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농업연수

십삼. 쿠바의 유기농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하 2013. 1. 23. 14:02

 쿠바의 유기농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제 할 말은 다 했다. 여기서부터는 사족이다. 쿠바에 유기농업과 관련한 연수단이 수차례 다녀오면서 이런저런 논란이 있는 듯하여, 논란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참견하기 좋아하는 나는, 2012년 대산농촌문화재단 쿠바유기농업연수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쿠바의 여러 유기농업관련기관을 방문하고, 또 여러 날을 더 남아 여기저기 현장을 둘러보고 온 자로서, 나도 이런저런 논란에 한 발짝 살짝 얹어볼까 한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초현실적인 진리는 없다. 예컨대, 농업과 유기농업을 포함해서 생태 환경을 둘러싼 모든 논의의 밑바탕에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핵심 개념이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나처럼 자식도 없고 삐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대체 왜 지속가능해야 하는 건데?”라고 삐딱선을 타는 순간 우리는 아마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철학 논술고사를 치러야 할 것이다. 내가 쿠바의 유기농업과 관련해서 말할 때, 대전제로 삼는 것은 이것이다. 초현실적인 절대진리는 없다.

 

따라서 쿠바의 유기농업은 쿠바라고 하는 사회의 내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고, 이와 같은 흐름이 우리에게 혹시라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게 나의 관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총평해 보자면 이렇다. 국제적으로 널리 칭송되는 쿠바의 유기농업은 쿠바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대단히 훌륭한, 칭송받아 마땅한 정치적 액션이었다라는 하나마나한 듯한 말이 나의 총평이다.

 

우선 정치적으로 볼 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교과서적인 전술을 구사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 의식주의료교육을 거의 완벽하게 책임져온 정부가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했으니 이건 정말 완전 체면 구기는 일이다. 우리 같으면 쪽팔려서 쭈그러들었을텐데 쿠바는 달랐다.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았다. 식량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는 수세적 상황을, 유기농업을 동원해서, 우리는 지금 인류가 당면한 보편적인 문제를 앞서서 해결하는 중이라는 식으로 공세적으로 해석해버림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나 물리적 측면에서나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공히 위기를 타개하는 돌파구를 만드는 데 “유기농업”은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유기농업은 국제사회로부터 각종 지원금(외화)을 불러  들이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듯하다. 쿠바 정부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국제사회가 안심하고 각종 목적자금을 송금할 수 있도록, 유기농업을 동원해서 반민반관의 성격을 띤 다양한 기관을 조직해 낸 걸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사회의 유휴인력(명퇴자, 고령자, 실업자 등)을 흡수해 관리하는 사회 안전망이자 건강관리실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요거는 연수단 채성석 형의 통찰을 수용한 것이다).

 

알라마르농장 최고령 조합원. 82세.

 

이렇게 내적 맥락을 짚어 헤아리면 좋은 점이, 앞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신컨대, 이러한 쿠바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필요가 다하지 않는 한 쿠바의 유기농업은 후퇴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2012년 쿠바의 유기농업은 고난의 90년대와 회복기의 2000년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는 매우 강력했을 정치-경제적 동인(動因)은 많이 소진된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상황이 나아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동인은 작동하고 있고, 더욱 강해지는 중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으며, 특히 재정적자를 줄이고 사회의 역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관광산업이 촉발하는 소비욕구의 증대(=신선채소에 대한 수요 확대)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쿠바 사회에서 유기농업을 요청하는 사회적 동인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