼운 솜바지까지 껴입고 나갔다가 9시쯤 되면 더워서 내복을  벗고 솜바지 입고 일하다가 곧 해가 쨍하고 뜨거워지면 솜바지는 얇은 일바지로 갈아입고 윗도리는 속옷만 입고 일하다가 오후 다섯 시쯤 돼서 해가 기울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 서늘해지면 벗어뒀던 옷을 차근차근 다시 입어야 하는 날씨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내복에 두꺼운 솜바지를 입어야 할 정도로 아바나의 새벽 기온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그저 얇은 셔츠가 조금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서 재미 삼아 돌발 퀴즈. 쿠바에서 제일 추운 데는 어디일까요? 정답은 이 글 어딘가에 숨겨 놓겠어요. 호호홋!]

쿠바는 산이 전체국토의 20%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섬이다. 이렇게 되면 물이 부족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잡아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야가 넓어 물빠짐도 나쁘다. 물이 풍족하지 않으면 농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연중 고르게 비가 내려준다면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겠으나 불행히도 쿠바는 우기와 건기로 구분돼서 우기인 5월~10월에만 월평균 100~200㎖ 정도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고 나머지 반 동안에는 비가 거의 없다. 우기 동안에는 얘길 들어보면 거의 매일 저녁 한 시간 정도 세상이 다 물에 잠길 것 같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뚝 그친다고 한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이 천천히 빠져나가고 다음 날도 반복된다. 평지에 물이 왕창 쏟아지니 쉽게 빠지지도 않을 것이고, 기온은 높다. 이런 조건에서 잎줄기채소는 견딜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쌈채류(각종 상추․배추․양상추․케일․브로콜리 등등)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고 질소질이 풍부한 거름진 토양과 충분한 물을 필요로 한다. 쿠바는 잎줄기채소를 재배하기에 적당한 조건이 아니다. 더구나 고온다습한 조건에서 이동과 보관에도 상당한 에너지를 써야 한다. 우리가 둘러본 올가노포니코에서는 예외 없이 거의 쌈채류 중심의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는 쿠바에서는 상당히 이국적인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러시아에서 통역일을 하다 은퇴하신 할매. 알라마르 농장 단골 고객이시다.

#4.

  미겔에게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이렇다.

“니네 나라 서북쪽 구릉지대인 비냘레스에 가 보니까 소농(小農)들이 있더라. 밭도 있고 논도 있는데 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밭은 쪼가리쪼가리로 나누어서 각각 여러 작물(담배, 사탕수수, 토마토, 콩과 옥수수, 토란, 유까 등)을 고루 심고, 밭을 살펴보니 수확기에 접어든 콩과 옥수수가 있는 밭도 있고 이제 막 모를 옮겨 심은 밭이 함께 있었다. 농사꾼들은 겨리소(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질. 한 마리는 호리소라 한다)로 쟁기질하고 흙을 잘게 부수고 골을 내더라. 묵정밭과 마당에는 닭이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고 돼지가 이구석 저구석에서 꿀꿀거린다. 목에 줄을 매어 마치 우리가 염소를 키우듯이 이리저리 몰고 가 묶어두기도 한다. 너른 초지에는 몇 마리 안 되는 말과 소가 풀을 뜯고 있고, 물어보니 이렇게 서너 해 초지로 쓰고 땅심이 회복되면 다시 갈고 작물을 키운다고 했다. 농사꾼들은 마차나 소달구지를 몰기도 하고 말을 타고 따가닥거리며 밭과 거리를 활보한다. 윤작․간작․혼작이며 유축복합농업이며 자급자족이라는 유기농업의 가치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전통적인 소농들이 띄엄띄엄 농장 한 귀퉁이에 집을 짓고 가축들과 함께 살고 있더라.

 

쿠바 북서부 비냘레스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이미 다 사라진 풍경들인데, 너희 나라에는 아직도 이런 농가가 있어서 놀랐다. 이런 소농이 생겨난 때가 언제인지 말해 줄 수 있겠니? 90년대 경제 위기로 인해 생겨난 풍경인지, 아니면 역사가 훨씬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렇게 장황하고 복잡한 질문을 스페인어 배운지 1년밖에 안 된 젊은 친구가 요령 좋게 옮겨 전달했을 리도 없고, 미겔 역시 질문의 정확한 취지를 파악했을 리도 없다. 미겔은 예의 소련 붕괴와 동구권 몰락, 석유․화학비료․제초제 등의 수입 중단 얘기를 되풀이하려 했을 뿐이다. 비냘레스에서 말만 통했으면 다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높은 언어장벽에 꽉 막혀서 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궁리해낸 방법이 알라마르를 다시 방문해서 농업전문가인 미겔에게 물어 보는 것이었는데, 실패다. 왕실패!

진짜 궁금한 건 이런 거였다.

“쿠바의 소농들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됐고, 어느 지역에 얼마나 분포하는가?”

