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농업연수

십일. 쿠바의 유기농업, 우리를 비추는 거울

아하 2013. 1. 23. 13:51

쿠바의 유기농업, 우리를 비추는 거울

나는 사람들이 다음 두 가지 경우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값이 싸서, 살 수 있는 돈은 있는데 살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있다. 그리고 「물건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어느 게 더 나쁠까?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이렇게 멋지게 한 마디로 압축해서 대비시킨 사례가 또 있을까? 으하하하 깔대기! 실제로 이런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8월 9월 계속해서 비가 쏟아진 해, 10월 초 추석 장을 보는 주부가 「생협」과 「대형 마트」에서 마주치는 상황이다.) 쿠바의 음식 조달 상태는 앞의 상황으로 보였다. 쿠바 시민들이 사는 먹을거리 값은 터무니없이 쌌다. 유기농산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쿠바에서 만난 여러 농업 관계자들에게 유기농업은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시민들에게 “아주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쿠바의 유기농산물은 원가가 싸다. 비싼 화학비료를 안 쓰고 비싼 화학농약도 안 쓰고 비싼 제초제 같은 것도 안 쓰고 농기계도 안 쓰고 비싼 석유를 때며 멀리 운송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봤을 때, 외부에서 사다 써야 하는 걸 소비하지 않고 모두 내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걸 써서 생산 유통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생산한 농산물은 원가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거의 무상에 가깝게 공급할 수 있다.

 

그런데 쿠바 국민들이 정말 이처럼 “값싼” 채소를 먹고 있는 것인지 한 번 보자. 알라마르농장에서 생산하는 채소를 우리식으로 원가 계산을 한 번 해 보면 좋겠는데, 비용을 다 합하고 생산물을 단순 키로(㎏) 수로 환산해서 나누면 키로그램당 원가가 나올 것이다. 먼저 땅값이 있다. 알라마르 농장 위치는 마포 언저리쯤 돼 보인다. 3만 3천 평이면 값이 얼마나 될까? 땅값에 들어가는 금융기회비용을 일단 생각해 두자. 그리고 인건비가 있다. 일하는 인원이 150명이 넘는다. 도시 평균 근로자 소득을 대입하면 되겠다. 그리고 농자재나 농기구 같은 건 다 자급자족한다고 하자. 연간 얼마나 많은 채소를 생산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계산하면 알라마르 농장에서 생산하는 채소 양만큼의 “금덩어리”를 살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아바나 시민들이 먹는 상추의 가치는 말 그대로 금추다. 그들은 사실은 무지무지하게 가치가 있는 상추를 거의 꽁으로 먹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시켜 놓고 보면, 여기서 많은 함축을 찾아낼 수 있다. 우선 첫째가 유기농업을 하는 사회경제적 혹은 국가단위에서의 동기다. 한마디로 하면 유기농업을 왜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왜?”라는 질문은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막연한 느낌을 준다. 조금 좁혀서 “동인”으로 해석하면 편하다. 그러니까 농사꾼이 왜 유기농업을 하느냐? 소비자가 왜 유기농산물을 먹느냐? 정부는 왜 유기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느냐? 뭐, 이런 것일 텐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접근법은 역시 돈, 즉 경제다. 우리 연수단 내부에서도 이런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시장에 고품질․고가격․고안전 농산물에 대한 작은 수요가 존재하고 이런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경제활동으로 유기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당연한 얘기다. 농사꾼도 돈이 돼야 일을 시작하는 것이고, 소비자는 지불한 만큼의 대가를 돌려받아야 하고, 정부는 이와 같은 거래가 공정하게 잘 이루어지도록 관리 감독하고 소비자는 또 한편으로 납세자이기도 하므로, 납세자들이 원하는 바가 실현되도록 정부 예산을 적절하게 투입할 의무가 있다. 또한 거래가 공정하게 잘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제품의 품질에 대한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인증제도가 출현한다. 이런 시장중심 경제중심의 논리는 우리나라 유기농업계가 흘러가는 하나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유기농산물의 거의 유일한 시장역할을 하고 있는 생활협동조합의 급속한 팽창과도 맞물려 있다.  

 

유기농업의 상업화 세속화 혹은 규모화 규격화라 부를 수 있는 이런 흐름은 조금 더 근본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비판받는다. “유기농업이 뭔데? 돈 벌려고 유기농업을 해? 관행농하고 다를 게 뭐 있어?”라는 식이다. 쿠바는 이런 질문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도록 돕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두 번째로는 “유기농업이 그럼 뭐냐?”는 정의의 문제다. 국제연합 UN산하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식품의 국제기준을 정하기 위해 만든 코덱스위원회(CAC)는 유기농업을 “생물다양성, 토양의 생물학적 활성화, 그리고 자원의 생물학적 순환을 더욱 고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생산하는 농업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거래를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 계약 형태로 작성된 “인증제도”하고는 사용하는 용어부터가 사뭇 다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역사성 없는 ‘이념’과 맨땅에 삽질하며 박박 기면서 만들어낸 ‘역사성 혹은 현장성’의 차이로 나는 이해한다.

