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농업연수

칠. 쿠바 식당 상차림

아하 2013. 1. 14. 17:44

 쿠바 식당 상차림

“제발 메뉴를 좀 보고 주문해서 먹어 보면 원이 없겠다.”

우리 연수단원 중 한 분은 이렇게 푸념했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으면 서빙하는 직원이 와서 묻는다.

“물, 콜라, 주스, 맥주, 우유(분유다. 생우유는 냉장유통해야 하는데 쿠바는 아직 냉장유통 체계가 안 돼 있다.) 중에 뭐 마실래?”

물을 그냥 주고 추가로 뭘 마실지 묻는 게 아니다. 물도 선택지 중 하나다. 나중에 보니까 코스 요리가 아니고 단품 식사일 때는 얘들도 다 계산해야 한다. 1~1.5쿡(쿡은 쿠바에서 쓰는 외국인 전용 태환화폐로 달러와 등가다).

다음은 뭘 먹을지 골라야 하는데, 어디나 똑같다. 이런 식이다.

“닭 먹을래? 돼지 먹을래? 생선 먹을래? 버거 먹을래?”

 

트리니다드 민박집에서 주인 빅토리아의 남편 료말이 차려준 저녁상

 

이게 다다. 우리는 닭고기만 가지고도 볶아먹고 지져먹고 튀겨먹고 삶아먹고 구워먹고 찜쪄먹고 잘게잘게 뜯어서 무쳐먹는다. 하여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해 먹는데 이 나라는 참 단순하다. 요리법이 하나뿐인 것 같다. 굽는건지 튀기는건지 볶는건지 닭을 토막쳐서 겉에 기름기가 도는 채로 덩어리째 내는 것밖에 없다. 돼지나 생선도 마찬가지다.

 

아바나 쿠바 국제친선협회 방문 후, 한국으로 치면 "청담동"에 있는 식당 상차림

 

큰 접시에 폴폴 날아갈 것 같은 밥알갱이가 버글거리는 밥 한 공기 정도, 잘게 썬 채소, 보통 오이 몇 조각에 채 썬 당근과 양배추 조금 정도, 닭이나 돼지나 생선 토막 한 두 덩어리. 이게 다다. 특별히 요리라고 할 게 없어 보인다. 밥 다 먹고 나면 커피나 홍차 혹은 아이스크림을 갖다 준다. 물론 요것도 코스요리로 먹지 않는 이상 다 따로 계산 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런 식사를 하는 1,100만 인구를 쿠바 농민들이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일까? 축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해 있어야 하는데, 돼지나 닭은 농가에 조금 있는 것 말고는 보지 못 했다. 우리나라에 널려 있는 밀집 사육 시설은 단 하나도 못 봤다. 급식소로 보이는 건물들이 제법 많이 보였는데 거기에는 주로 빵과 흰달걀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트리니다드에서 찍은 사진. 아마도 배급소인듯.

 

 

더운 나라라서 밀은 생산이 안 된다. 전량 수입일 것이다. 달걀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본처럼 생선은 그럼 풍부할까? 그것도 아니다. 수산업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수준이라 했다.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배 한 척을 못 봤다. 그럼 쌀은? 정말 극히 드물게 밭 구석에 처박혀 있는 논 꼬라지로 봤을 때 쌀도 자급이 될 리 없다.

 

비냘레스에서 본 논. "우아~~, 논이다!"

 

어떤 이는 쿠바의 식량 자급율이 40%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식량의 80%를 수입해 온다고도 하는데 국가 공식 통계는 어떤지 모르겠다. 설령 국가 공식 통계가 있다고 해도, 이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국민들이 넉넉하게 먹는 걸 기준으로 하는지 아니면 쫄쫄 굶거나 아니면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는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지 잘 보여주지 않는다. 북한의 식량 자급율이 70%를 넘는다고 하지만 이는 소비총량을 기준으로 하는 것일 뿐, 그 소비의 질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북한 사람들 전체가 일년 동안 쌀 100톤을 먹었는데 그 중에 70톤을 자급했다고 하자. 그러면 70% 자급이다. 그런데 일년 동안 배고파 굶어죽은 사람이 부지기수면 이 통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식량 자급율 20%대의 대한민국 통계에도 사실 위험을 강조하기 위한 뻥이 조금 배어 있다고 나는 본다. 가축을 먹이거나 식용 기름을 얻기 위해 수입하는 곡물이 많다. 가축 먹이를 제외하고 사람 먹는 것으로만 계산하면 자급율은 몇 년 전에 검토한 것이기는 한데 50%가 약간 넘는다. 그러니까 자급율을 높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고기를 적게 먹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고 여기에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합한 금액을 환경부는 20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2010년 기준 농림수산업 총생산이 42조원인 걸 생각하면 기가 막힐 수치다. 깔끔하게 잘만 먹어도 식량 자급율은 급증한다. 90년대 초반 쿠바가 처한 위기 상황을 토대로 수치를 가감하며 식량수급과 관련한 시뮬레이션을 한 번 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텐데 아쉽게도 나는 능력도 시간도 안 된다. 농사를 져야 한단 말이다!

 

아바나에서 트리니다드 가는 고속도로

 

 쿠바 국토의 넓이는 대한민국과 거의 같은데 버스 타고 고속도로를 휙휙 지나가면서 본 대부분의 땅은 초지였다. 드물게 논이 보였고 아주 드물게 개울이 보였다. 한강이나 낙동강 중류쯤에 해당하는 정도의 큰 강은 하나도 못 봤다. 가시철조망으로 넓게 구획된 초지에서는 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땅 면적에 비해서 풀 뜯는 소는 없는 거나 다름없는 숫자였다. 그런데도 소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게 이상했다. 물어보니 쿠바에 1년 정도 살고 있는 젊은 친구 얘기로는 가끔이긴 하지만 먹기는 먹는다고 한다. 소위 암시장인데, 친구와 친구로 연결된 훌륭한 지하 경제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 것.

 

아바나에서 트리니다드 가는 고속도로

 

한국과 쿠바는 국토 넓이가 거의 같으니까 비교해 보기도 참 좋다. 그래서 나는 또 궁금해졌다. 한반도 전체 인구가 1,000만을 돌파하는 시점은 언제쯤이었을까? 자료에 따르면 조선 중기에 1,000만을 넘어섰고, 조선 말 1,300만 정도로 되어 있다. 태어나기도 많이 태어났을 것이고, 흉년이 들면 굶어 죽었을 테고, 봄마다 보릿고개 넘지 못 해 죽어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식량이나 석유를 수입했을 리 없다. 외부자원의 유입 없이 당시의 씨앗과 당시의 기술력, 당시의 농업기반과 당시의 정치사회구조 속에서 이 땅이 먹여 살릴 수 있는 최대치는 1,300만 정도였다고 보면 될 듯하다. 지금 한반도에는 무려 7천만이 살고 있다.

그러니까 쿠바 정도의 국토라면 1,100만 정도의 인구는 당연히 먹여 살려야 맞는 것 아니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인데, 사실 이 비교는 온당하지 못 하다. 조선의 강역은 한반도 전역이었으므로, 반띵이 해줘야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35년 인구 통계가 2289만 9천명으로 되어 있다. 쿠바와 한반도의 인구밀도가 비슷해진 시점은 1930년대 중반쯤으로 보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