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성공이니 실패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아하 2013. 11. 3. 18:42

[ 계간지『농촌과 목회』2013년 여름호에 실은 글입니다. 13년 5월에 썼어요. 원고 청탁에 단 한 건도 거부하지 않고 모두 응했습니다.^^ 기특, 대견]

 

 

성공이니 실패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백승우

<농부. 『소비자를 위한 유기농 가이드북-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시금치 출판사, 2013) 공저자>

 


돌아보면 긴 여정이었습니다. 결혼한 직후인 스물여덟 살에 시골로 올 마음을 냈고, 경북 울진 찍고 전남 화순 돌아 강원도 춘천을 거쳐 여기 화천까지 와 있습니다. 지금 제 나이 마흔 다섯입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생태귀농학교가 제 생각과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생태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의 세례를 받은 겁니다. 마치 빛 한 줄기 스미지 않는 깜깜하고 긴 터널을 지나 갑자기 굴 밖으로 나왔을 때, 너무나 강렬하고 밝은 햇살에 눈 멀어버리는 것처럼, 당시 아직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던 젊은이는 눈에 뵈는 게 없었습니다. 무작정 상경하듯이 무작정 귀농이었던 거지요.

사실 지긋지긋하기만 할 뿐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모든 도시적인 것들에 대한 그 어떤 미련도 없이 ‘시골로 가서 다시 도시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해서 농사지으며 살 수만 있다면 내 삶은 무조건 성공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위태위태하긴 하지만 저는 그러니까 아직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

 

도시에서는 아내와 단둘이 사는 단출한 살림이라서 한 달 내내 살아도 쓰레기 종량제 봉지 가장 작은 것 하나 나올까 말까했어요. 시골로 내려와 농사지어 먹고 살겠다고 버둥거리면서 오만 잡다한 물건이 창고를 채우기 시작하고, 농사일이 힘에 부쳐서 정리하지 않은 채로 여름 농번기를 지나고 나면 집주변 밭 주변이 엉망진창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립니다. 창고 정리하면서 큰 맘 먹고 뭔가를 버리면, 하다 못 해 퇴비 포장 비닐이라도 버리고 나면 한 참 지나서 꼭 필요할 때가 생기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버리지도 못 하고 켜켜이 쌓아 놓게 되는데, 어딘가 있긴 있겠지만 어디 있는지 못 찾아서 필요할 때 못 쓰고, 마냥 짐덩어리만 쌓이게 되는 식입니다.

 

깔끔하게 정리정돈하는 습관을 몸에 못 지닌 치명적인 결함이 마구 드러납니다. 지저분하고 어수선해서 환장합니다. 시골 처음 내려왔을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어요. 필요한 게 왜 이렇게 많고 쓰레기는 또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가? 나중에야 생각이 났습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입장 차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소비하는 사람은 생산하는 사람에 비해서 감당해야 하는 쓰레기가 백분지 일도 안 되는 거지요. 예를 들어서 도시에 사는 사람이 배추를 한 포기 사다가 먹는다고 할 때, 장바구니만 들고 나가서 장을 보면 쓰레기가 하나도 안 생기는데, 생산하는 사람은 거름 뿌리고 로타리치고 밭두둑에 비닐 씌우고 수확해서 출하할 때 망에 담고 하느라 수많은 장비와 자재, 엄청난 쓰레기를 감당해 내야하는 식이지요. 생산과 소비가 완전히 분리돼 있기 때문에 온갖 잡다한 생활용품들이 내 손에 들어오기 까지 거치는 각 공정마다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오염이 모조리 사장돼버립니다. 내 눈에 안 보이니까 아예 없는 줄 알고 살아온 것이지요. 어떤 물건이 됐든, 그것이 농산물이든 공산품이든 이 녀석이 어디서 출발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내 앞에 놓여 있는지, 처음과 중간과 끝을 확연하게 통시적으로 다 볼 수 있다면, 사는 게 도무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듯합니다.

