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라!
유럽농업농촌 주마간산 인상기 2018.5.10.~5.20
백승우 (강원도 화천)
연수를 다녀온 한 곳 한 곳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소감 등은 함께 한 훌륭한 우리 동기들이 잘 정리해줄 것이므로 저는 연수하면서 느꼈던 전체적인 인상과 생각 등을 간략히 정리하는 것으로 연수보고서를 대신할까 합니다. 이번 연수가 저한테는 꽤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생각은 이리저리 꼬이고 엉켜서 쉽게 잘 정리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소감문 혹은 인상기 역시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뛰고 갈팡질팡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고 싶은 생각들을 그저 좀 모아서 적어보았습니다.
왜 이들의 문명 발달은 그렇게 늦었을까?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지표를 찍어야 했던 이유로 영국의 탐험대가 태평양을 향해 출발했던 1768년 제임스 쿡의 탐험이 있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제도와 서유럽 전반은 지중해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에 지나지 않았다. 근대 이전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제국이었던 로마 제국도 대부분의 부를 북아프리카, 발칸, 중동 지방에서 얻었다. 로마에게 서유럽은 초라하고 황량한 서부에 지나지 않았고, 광물과 노예를 제외하면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 북유럽은 워낙 황량하고 미개해서 심지어 정복할 가치조차 없었다. 유럽이 중요한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온실이 된 것은 15세기 말에야 생긴 일이었다. (중략) 하지만 심지어 그때도 유럽은 아시아 강대국들의 상대가 되지 못 했다. (중략) 근대 초기는 지중해의 오토만 제국, 페르시아의 사파이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과 청 왕조의 황금시대였다. (중략) 1775년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만으로도 세계 총생산의 3분의 2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유럽은 경제적 난쟁이였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395~396쪽, 2015.
다소 긴 인용으로 보고서를 시작했습니다. 인류의 지적인 작업이 대중을 위한 아주 구체적인 인류사를 써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비교적 최근에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준 저작으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이 저작에 용기를 얻어 펴냈다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들 수 있습니다.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이 시차를 두고 차등적으로 발전한 이유를 지리적인 이유, 즉 땅과 기후에서 찾습니다. 인류는 농사를 지으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여기에 기반 해서 언어, 정치, 문화 등등을 발전시켰는데, 문제는 왜 어떤 곳은 먼저 문명이 발전하고 왜 어떤 곳은 나중에야 문명을 발전시켰으며, 왜 어떤 곳은 정복당하고, 왜 어떤 곳은 정복에 나섰는가 하는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가장 먼저 농경을 발전시킬 수 있던 이유를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경작할 수 있는 야생 종자가 그 지역에 가장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합니다. 가축화된 야생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재수 좋게도 그 지역에는 데려다가 사육하기 좋은 야생 동물 종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간 종이 열등하거나 우등해서가 아니고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독일에서 공항에 내려 자동차에 타고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그 드넓은 땅은 역시나 또 한 번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얘네들 땅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구나!” 제가 유럽 땅을 직접 본 건 2년 전, 프랑스 몇 곳을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거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평선,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땅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연중 고르게 내리는 비, 겨울에도 그다지 혹독하게 춥지 않은 온화한 기후, 알프스가 머금었다가 연중 고르게 흘려 보내주는 강물 등을 생각하면 농사지어먹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네들의 인구는 예나 지금이나 땅 넓이에 비하면,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비하면 희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물류의 이동이 아주 짧은 시간에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기 이전 시대에 인구의 많고 적음은 농업 생산력을 가늠하는 직접적인 지표입니다. 먹을 게 풍부하면 개체수가 늘어나고 먹을 게 부족하면 개체수가 줄어들고, 먹을 게 없어지면 이동하거나 멸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해 전 정년퇴직하신 경상대학교 장상환 교수님이 궁금증을 풀어주셨습니다. 주식으로 삼은 작물의 차이라고요. 벼농사와 밀농사의 차이. 논과 밭의 차이. 밀은 지력을 감퇴시키기 때문에 한 번 농사를 지으면 몇 해 땅을 써먹을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해서 벼는 매년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게다가 2모작이든 3모작이든 기후가 허락하는 한에서 계속 지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동아시아의 농사를 보고 놀라자빠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놀라움을 표현한 단어가 퍼머넌트 어그리컬쳐, 퍼머컬쳐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논은 뻘이고 지구에 최초의 생명을 잉태해낸 뻘이 가진 생명력과 자정능력은 굳이 상술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밀에 비해서 벼가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리합니다. 같은 면적의 땅으로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형질의 볍씨가 발견된 곳은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입니다. 일명 “소로리 볍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서해바다가 수면이 상승하면서 동아시아의 엄청난 농업 문명의 유산들이 바다에 몽땅 잠겨버렸을 것이라고 추론하기도 합니다.)