 

우리나라 시골 할매 할배들은 유기농업 혹은 친환경농업이란 말은 낯설다. 그냥 “으응~, 무공해농사” 그러신다.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는 기가 찼다. 그러면 일반 농사는 공해농사란 말인가?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 친환경 농업의 개념은 친환경이라는 말보다 무공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무”는 부정어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도 농약이나 비료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농사다. 친-환경보다는 무-공해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은 그러니까 친환경성보다는 무공해성으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1980년 중반 원주사람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한살림운동과 생활협동조합운동이 당시에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공해추방운동과 같은 환경운동과 맞물려 인식되면서 그리 된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우리 유기농업의 역사는 이런 맥락 위에 서 있다. 급격한 산업화로 농촌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고독성 농약과 제초제 등의 파괴적인 영향이 가시화 되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한 것이 초기 소박한 형태의 유기농업운동이다. 농사꾼은 가혹한 농업노동을 감내하는 희생을 치루고, 소비자는 보잘 것 없고 생산량도 미미한 농산물을 고가에 구매해 주는 희생을 치룸으로써, 양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비로소 서로 상생한다는, 상호 희생을 통한 상생을 이념으로 삼았다. 이른바 농사꾼은 소비자의 밥상을 안전하게 책임지고 소비자는 농사꾼의 살림을 책임지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농산물의 안전성”, “소비자의 건강”, “농사꾼의 살림살이” 같은 것들이다. 물론 “농약과 제초제 살포 과정에서 농사꾼에게 가해지는 치명적인 손상” 같은 것들도 중요한 이야기 거리의 하나였으나 이후 논의의 전개과정에서 사담 수준으로 격하되고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자리잡지 못 한 채 사적인 것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환경과 생태 생명”의 의제 역시 소비문화의 급격한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 한 채  지체되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은 우리 연수단의 지도교수로 함께 한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님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부 재직시절 친환경농업 원년을 선포했던 내가 쿠바를 먼저 오고 장관을 했다면 우리 유기농업 환경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유기농업을 하는 첫 번째 목표가 건강이 아니고 환경 생태를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건강이고 세 번째는 저투입 저비용으로 가난한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이 순서를 올바르게 하지 못 한 데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

 

 우리 연수단은 끊임없이 토론했다. 두 차례 공식 토론과 거의 매일밤 숙소에서 모여들어 벌인 토론은 정말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어떠한 지적 스크리닝이나 허위 혹은 가식 없이 마음껏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쿠바에 있는 내내 내 수면 시간은 서너 시간이 채 안 된 것 같다. 김성훈전농림부장관님은 연수기간 동안 존경할만한 견해와 태도를 보여주셨다. 특히, 위의 고백에서 보듯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자식뻘도 안 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범한 오류에 대해서, 또 하나는 무지(유기농업 정책을 강력하게 이끌면서도 이른바 호울푸드, 온전한 식품이라 번역할 수 있는 이 개념에 대해 몰랐음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모습은 참말로 존경스러웠다.

 

 

쿠바에서 얻은 값진 수확의 하나는 "채성석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꾼. 지고 있는 직책은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위원장.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꿰뚫는 그의 깊은 지혜는 내 입에서 "뭐, 이런 잉간이 다 있노?"라는 찬탄이 절로 터져나오게 했다. 풍채도 좋고 말빨도 좋고 모습도 아름다워서 연수단에서는 "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체게바라와 거의 동급으로 "채!" 혹은 "채 형님"으로 불렀다.ㅎㅎㅎ  

 

 

농사꾼의 살림살이 의제는 높은 가격으로, 농산물의 안전성과 소비자의 건강 같은 의제는 인증제도로 수렴되었다. 생활수준 향상과 2000년대 초반의 갑작스런 웰빙열풍으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요즘은 “책임 생산” 같은 구호가 나풀거린다.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고 촉진하도록 강제하는 법제도가 정비되었다.

 

집에서 어렵게어렵게 연구 개발해서 쓰던 여러 농자재 생산기술이 쓸모없이 되었다. 각종 농자재의 홍수 속에서 유기농업 역시 석유를 때는 대형 농기계로 땅을 갈고, 수입해온 원료로 만든 유기질 비료를 대량 투입하고, 수입 사료를 먹고 싼 가축의 분뇨를, 역시 수입해온 미생물 자재를 이용해 발효시킨 퇴비를 대량 투입하고, 비닐을 씌워 밭을 준비하고, 수입해온 씨앗을 파종해가지고 난방해서 키운 모종을 이식하며, 역시 수입한 원료로 만든 값비싼 친환경 제재로 병충해를 방제해서 생산한 농산물을 전국 단위의 중앙집중식 물류를 하는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이와 같은 고투입 고산출 단품종 대량생산 장거리 수송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과정을 과연 “유기”라는 말로 수식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그럼 진짜 “유기농업이 과연 뭐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쿠바는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답을 찾도록 촉구하고 있고, 우리 연수단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나누었다고 나는 느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농업계의 극히 일부에서 농사짓는 유기적 방식뿐만 아니라  생활양식과 농사규모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소농(小農)”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그룹이 있다. 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인 전희식에 따르면 소농은 “순환, 자립, 공동체성을 실현하는” 농사로 “자연에 살며시 얹혀살며 자연의 복원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짓는 농사”(전희식, 소농 이것이 진짜 혁명이다, 2011)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 소농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과 소농으로의 사회적 이행과정과 방식 등을 제시하지 못 하고 개개인의 생태적 각성과 실천적 결단을 요청하는 원론적인 선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소비수준도 높고, 고도로 산업화되어 있고 모든 것이 수없이 많은 관계망으로 얽히고설킨 이런 사회에서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유기농업 혹은 이념으로서의 유기농업을 실현한다는 것은 이인(異人) 내지는 도인(道人) 수준에 이르지 않고 서는 불가능하다. 이는 내가 입고 있는 빤쓰 한 장의 역사만 찬찬히 추적해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빤쓰 한 장에도 전세계인의 피와 땀과 눈물과 영혼, 즉 노동이 스며있다.

 

유기농업이라고 하는 이념의 비를 하늘에서 땅위로 쏟아 내리는 대신 지금 여기서 출발해서 단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게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지금까지 이루어온 무-공해 농업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한 발 더 내딛어 친-환경농업으로 이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 하고, 너무 넓은 땅을 너무 힘들게 너무 많은 시간 농사짓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