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전원생활에 쓴 글]
** 사진 설명 :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을 초청한 ‘송화초등학교 아이들 공부방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에서 송화초등학교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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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귀농자들
유기농산물의 경우, 원활한 유통망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이 직접 나서서 농산물을 유통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강원유기농유통사업단’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00년에 이미 강원도 춘천, 화천, 양구, 홍천 등지에서 유기농업을 하시는 분들이 힘을 합쳐 연합체를 만들고 유기농산물을 유통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는데요, 경영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몇 년 동안을 적자에 허덕여야 했는데, 작년에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하신 우평주님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유승호님이 유통팀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물론 욕도 많이 얻어먹고 있지만) 적자를 벗어나 경영이 정상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정부에서 각종 마을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종류도 엄청나게 많고, 금액도 상당합니다. 제 2의 새마을운동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사업이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을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런 흐름에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이런 사업을 소화해 낼 인적(人的) 역량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전용 댐이 건설되기도 했던, 1급수 청정호수 파로호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산 속 호수마을 동촌리에도 귀농하신 분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박세영님은 마을 이장을 맡아 마을을 농촌관광마을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마을 일이 거의 생활일 만큼 헌신적으로 마을일에 매진하십니다.
떡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누가 칭찬해 주는 일도 아닌데, 하여튼 재미가 나는 모양입니다. 박세영님은 혼자 하기에는 힘이 벅차자, 새로운 일꾼을 구하셨는데요, 이 때 달려온 귀농자 김용전님이 쉰이 넘은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소부부터 사무관리까지 1인 4역, 5역을 하며 분투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을에 자리를 잡고 물러앉으시면서, 또 새로운 젊은 부부가 귀농하여 마을 일을 돕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시골은 아이들 교육환경이 상당히 열악합니다. 20~3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제법 많아서 자연스럽게 또래 집단이 형성되고, 너댓 살만 되면 형들 누나들 쫓아다니면서 온갖 개구진 짓을 하며, 부모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지들끼리 알아서 잘 컸는데요, 지금은 그렇지를 못 합니다.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막자마치기, 나이먹기, 고무줄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오징어, 썰매타기, 공기놀이 등등 그 많고 다양한 놀이, 형․누나한테서 자연스럽게 동생들에게 전수되던 놀이기술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해도 될 만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가 농사일에 매달리다 보면, 학교 갔다 온 어린 아이들은 방치되기 일쑤입니다.
서울 살다가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 열심히 농사짓는 총각한테 시집온 젊은 새댁 김인정님은, 남편을 도와 농사도 짓고 살림도 하고 바로 옆에 사시는 시부모 공양도 하면서, 역시 바로 옆 마을 고성리로 귀농한 젊은 애기 아빠 윤요왕씨 등과 공모하여, 이제까지 인근 동리에서 한 번도 벌인 적이 없는 멋진 잔치판을 벌입니다.
‘송화초등학교 아이들 공부방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를 연 것입니다. 아이들 노래를 만드는 노래패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을 초청해서 한림대 일송아트홀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두 사람 힘만으로 된 건 아니겠지요. 아이가 있는 인근 마을 젊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모여 상의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공연보다는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더 큰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도 많이들 귀농하십니다.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로 귀농하신 한주희 목사님은 직접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생산한 농산물을 친분이 있는 서울 교회에 파는 것인데요, 아직 유기농업이 생소했던 마을에 자기가 직접 율무 농사를 지어 좋은 값에 파는 걸 보여주시고, 다음 해에는 율무를 다른 분이 짓도록 하고, 또 호박고구마를 지어 보이고, 다른 분이 짓도록 하는 식으로 점점 범위를 넓혀서 “사북 생명농업 생산자 모임”이라는 작목반을 만드셨어요.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생판 초짜가 와서 이렇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 신도님들 도움이 절대적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더 재미있는 일은 목사님이 중고등학교 다니는 청년부 애들을 꼬셔서 함께 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입니다. “5년 동안 농사지어서 유럽 여행을 가자”는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2년 정도가 지나면서 아이들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으로 변해 갔고, 농산물 판 돈을 모아 약속대로 15일 동안 유럽엘 다녀왔습니다. 강원도 산골 깡촌 애들이 유럽여행을 다녀왔으니 시끌벅적할 만도 한데, 아이들은 여행에 대해 입도 뻥끗 안 한답니다. 좋은 추억으로, 속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추측할 따름입니다.
여기 소개한 몇 가지 사례는 제 주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크고 작은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계실 것입니다. 물론, 귀농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로든 마을 속에서 자기 몫의 일을 찾아내고, 실행함으로써 시골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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