18세기에 시작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연이은 산업화로 동서양의 무게 추는 서양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산업문명은 지구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급격한 개체수의 증가, 자연환경 파괴. 그에 따른 인간성 상실과 공동체 붕괴. 지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병원균(인간)이 온몸에 무서운 속도로 퍼져서 온몸을 갉아먹으니 열이 나고(지구온난화) 기침(기후변화로 인한 각종 이상 현상과 자연재해)을 해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업문명의 발달을 발전이나 발달이 아니고 퇴보 내지는 위기로 간주했을 때, 그럼 대안이 무엇인지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대안이란 것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게 아니고 인류가 지나온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뭐냐? 이거죠. 농업밖에 없습니다. 농업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
우리나라 일세대 환경운동가들이 부닥친 문제가 이런 부분이었습니다. 부도덕한 기업과 부패한 정부의 합작으로 강에 오염물질을 거르지 않고 내보내서 강물이 오염되고 산을 까뭉개는 걸 온몸을 던져서 막아낸다 한들,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며 언제쯤 돼야 안 막아도 되는 시절이 올 것인가? 답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생활 방식을 바꾸고 문명의 전환을 이루어내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싸움인 것이죠. 그래서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녹색당”은 농업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돌아갈 데가 농업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독일 녹색당이 농업에 대해서 적대적이란 말을 들었을 때 꽤 놀랐습니다. 농업이 아니라면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대안이 있는가? 궁금했습니다.
통계를 보면 2016년 양곡연도를 기준으로 한국이 소비하는 곡물 양은 쌀이 422만 톤 밀이 412만 톤 옥수수가 973만 톤입니다. 이 중에서 밀은 사료용으로 197만 톤, 옥수수는 764만 톤 씁니다. 소비량만 본다면 옥수수(=고기)가 주식이라고 해야 할 지경입니다. 쌀 소비량이 줄어든 건 고기나 밀을 먹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밀이나 옥수수의 수입이 줄어들면 단박에 쌀은 부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소비가 과연 지속가능한 것일까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이런 걱정을 하는 건 터무니없는 기우일까요? 올바로 근심하는 마음일까요? 궁금합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아주 오래오래 살아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2. 이들의 농사는 식량 생산을 위한 것인가? 자연 관리를 위한 것인가?
제가 살고 있는 곳은 한반도의 정중앙 부근, 강원도 산간 오지 마을입니다. 땅은 거의 모두 산이거나 강(약 93% 정도)이고 사람이 농사지어 먹을 땅은 아주 조금입니다.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어르신들은 머지않아 다 돌아가실 테고, 젊은이는 없어서 이대로 간다면 20년을 보장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85가구 정도가 사는 우리 마을에 20대, 30대가 한 가구도 없고 40대는 1가구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시골 풍경이 다 거기서 거기일 것입니다.
한국 농업 농촌 농민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인” (“개인적인” 게 아니고) 상황과 조건을 나타내는 객관적인 지표는 좋아지는 게 하나도 없고 점점 암울해지고만 있는데, 한국 정부는 농촌을 지금 상태로 만들어 온 정책을 바꾸거나 수정하려하지 않고 더 가속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해보자면 규모화, 규격화, 고품질, 고소득 같은 것들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단순히 정부의 문제거나 정부의 의지 때문이 아니고 우리나라 국민(혹은 시민)들이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동의한 방향이기 때문에 이처럼 흘러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흐름이 부당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사회 모델, 대안적인 농업 모델을 제시하고 사회적인 동의를 얻어야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시작한 유럽의 농촌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습니다.
