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허병섭 목사님을 기리며

아하 2012. 3. 28. 23:53

나의 작별인사는 이것이다.

허목사님, 안녕히 가세요.

땅에서 이루신 것처럼 하늘에서도 이루세요.

0.

허병섭 목사님이 오랜 투병 끝에 별세하셨다.

2012년 3월 27일. 나는 장례식에 가지 못 했다.

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1.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예수님

예수님은 불과 서른 셋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예수님의 짧은 생과 말씀은 "신약성서"라는 책에 잘 기록되어 있다.

말귀 못 알아먹는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수많은 비유를 들어 천국을 설명하셨다.

그 중 가장 빛나는 대목이 나는, 이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마태복음서 25장 31절 ~ 48절 : 최후의 심판] , 대한성서공회 표준새번역.
중에서 일부 발췌.

(예수 배석시키고, 인간들을 두 패로 쫙 갈라 놓은 다음, 오른쪽 천당, 왼쪽 지옥 포고를 한 다음에)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개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urunchozang/LfQz/4?docid=1Gafu|LfQz|4|20090125210804&srchid=IIMxyq8V10#A12169110497C5619376431

 

3.

허목사님의 삶을 기리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282227105&code=100402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525586.html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78

 

4.

허목사님의 삶은 원효스님과 닮았다.

일러 "화작(化作)이라 한다.

땅꾼을 만나면 땅꾼이 되고, 도적을 만나면 도적이 되고, 농사꾼을 만나면 농사꾼이 되어, 그저 어울려 아무런 가르침 없이 깨치게 한다.

법륜스님은 이런 분을 "걸레 같은"이라고 표현하셨다.

스스로 걸레가 되어 내 몸에 때를 묻혀 세상을 닦는 사람이란 얘기다.

5.

나는 허목사님을 두 번 만났다.

처음은 귀농하려고 순례하는 중이었고, 두번째는 스스로 시골로 온 10주년 기념으로 순례하는 중이었다.

두 번 다 그저 시시껄렁한 내 얘기를 잘 귀담아 들어주셨고, 잘 하라고 당부하셨을 뿐이다.

그 전에 글로 허목사님을 먼저 만났다.

전국귀농운동본부, 계간『귀농통문』4호, 1997년 가을.

■ 생태마을 심포지엄 특집

<특집-좌담>

21세기 새로운 대안으로서 귀농과 생태마을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1997년 9월 4-6일까지 있었던 환경 활동가 워크숍 주제토론방<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귀농과 생태마을>에서 있었던 허병섭 선생의 발제와 토론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이병철: 반갑습니다. 저는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귀농운동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데 간단한 수인사를 하고 시작했으면 합니다. 우선 인사를 나누기 전에 멀리 전북 무주에서 허병섭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환경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허선생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땅과 자연 속에서 새로운 삶을 구현하기 위해서 귀농하신 분입니다.

허병섭 : 저는 1997년 6월에 귀농을 결심하고 1년 못되도록 되었고, 96년 3월까지 귀농을 위한 컨셉과 준비(유기농 현장 탐방, 몸으로 느끼기, 감동 받기) 학습, 팀구해서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실습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몸으로 훈련하고 단련하는 기간도 있었고, 96년 4월에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정착했습니다. 금년 들어 2년 차 농사를 하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이런 발제를 하는 것이 자격이 없거나 할 말이 없고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허튼 말을 하게 되고 어설프고 풋내가 날 겁니다.

이야기 내용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빈민 운동, 선교를 해 올 때부터 지금까지 제 나름의 달란트랄까 삶의 철학이 있었는데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귀농에 대한 산을 멀리서 바라보듯이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산에 들어갈 때는 작은 부분 즉 오솔길이라든지 이런 것에 몰두하게 됩니다. 빈민 선교도 그랬습니다. 정상에 올라갈 때는 작은 오솔길을 선택해서 정상에 가는데 제가 선택한 오솔길이 정확한 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길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고생을 더하느냐 덜하느냐가 달려 있는데, 그 길을 올라가면 다시 산 전체를 보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은 나름의 오솔길을 찾아서 꿈을 꾸십시오. 저는 이 길로 가니 이렇더라 하는 얘기를 하겠습니다.
잘 모른다 가 아니라 나는 이런 길을 가고 있다는 얘기를 서로 나눕시다.

