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소 귀에 경 읽기, 세엣. 니가 무신 죄가 있다고? 니 죄 읎따!

아하 2012. 1. 28. 10:57

3. 니가 무신 죄가 있다고? 니 죄 읎따!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짧은 대화 속에 드러나는 저 번쩍하고 황홀하게 빛나는 순간은 후대에도 다시 또 다시 또또 다시 또또또 다시 반복해서 재현됩니다. 사례 하나만 볼까요?

여러 정치적인 이유와 기타 등등의 이유로 갠지즈강가에서 융성하던 붓다의 가르침은 쇠퇴하고 변방에서 융성합니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본바닥에서 이미 거덜난 성리학을 똥고집 부리며 옹위했듯이 남방으로 전해진 붓다의 가르침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는 한편, 동방으로 건너간 달마는 또다시 책읽기에 몰두해 있던 듕국 교학자들의 뒤통수를 침묵으로 한 방 갈깁니다. 그리고 독살 됐다고 하던가...달랑 하나 남긴 제자도 독살되고...비극의 연속입니다.

셋째 제자가 승찬입니다. 이 양반이 공무원 생활하다가 한센병에 걸려서 숨어살게 됩니다. 애초 환자였다면 회한도 덜할 것인데, 어쩌다가 다 늙어서 이 꼴인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저주를 받았단 말인가, 몸은 무너져가고 마음도 병들어 갑니다. 그렇게 낙담과 비탄 속에 살다가 도인(혜가)이 났단 소문을 듣고 어둠을 더듬어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그를 찾아 갑니다. 혹시나 싶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자기처럼 자객의 눈을 피해 역시 숨어 사는 도인을 찾아간 겁니다. 병의 원인이 죄나 벌이나 저주라 생각하고 있었지요.

“왜 왔니?”

“도사님 저의 이 무거운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그래? 알았어.”

오른 손 손바닥을 쫙 펴 내밀며

“네 무거운 죄를 여기 내놔 봐! 내가 사하여 주마.”

.......

......

......

침묵 속에 살피던 승찬이 말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내 이미 너의 죄를 다 사하여 주었느니라아아아아아~.”

이 때 또 번쩍하고 스파크가 튑니다. 그냥 깨달아버리는 겁니다.

인생의 모든 고뇌가 응축되고 덩어리져서 하나로 단단하게 모여 있는 그 뭐라 해야 하나..하여튼 그 어떤 껄쩍지근한 그것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리는 거지요. 온 인생을 꽁꽁 묶고 있던 오랏줄이 확 풀려 날아가고 인생을 짓누르던 무거운 바윗덩어리가 산산이 부서집니다. 통쾌하지 않습니까?

보세요, 이 양반이 무슨 병이 나았다거나 무너진 몸뚱이가 복원됐다거나 이런 게 아니고, 그냥 모든 것이 하나도 안 바뀌고 있는 그대로인데, 조금 전에 살던 그 세계하고, 이제 새로 살게 된 이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사로잡힌 세계와 사로잡힘에서 벗어난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지도무난이니 유혐간택이라 단막증애하면 통연명백하리라]

“도라는 것이 있잖여, 뭐 별거 아녀. 그저 이걸로 허까, 저걸로 허까, 허는 그 갈등만 안 허믄 되야. 그리고 뭐냐면 호불호만 없으믄 된다~ 이 말여.”로 시작하는 <신심명>이 이 양반 손에서 태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