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농업연수

팔. 트리니다드 vs. 비냘레스

아하 2013. 1. 15. 18:37

 트리니다드 vs. 비냘레스

트리니다드는 구아바나처럼 옛날 집과 옛길을 그대로 둬서 완전 횡재한 동네다. 쉼 없이 밀려드는 여행객들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연수단이 철수한 날 저녁 일곱 시 반쯤, 번쩍번쩍 빛나는 반팔 셔츠(츄리닝이다)며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반바지(이것도 츄리닝이다)며 신발까지 온통 나이키로 치장한 젊고 덩치 큰 흑인 인력거(사실은 자전거거)꾼이, 함께 있던 연수단이 철수하면서, 아바나 최고층 최고급 식당에서 이 동네 사람들 두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최고급 요리를 한 끼 식사로 낼름 잡숫는 호사를 누리다가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한 왜소하고 헐쭘하기 짝이 없는 동양계 외국인 여행객 둘을 태우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네모난 돌로 바닥을 깐 울퉁불퉁하고 경사진 어둑어둑한 오래 된 고갯길을 물어물어 민박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한 왜소하고 헐쭘하기 짝이 없는 동양계 외국인 둘은 물론 박선생과 나다. 민박집을 소개받아 버스터미널 앞에서 떼로 몰려와 호객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인력거꾼에게 민박집 명함을 줬는데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그 민박집을 찾지 못 해 젊은 친구는 한 참을 헤맸다. 다음 날 살펴보니 버스터미널에서 민박집까지는 1km도 채 안 됐다.

 

 

 

트리니다드는 쿠바 중심부인 산티 스피리투스도(道) 남부 해안가에 있는 작은 도시다. 인구는 2004년 기준으로 7만 3천. 도시 외곽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도시는 완전 장사속이었다. 여러 날 머물면서 친구를 사귀고, 친구 자격으로 동네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저 아래 동네 남쪽 산티아고 데 쿠바를 향해 가는 중 잠시 들른, 그저 스쳐가는 나그네 입장에서 느끼는 동네 분위기는 좀 살풍경했다. 여기에 있는 내내 계속 뭔가 바가지를 쓰고 있는 듯한 찜찜함이 따라다녔다.

 

아침 여섯 시 반. 어둑어둑할 무렵. 트리니다드 골목길. 

 

 

우리가 묵은 민박집 주인(빅토리아. 사진으로 볼 때 50은 넘어 보이는 백인계 아줌마다. 남편 료말에 따르면 사교적이고 개방적이며 친구 사귀기를 좋아한다. 아이가 아파서 인근 도시 병원에 데리고 나갔다고 했다. 직접 보지는 못 했다.)의 남편( 료말. 37세. 목수다) 말에 따르면, 자기가 한 달 꼬박 일해서 받는 급료가 15쿡이라고 했다. 우리가 민박집에 하루 묵는데 지불한 돈이 20쿡이다. 저녁은 두 사람 각 5쿡씩 10쿡에 아침 식사 2인분이 6쿡. 여기에 지난 밤 내가 마신 커피 1쿡은 별도라고 돈을 내라고 해서 실갱이하다가 결국 냈다. 두 사람이 하루 묵으면서 낸 돈의 합은 37쿡이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고 우리한테 돈을 받은 사람은 사람 좋아 보이는 이 집 바깥 양반인 목수 료말이 아니라 빅토리아 아줌마가 부탁하고 갔음직한 이웃집 아줌마였다. 어제 저녁 먹고 얘기 나누면서 료말이 럼주병을 들고와서 서비스라며 한 잔씩 따라줘서 마셨는데, 마누라가 돌아오면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수 료말과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시는 박선생. 박선생이 아니었으면 연수 후 쿠바 체류는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혹은 설령 혼자 남았다 하더라도 별 재미 없었을 것이다. 함께 해준 박기윤 형께 깊은 감사!!

목수 료말. 쿠바는 오후 네 시면 모든 공식 업무 끝. 이 친구는 점심밥도 집에 와서 먹었다.

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선생님. 백아무개가 존경하는 사람 목록에 올라 있다^^.

 

 

지난 밤에 료말과 떠듬떠듬 대화를 나눴다. 료말은 목수로서 마을 재건에 참여했다고 했다. 마을을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열라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목수 실기 수업을 받아서 목수가 됐다고 한다. 아버지는 원래 어부였다. 조금 떨어진 동네에 살고 계시다.

“일은 마음에 드니?”라고 내가 물었다.

“거럼!” 료말은 단박에 대답했다. 나는 좀 의심스러웠다. 한 달 15쿡이라며….

“민박을 하는 사람들은 먹고 살만 하겠지만 민박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사니?”