이번에 돌아본 독일어권 국가들(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농촌은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농토에 비해 갑작스럽게 어마어마하게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던 우리 농촌과 달리, 이 나라들의 농민은, 인구에 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넓은 땅을 관리하는, 말 그대로 국토 관리자로서의 위상을 갖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량을 생산해서 국민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농산물 생산자로서의 위상이나 기능은 부차적이고 하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민이 가지는 한 국가 내에서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인 것인데, 여기에 큰 갈림길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 농업은 1950년 전쟁이 나기 직전에 단행한 농지개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949년에 통과된 법령에 따라 당시 농림부장관이었던 죽산 조봉암선생이 집행했지요. 간략히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방법 : 유상몰수 유상분배 = 3ha 초과 소유 농지를 국가가 매수하여 소작농에게 분배.
○농지 가격 : 해당 농지 수확물 가의 150%
○지가 상환 : 매년 30% 5년 균분 상환
○농지소유상한 : 3ha.
○금지 : 비농민 농지소유 불가.
○성과1 : 전체 농지의 95.5%가 자작농지(1958년 실증조사)가 됨.
○성과2 : 농업생산성 3배 증가.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상황에서, 농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세계 어느 나라보다 평등한 바탕 위에서 새나라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이룩한 한국의 눈부신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반 중의 기반이 농지개혁이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농지의 소유 상한이 3ha였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띕니다.
굳이 이런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우리와 그들(연수국가)이 서 있는 농업의 기반이 얼마나 다른지를 조금 더 확연히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동안 막연하게나마 “농업 직불제” “농민기본소득제” 등을 위기에 처한 한국농업을 건질 구세주처럼 생각해왔던 점을 돌아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부끄럽기도하고 그렇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런 제도를 만들어내고 집행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와는 바탕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그 사람들이 찾아낸 그 사람들의 해법이었다는 점을 조금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처한 문제를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땅은 너무너무너무 넓은데 사람은 얼마 없고 식량은 남아돌아서 굳이 많이 생산할 필요도 없는데 아예 없앨 수는 없는 상황에서 그럼 어찌 해야 하는가? 이런 것이었겠죠.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이보다 조금 복잡합니다. 단순화하면 가령 이런 것이죠. 땅덩어리는 좁아 터졌는데, 먹여 살려야할 사람의 숫자는 너무나 많아서, 이 땅을 가지고는 어떤 종자 어떤 비료 어떤 기술로도 다 먹여 살릴 수 없다. 상황은 이렇게 심각한데 값싼 농산물을 마구 사들여 와서 값싼 먹을거리는 남아돈다. 농업과 축산 생산으로 한 해 농민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40조원 정도인데 쓰레기로 버리는 음식물 값을 돈으로 환산하면 20조원 가까이나 된다. 농사를 담당하는 농민들 숫자는 줄어들고 농촌은 소멸 직전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바탕에서 우리의 해법을 찾아내야겠지요. 아직 생각의 실타래가 엉켜 있어서 뭐라 얘기하기가 참 그렇습니다. 더 깊이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3. 이 분들의 헌신에 얼마만큼의 고마움을 표해야 합당할까?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은 정말 기가 막힌 슬로건입니다. 이 슬로건을 화두 삼아서 두고두고 곱씹어 보아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를 넘나들며 시골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신 대산농촌문화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모든 일정을 책임지고 인솔해주신 신수경님과 김용규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농업 현실과 농정에 대해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강의와 통역을 해주신 황석중 박사님과 해박한 지식과 위트 넘치는 이야기로 독일역사와 문화를 소개해 주신 박동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활발한 대화와 토론으로 연수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신 연수 동기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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