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2006년 12월호에 쓴 글]
귀농하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요?
“자네 부자 됐다면서?” “예? 무슨 말씀이세요?” “땅 사가지고 간 게 값이 많이 올랐다면서?” “예에~. 무슨 말씀이시라고. 오르긴 올랐어요.”
4년 동안 살다가 떠난 고성리에 가니 벌써 소문이 다 났습니다.
절대 빚은 지지 않겠다는 불문율을 깨고, 정부에서 시골로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정책자금(취농창업후계자자금)을 받아 땅을 샀는데 갑자기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빚을 내서 땅을 살 때,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농사지어서 과연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 3천 평이 넘는 땅을 농기계 하나 없이 다 지을 수 있을까, 빚낸 돈이 조금 모자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쓸어 모아서 땅 사는데 써버렸는데, 무얼 먹고 사나 등등 땅을 사긴 샀지만 이런저런 걱정으로 밤에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가시를 곧추 세우고 잔뜩 웅크린 고슴도치마냥 긴장해 있었지요. 그러다가 마음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시골 사는 입장에서 볼 때는 땅값이 오르는 게 좋은 점도 있습니다. 땅을 처분하면 적어도 부채는 해결할 수 있다는 느긋함이 생기는 거예요.
고성리는 춘천호 유원지 인근이고, 춘천시에 속해있기 때문에 땅값이 비싸서, 농사짓기 아주 나쁜 땅을 꽤 비싼 값에 사거나 아니면 좀 더 깊숙한 곳으로 옮겨 비교적 값이 싼 땅을 사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저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땅을 사서 이사한 곳은 고성리에서 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쯤 떨어진 화천군 간동면 용호리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지요. 용화산 남쪽에 있다가 북쪽으로 넘어간 건데, 산을 빙 돌아가야 하니까 거리가 꽤 됩니다. 마침 마을에 빈 집이 있어서 2004년 11월 7일, 입동에 이사를 했습니다.
서둘러서 장비를 동원해 밭을 만들었습니다. 초보자가 경사지고 비탈진 밭에서 농사짓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농사짓기 쉽게 밭을 만든 것입니다. 농사지을 땅에 장비를 들이대는 일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요, 잘 모르는 땅을 헤집어서 멀쩡하던 밭이 오히려 돌밭이 되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드시 땅을 잘 아는 동네 분들의 조언을 듣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땅을 사고 집을 얻고 밭을 만드느라, 벌써 동네 들어오면서 동네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듬해, 정말 열심히 농사지었습니다. 다른 일 다 걷어치우고 오로지 농사에 매달렸어요. 1200평 감자밭에 감자싹이 올라올 때 그걸 혼자서 다 꺼내주고는 허리가 아파 제대로 허리를 펴지도 못 했지요. 농사지으면서 고생한 얘기하려면 끝이 없어요. 그러니 다 건너뛰고, 그래서 결과는?
제일 주작목으로 삼았던 감자값은 폭락하고, 애지중지 키운 고추는 병들어 죽고, 미처 손이 안 간 고구마밭은 풀밭이 되고, 가을 농사지으려고 남겨뒀던 밭은 손을 대보지도 못 하고 풀이 자라 올라 숲을 이루고 하여튼 끔찍한 가을을 맞았습니다. 왜 이러고 사나 싶었어요. 밭에 갈 때마다 울화통이 터지고 부글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겁니다. 내색은 안 해도 끙끙 앓았어요. 그렇게 앓을 만큼 앓고, 나을 때 되니까 문득 깨달아지더라고요.
“누가 시켜서 왔니? 누가 너보고 시골 가서 농사짓고 살라고 등 떠민 사람 있어?” “아니, 없어.” “너 이렇게 고생하고 살 거 걱정해서 다들 말린 거 아니야.” “그렇지. 다들 말렸지.” “근데 왜 그래? 이럴 줄 몰랐어?” “아니, 알았지.” “알면서도 똥고집 부려서 내려왔으면서, 왜 이렇게 살아?”
“맞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무슨 부귀영화를 찾아 내려온 것도 아니고, 호의호식하자고 내려온 것도 아니고, 그저 농사짓고 살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한 일인데, 한 해 농사 잘 안 됐다고 이렇게 마음을 끓이면 어떻게 농사지으며 시골에 살겠나! 맞어, 맞어. 그 동안도 고생했지만 앞으로 닥칠 고생도 만만치는 않을 거야. 올 테면 와 봐라. 내가 지나 이기나 어디 한 번 해 보자.”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고생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알고 받아들이기로 한 거지요. 마음을 돌이켜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빚을 내서 산 땅값이 오르고, 비교적 살기 편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마을 일 한다고 건들건들 돌아다니고 이러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욕심이 끼어들었던 거예요. 어떤 욕심이냐? 농사지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 야~, 그 녀석 참 농사 잘 짓는다는 칭찬 듣고 싶은 욕심. 농사는 이렇게 저렇게 짓는 거야라고 잘난 척 하고 싶은 욕심. 등등이겠지요. 무슨 일이든 욕심 부리면 몸도 마음도 고달퍼집니다.
모르겠습니다. 시골 살이에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 마음 먹기 달린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시골도 맨몸으로 내려와도 넉넉하게 살 수도 있고, 수십억 원을 싸들고 내려와도 부족해서 헐떡댈 수도 있고 그렇지요.
이렇게 얘기하면 꼭 도사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덧붙이는 건데요, 제일 불쌍한 건 뭐니뭐니해도 저처럼 맨몸으로 내려와서 부족해서 헐떡대며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