“확실히 우리처럼 민박 치는 집들이 다른 집보다는 먹고 사는 게 낫다. 하지만 세금을 왕창 내야 해서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떼돈을 버는 건 아니다.”라며 숙박자 명단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면서 서류를 가져다 보여줬다. 그런데 정작 우리한테는 서류 작성하자는 소리를 아예 안 했다. 내 예민한 촉이 작동한다. 뭔가 냄새가 난다.  우리가 이 집에 묵었다는 사실은 분명 관계기관 담당자에게 포착 됐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서류를 작성하고 세금을 내야 한다. 안 그러면 벌금이 쎄다. 그런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했다. 이거는 말하자면 불법 혹은 탈법인데, 이웃사람일 것이 분명한 관계기관 담당자와 민박집 주인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매우 높은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아~, 말 꼬인다(말 꼬이는 이유를 쭉 읽어 오신 분이라면 아시리...).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선에서 거래가 있을 수 있다. 이거는 순전히 내 짐작이다.

 

 

료말이 보여준 숙박명부. 여권번호까지 기입하도록 돼 있다.

 

 

료말은 “경제는 확실히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도 했다.

다음날 아침, 료말의 직장은 집 바로 앞, 길 건너에 있었다. 열려진 큰 대문 안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료말의 모습이 보였다. 삽은 한 자루다. 사람은 셋이다. 한 사람은 설렁설렁 삽질하고 있고 둘은 탱자탱자 놀고 있다. 엊저녁에 료말이 한 말에 대한 내 인식이 확 뒤집어졌다. 마을을 만들기 위해 열라 열심히 일했다는 말은 심각하게 의심스러워졌다. 일이 마음에 든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노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돈의 흐름이 왜곡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하고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난장판이 된다. 트리니다드는 난장판스러워 보였다. 외국인전용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20미터쯤 되는 광장 출구를 가득 메운 채 극성스럽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민박집 주인장들, 인력거 기사들에게 가로막혀야 했다.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냉담해 보였고, 노인들만 예외였다, 이래저래 마주친 사람들은 다들 장사속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빼내기 위해 쥐어짜이는 듯한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넓은 평야를 배경으로 한 항구도시라는 점에서 트리니다드는 일제 강점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수탈을 위한 도시 군산과 비슷한 점이 있다. 군산을 통해서 비옥한 곡창지대에서 생산한 쌀이 새나갔듯이 트리니닷을 통해서는 사탕수수 혹은 설탕이 새나갔을 것이다. 누군가의 배를 불리기 위해 민중들은 피땀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18세기 설탕산업의 대호황기를 지나 조용하게 묻혀있던 시골 조그만 동네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는 『오래된 미래』에서 갑작스럽게 관광객에게 노출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어떻게 변하는지 자세히 보여준 바 있다. 트리니다드는 책 속의 라다크를 떠올리게 했다. (아래 링크는 쿠바 지도. 비냘레스 위치 확인용)

 

 

http://maps.google.co.kr/maps?q=vinales+in+cuba&hl=ko&ie=UTF8&gbv=2&hq=vinales&hnear=%EC%BF%A0%EB%B0%94&t=h&z=7&iwloc=A

 

한편 쿠바 북서부 산간지역에 위치한 비냘레스는 또 완전히 딴판이었다. 비냘레스는 인구 2만 7천의 작은 도시다. 사람들은 밝고 상냥하고 눈만 마주치면 “올라!~”했다. 전체 인구수는 내가 사는 화천군과 비슷한데, 집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시가지는 화천읍에 비해 턱없이 작고, 사내면 정도밖에 안 되는 듯했다. 큰길에는 크고 작은 아주 낡은 고물차와 날렵하고 번쩍번쩍 윤이 나는 새 자동차와 마차며 소달구지며 말을 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잘 섞여 너무 혼잡하지도 너무 한가하지도 않게 어울려 지나다니고, 운전자나 탑승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한다.

 

 

 

 

 

 

오토바이, 마차, 자전거, 세단 승용차. 새차는 거의 다 현대자동차였다. 대우 경차도 조금 보였다. 새 버스는 거의 다 중국에서 수입했다. 일반 서민이 타는 차는 아직도 옛날 차. 가난이 단지 "불편"한 어떤 것이면 좋겠다. 가난이 "굴욕"이나 "수치"가 되는 순간,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리처럼. 미국처럼 일본처럼.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듬성듬성 농가가 있다. 붉게 갈아엎어 뭔가 새로 심은 밭과 초지나 묵정밭으로 갈지 않은 밭의 비율이 일대 일 정도 되는 것 같다. 벼를 베고 밑둥만 남은 논이 간혹 보였다. 평야와 얕은 구릉지까지 농지로 볼 수 있겠고, 멀리 큰 산이 아늑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다. 산은 뾰족하지 않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생긴 산들은 동글납작하게 서로 겹쳐 있다.

 

 

철조망은 가축 때문이다. 구획짓기 위해서.

 

옥수수와 콩을 섞어 심는다. 혼작.

 

오른편으로 보이는 헛간은 담배 건조장이다. 우리 나라 산간 지역 담뱃잎 건조장이랑 비슷하다.