 

농사 욕심을 내면서 경지면적을 늘리고, 남보다 농사 더 잘 짓는다는 말 듣고 싶은 욕심에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아등바등 동동거리며 몇 해 살아보니까 우선 집사람이 제 짜증 받아내느라 힘들어서 더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고, 몸도 더는 못 견디겠다고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오른쪽 다리와 몸통을 잇는 부분이 별 뚜렷한 원인도 없이 묵지근하게 아픕니다. 생활하는 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늘 통증이 있어서 괴롭습니다. 작년부터 어쩔 수 없이 농사도 줄이고 생활도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농사를 줄여서 힘과 시간을 비축하고 그 힘으로 정리정돈 잘하자. 농기계 사용을 최소화하고 농자재를 어떻게든 적게 투입하고, 적게 투입한 만큼 수확량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자. 유기농은 어차피 저수확농법이다. 받아들이자. 웬만하면 정부에서 주는 보조사업을 받지 말고 순수하게 자부담으로 농사짓자. 보조사업은 낭비의 주범이다. 농사를 줄인 만큼 소비를 줄이자.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면서 자급자족하며 살고자 했던 그때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농사가 줄어들면서 부족해질 생활비는 어떻게든 벌자. 내가 가진 이런저런 재주를 활용해서 돈 바꿀 수 있는 일이면 쓰든 달든 뱉어내지 말고 받아들이고 웬만하면 하자.’ 이렇게 맘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정리되지 않는 수많은 농자재를 가지런히 잘 정리하거나, 나한테 필요 없어진 농자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내서 적절한 조건으로 잘 넘겨주는 것, 순식간에 쌓여버리는 이런저런 쓰레기 더미를 분리해서 잘 처리하는 것 혹은 아예 생기지 않게 미리 차단하면서 농사짓는 것, 등이 요즘 저한테는 가장 큰 숙제이고 연구 거리라 하겠습니다.


오직 실패뿐이다

 

십 수년 농사지었지만 단 한 해도 마음에 쏙 들게 농사가 된 해는 없습니다. 게을렀냐? 물론 게을렀지만 게으르다 부지런하다 하는 것도 다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고, 나름 열심히는 했습니다. 완전히 자발적인 새벽별 보기 운동, 천 삽 뜨고 허리 펴기 운동뿐만 아니라 깜깜 밤중에 낫질하기 운동까지 신명나게 농사지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처음과 중간과 끝이 가지런하게 마음에 들게 농사가 된 적이 없어요. 고추에 역병이 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다든지 벌레가 꼬여서 배추 잎사귀를 망사빤쓰처럼 만들어 놓는다든지 제대로 결구되지 않는 양상추가 30~40%나 된다든지, 속상할 일은 계속 일어  납니다.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할 만큼 한다고 하는데도 언제나 내 뜻에 어긋나게 제멋대로 돼버리는 농작물들이 그럼 잘 못 된 거냐? 아니면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반응할 뿐인 농작물을 바라보면서 애면글면 속 태우는 내 마음이 잘 못 된 거냐? 가만있어라……, 그러면 ‘나’는 내 마음에 드는가? 천만의 말씀이지. 나조차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세상에 그 어떤 것이 내 마음대로 될까? 농사나 인생이나 어차피 오직 실패뿐이다.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생에 무슨 대단한 성공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오직 실패뿐이다.” 궁시렁거리면서 어차피 장마비 내리면 병 와서 제대로 따지 못 할 고추를 심습니다. 인생이 어차피 그런 거라면 겁낼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이 망설이고 갈등할 필요 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잘 해석해서 가볍게 기꺼이 그 소리를 따라 가는 것,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나 싶은 것인데요, 남들이 이런 소리 들으면 “실패한 인생 합리화하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다”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저 어릴 때 시골에서 함께 자란 동무들은 다 수영을 했어요. 냇가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개헤엄을 배우고 물위에 동동 떠다니며 놀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동네에 사는 모든 아이들이 다 헤엄을 배우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끝내 헤엄을 못 치는 애들이 한 둘은 있게 마련인데요, 제가 바로 그 앱니다. 어릴 때부터 몸집도 작은데다가 몸을 써서 하는 일에는 아주 젬병입니다. 재주가 없으면 크면서 훈련이라도 받았어야 하는데 어른이 다 되도록 손발을 써서 뭔가 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일머리가 꽝입니다. 농사일에 있어서는 몸치에 돌대가리인 셈이지요. 일이 느리고 효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한 시간이면 할 일을 세 시간 네 시간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못 하느냐? 그건 아니예요.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더딜 뿐이지 못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다행히 꾸준히 쉬지 않고 다 할 때까지 계속 하는 재주는 있어서 오래오래 일합니다. 그렁저렁 살아갑니다. 겨울에는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봄이 오는 게 두렵다가도 해가 빨라지고 온 산천에 싹이 피어나고 산이 낡고 칙칙한 묵은 옷 벗어버리고 개가 털갈이 하듯이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고 몸은 저절로 용수철처럼 튀어오릅니다. 된서리 맞아 숨죽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 해 또 자라 오릅니다. 좋은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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