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소 귀에 경읽기. 하나. 세종에겐 소희 붓다에겐 아난

아하 2012. 1. 20. 13:48

 

소 귀에 경 읽기


1. 세종에게 소희가 있었듯이 붓다에겐 아난이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앙굿따라니까야>라고 이름붙인 경전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한테 익숙한 이 경전의 한문번역본 이름은 <아함경>입니다.


우리가 ‘소승’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테라밧다’라고 하는데 ‘정통’이란 뜻입니다. ‘대승’은 그들에게 ‘非테라밧다’입니다. 정통은 아니란 얘기지요.


경전은 크게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으로 나뉩니다. 초기경전과 후기경전으로 이해해도 됩니다. 증일아함경이니 무슨 잡아함이니 해서 <아함>이라 이름 붙여진 것들이나 <숫타니파타>니 무슨무슨 <니까야>니 하는 들어보지 못 한 언어로 이름 붙은 것들은 대체로 소승경전에 속하고,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법화경, 능엄경, 열반경 등등 멋진 한자어로 턱턱 알아먹게 붙여진 경들은 대승경전이라 보면 됩니다.


붓다는 스물여덟 살에 출가해서 서른다섯에 깨달아 깨달은 이, 붓다가 되고 여든 한 살에 돌아가십니다. 스물여덟 살 이후로 줄곧 걸뱅이였다는 뜻입니다. 맨발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걷고 또 걷고, 비가 오는 철에는 머물렀다가 날이 좋아지면 하루 한 끼 밥 빌어먹으며 당시의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걷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를 나누고(소통!!)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당연히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뭔가 연구하며 보낸 시간은 한 시간도 없었어요.


소희가 한 번 본 것은 다 기억하듯이, 아난은 한 번 들은 것은 다 기억했습니다. 따스한 인간미 때문에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깨닫지 못 한 아난은 입 속의 혀처럼 사촌형인 늙다리 부처님을 잘 모셨고, 부처님 하신 말씀과 장면을 녹화하듯이 선명히 머리 속에 잘 담았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아라한(깨달은 자) 500명을 모아놓고 아난이 녹음기를 틀었습니다. 부처님 살아 계실 때와 똑 같은 음성, 비슷한 모습(사촌형제이므로), 똑 같은 언어에 사람들이 “부처님이 다시 살아 오셨나” 싶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아난이 한 구절 하고, 500명이 검토해서 맞다고 인정하면 이를 500명이 함께 외우고, 또 한 구절 하고, 또 검토하고 또 외우는 식으로 부처님 말씀이 모아집니다. 복사본 500개가 만들어진 겁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경장, 율장, 론장을 묶어 삼장이라 부르고 삼장을 다 외운 이를 삼장법사라 한다고 하더만요. 요즘도 태국이나 버마에는 삼장법사님이 계시다고 합니다.


판소리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듯이, 붓다의 말씀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기록됩니다. 이렇게 출처(=입)가 분명한 경전이 소승경전입니다. 대승경전은 출처 불명입니다. 승려들이 부처님 삶을 따라 살 생각은 안 하고 책상머리 앞에 앉아서 책이나 보고, 글이나 쓰고, 늙어 죽을 때까지 논쟁이나 하는 걸 보고 아니다 싶어서 바꾸자! 고 일어난 이들이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하는데 이게 대승입니다. 정통의 입장에서 보면 사이비죠.


소승경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우리에게까지 온 붓다의 목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