 

 

쟁기질 마치고 돌아왔다. 어디...쟁기질 잘 했나 볼까?

 

저 소가 막 갈고 간 밭이다. 이 상태에서 흙부수기를 한 번 더 하고, 골을 타서 심는다.

흙 부수기(로터리)도 볼까~요?

 

 

 

다음 날 오전에 다시 가 보니까 이미 골을 타고 콩과 옥수수를 심고 계시더군요^^. 씨앗을 조금 얻어 왔어요.

사진요? ㅋㅋㅋ. 충전기 안 가져 간 바람에 이미 방전 상태. 속 터집니다.

 

 

비냘레스는 잃어버린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아늑하고 포근했다. 내 속에 각인 돼 있을 것이 틀림없는 어떤 원형(原形)같은 것이 툭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침 동 틀 무렵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본 풍경은 아마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주인이 목을 밧줄로 맨 시커멓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토종 돼지를 우리에서 끌어 내 풀을 뜯기러 밭으로 나가는 모양이다. 돼지가 주인을 끌고가면서 신이 났다. 하는 양이 우리집 개같다. 돼지는 걸으면서 풀을 뜯는다. 그 옆으로 아무 것도 매지 않은 새끼 돼지 두 마리가 신이 나서 따라가고 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주인과 돼지를 둘러싸고 열 댓 마리쯤 되는 큰 닭과 수십 마리쯤 되어 보이는  병아리들이 웅성거리며 우루루 주인과 돼지를 감싸고 몰려나간다. 깜장털과 누런 털이 적당히 섞여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멍멍 개는 오히려 멀찍이서 살금살금 주인을 뒤따른다. 주인 농부아저씨는 날씬하고 키가 크다. 농사꾼들이 입는 카키색 일복을 입고 일꾼들이 쓰는 밀짚모자 비슷하지만 정방형에 옆구리를 위로 말아 올린 일꾼 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었다. 허리에 허리띠를 두르고 왼쪽 뒷춤에는 긴 칼(용도가 우리 낫과 같다), 오른쪽 뒷춤에는 짧은 칼을 차고 있다. 농사꾼 머리 위로 유난히 붉고 밝고 큰 해가 살살 떠오른다. 하필이면 이 때 사진기 밧데리도 동이 나고 메모리카드도 꽉 차는 통에 사진을 찍지 못 했다.

 

 

아줌마들은 빨래만 한다. 남부지방 아줌마들은 농사일 열심히 일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떤 얘기도 믿을 수 없다. 가서 봐야 한다. 꼭 한 번 더 가야 한다. 혁명의 땅 남부에.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 주방. 파란 드럼통 뒤에 지붕 있는, 개집 처럼 보이는 구조물 안에 돼지가 살고 있다. 옛날 우리 동네에서도 농사 부산물과 구정물 먹여서 가축 다 키웠다. 아래 사진은 집 정면에서 본 모습.

(물자가 부족하면 좀도둑이 들끓게 마련이다. 담장 위로 깨진 병쪼가리. 역시 옛날 우리 모습이 떠오른다.)

 

기왕 하는 김에 숨은 돼지 찾기도 해 보시라.

 

비냘레스에서 발견한 올가노 포니코. 돼지가...!! 돼지는 정말 사랑스런 동물이다.

영리하고 민첩하고 늘 유쾌한 친구. 닭이랑 어울려 놀고 있다.

 

 

아줌마들은 농사일을 전혀 안 하는 모양이었다. 빨래만 하고 청소만 하는지 집집마다 빨래는 엄청나게 널려 있고, 걸으면서 보면 집집마다 집 청소 하느라 야단이다. 집안은 참 단순하다. 그저 흔들의자 몇 개에 침대면 가구가 땡이다. 바닥은 타일이다. 그러니 물청소를 해야 한다. 집안 바닥 물청소하는데 걸리적거릴 게 별로 없다. 겨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두꺼운 이불이나 두꺼운 옷이 필요 없으니 큰 장롱이 있을 턱이 없다. 난방을 안 해도 되니까 집짓기도 쉽고 상하수도시설도 쉽다. 이 동네에서는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물건이 사치스럽고 많다는 얘기가 아니고 사람들이 풍요로워 보였다. 동네가 관광객을 꿀꺽 삼켜버리는 듯했다. 이것이 고집 세고 자긍심 높은 농사꾼들, 특히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소농들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물론 내 맘대로 하는 생각일 뿐이다. [돌발퀴즈의 답. 내가 원한 정답은 버스 안. 우리 연수단이 탔던 좋은 관광버스와 멀리 갈 때 탄 외국인 전용버스는 모두 중국제였는데 냉방이 장난 아니었다. 엄청 추웠다.]

 

비냘레스 베이스볼 스타디움. 야구들 참 좋아 한다. 주말, 리대항 야구대회라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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