“이른바 평화기의 특별시기에 소농들도 함께 굶주렸는가? 아니면 비교적 쉽게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이겨냈는가?”

“쿠바의 유기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억지춘향으로 보이는 오가노포니코 같은 걸 만드는 것보다 이미 있는 소농모델을 확산시키는 것이 더 유력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질문은 있는데 던질 방법도 없고 답도 돌아오지 않아 답답했다. 그래서, 그렇다면 아바나시 외곽지역을 둘러보며 소농의 존재를 찾아보기로 했다. 찾아간 곳은 아바나도(道) 서쪽으로 바로 인접해 있는 아르떼미사도(道) 바우타군(郡) 가이미토면(面)이었다. 아바나 시내 중심지에서 승용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가이미토면은 내가 살고 있는 간동면 중심지와 비슷한 규모로 보였는데 마을 안길은 반듯하게 정비돼 있고 가옥이 밀집해 있었다. 안내해준 친구의 말에 따르면 거주지만 농촌일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로 일을 나간다고 했다. 인구의 80퍼센트 정도가 도시에 거주하고 20퍼센트 정도가 농촌에 거주하지만, 농촌 거주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 일터를 갖고 있을 거라고 했다. 이 친구 말에 따르면 농업인구는 그러니까 전체 인구의 4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셈이다.

전직 교사였고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살며 아바나 시내로 일주일에 두 번 일을 나가는 올가(58년생)라는 아주머니와 인터뷰했다. 나는 질문 방식을 바꿨다.

“어릴 때 이 동네 사셨어요?”

“아니,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간 깡촌에 살았어요.”

“아버지는 뭐 하셨어요?”

“우리 아빠는 농부였어요.”

아싸!

“파파 연세는요?”

“지금 84세.”

만 84세면 28년생이다. 확인해 보니 맞다. 체게바라와 동갑이다. 돌아가신 울 아부지보다 두 해 먼저 태어나셨다.

“뭐, 뭐 심으셨어요?”

“콩, 옥수수, 토란, 유까, 사탕수수, 담배 등등등 이거저거 골고루 많이 심었어요.”

“농지 면적은 얼마나 됐어요?”

“(우리가 얘기를 나눈 다세대 연립주택 앞 길 건너편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정도 돼 보이는 넓은 운동장이 있었는데 이를 가리키며) 저보다 넓었다우.”

“땅은 어떻게 갈았어요? 소로 갈았어요?”

“거럼. 소로 갈았지.”

이 대목에서 일행이었던 박선생이 규모가 큰 넓은 밭은 기계가 갈지 않았느냐고 확인했다. 올가 아주머니는 그렇다고 했다. 넓은 밭은 기계가 와서 갈아주고 갔다고 했다. 소득을 위한 혹은 정부 납품을 위한 주작목이 있고, 다른 여러 부작목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집은 여기처럼 밀집해 있었나요? 아니면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나요?”

“여기 한 채, 저만큼 멀리멀리 가서 한 채 이런 식이었어요. 그렇지만 바쁜 때는 주변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함께 일을 했고, 나도 어렸지만 거들었다우.”

올가 아주머니는 콩씨 넣는 몸짓을 했다.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들어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알 수 있었다. 골 탄 밭고랑에 콩씨를 들고 들어가서 꼿꼿이 선 채로 발 앞에 콩씨를 던지고 왼 발로 한 번 흙을 덮어주고 오른발로 한 번 흙을 덮어주는 식으로 전진하면서 콩을 심는 것이다. 저 몸짓은 우리 장모님(43년생)이 자기 어릴 때 어른들 도와서 콩 심을 때 자기도 거들며 아주 잘 심었다고 자랑하실 때의 몸짓과 완전히 일치한다.

“심은 것들은 수확해서 집에서 다 먹었어요? 아니면 내다 팔았어요?”

“먹기도 하고 팔기도 했지요.”

“집에 가축도 많았겠어요?”

“당근이쥐. 소, 돼지, 닭, 말, 개가 우글우글”

빙고!

올가 아주머니가 기억하는 어린시절 모습은 내가 비냘레스에서 본 풍경과 완전히 일치했다.

혁명의 고향 남부. 씨에라마에스트라지역의 농사꾼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최근에 들이닥친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처참하게 파괴되어서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되었다고 하는 동남부지역 산간지대 농사꾼들의 모습을 보지 못 한 채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안타까웠다. 한 줌도 안 되는 산 속 무장 게릴라들의 절대적 우군이었던 동남부지역 농사꾼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고 지금은 또 어떻게들 살아가고 있는지?

중부지방은 대평야였다. 산타클라라와 트리니다드는 긴 쿠바 섬의 중심부에 있는데, 아바나에서 중부지방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창밖으로 보이는 건 광활한 평야였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은 대부분 초지였고, 간혹 나타나는 밭은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사탕수수 물결이었다. 딱 한 번 나타난 과수원역시 백만평 단위로 헤아려야 하는 넓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