저는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제가 95년 12월경에 나의 귀농 이정표의 꼭지점이 뭐냐 생각하면서 '밀알 노동'이라는 말로 정리를 했습니다. 귀농해서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을 제가 결정했습니다. 제 개인의 목표는 아주 단순하고 한가지 일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 환경 운동을 하는데 수십 가지의 아이템이 있어 이것이 조합되어야 하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습디다. 이런 것을 다 머리에 담아서는 도저히 안되고 제한된 역량에 따라서 자기의 처소에서 심도 있게 열정과 헌신을 바쳐서 일을 해 나갈 때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전체를 보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일들이 모여져서 역사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생태 마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밀알 노동을 해보자고 하고 귀농을 했는데 도시에서 운동하던 관성이 남아서 조금 욕심을 부린 것 같습니다. 조금 지나다 보니까 폐교된 학교가 눈에 띄어서 이것 가지고 농민들을 교육하고 아이들을 교육하자고 하고, 이런 과정을 소식지로 내고, 그것을 귀농소식지에서 받아서 실으면서 허병섭이가 생태 마을 조성한다고 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막 찾아오니 귀농운동본부의 막강한 파워가 실감됩니다.

지금 약 4세대가 함께 있고, 곧 들어올 세대가 하나, 또 줄서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태 마을, 귀농운동이 기존의 농민들에게 기대할 수 없고 각성된 도시의 지식인들이 터를 잡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펼쳐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소명이라고 봅니다. 여러 방법으로 농촌을 공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에는 준비하신 원고를 읽으셨다.)

『본인은 생태 마을에 대한 생각을 자의적으로 해본 일이 없다. 우리는 '밀알터'라는 말을 썼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소식지를 읽은 귀농운동본부가 생태 마을로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이 해석된 생태 마을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밀알터를 찾게 되었다. 우리는 생태 마을에 포위된 것이다. 그래서 생태 마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밀알터를 남의 해석에 맡겨 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석하고 우리의 꿈을 세워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판과 충고를 듣고 도움을 얻자는 것이다.

'생태 마을은 계획하고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실시하므로 조성되는 것인가?' 이러한 나의 질문은 [생태 마을 만들기 그 현황과 과제]라는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그 자료를 접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두 종류의 언어군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물, 공기, 쓰레기, 생태 건축 따위로 대표되는 환경론적 언어군이고 귀농, 유기농, 흙살림, 생태 학교 따위로 대표되는 생명론적인 언어군이 있다. 전자는 오염되지 않는 환경과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인간과 자연이 생명적 유기체라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과 생명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자연 속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서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간다. 따라서 생명이란 환경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생명체는 무에서 환경을 창출할 수 없다. 생명체는 주어진 어떤 조건(자연)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이를 정리하면 생명체가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생명체와 환경의 관계는 이처럼 능동적인 측면과 수동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에 근거한다면 첫째 생명체가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노동론적 요소와 둘째 생명체가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은 생명 없는 물질에서 영양을 만들어 이를 먹고 생명을 유지한다. 식물은 무기물과 햇빛, 공기를 합성한다. 동물은 식물을 먹고 살아간다. 동물의 환경은 햇빛과 공기, 물과 흙 같은 무기물과 다른 생명체(식물과 동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것이다.

인간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따위의 능력이 고도로 발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과 생명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높아지는데, 이러한 사실은 인간이 자연을 초월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며, 동시에 인간도 자연의 일부 혹은 자연 내재적인 존재라는 말이 된다.

이상의 사실을 확인하고 확인된 사실의 의미를 묻는 학문이 생태학이라고 한다면 본인이 처음에 제기한 '생태 마을은 계획하고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실시하므로 조성되는가?' 라는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시대에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귀농과 생태 마을은 이러한 철학적인 입장에서 출발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귀농을 농사라는 직업에 회귀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위에서 말한 노동론적 요소로 귀농한 것이다. 이는 본인이 도시에서 민중과 함께 노동했던 노동의 가치와 정신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 노동을 '밀알노동'이라 규정하고 이 노동의 현장을 농촌, 자연, 생태계에서 실현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이런 가치인식과 철학의 실천이 생태 마을 조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태계는 신비한 밀알노동의 결집체라는 것이 본인의 확신이다. 우선 한 알의 씨앗이 땅속에서 수분에 의해 싹이 트고 주변의 미생물들과 어울리면서(먹고, 먹히면서) 움이 돋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치솟아 올리는 것이다. 뿌리털이 뻗어 나가고 생장하는 동안 뿌리에 붙어 있는 미생물들과 물고 물리는 접전도 있을 것이고 서로 빨아들이고 빨려 드는 치열함도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치열한 생명의 현장에서 먹을 것을 취하는 미물들(지렁이나 땅강아지), 그리고 이 미물들을 잡아먹는 소동물들(두더지와 개구리 따위), 또 이들을 먹는 뱀의 활동이 모두 밀알노동의 현장인 것이다. 그 결과 땅은 기름지게 되고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건강한 작물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비록 작물에게 해를 입히는 벌레(진딧물)가 있을지라도 천적(무당벌레)이 있어서 서로 견제하고 다시 또 다른 곤충이 무당벌레를 견제하면서 먹이사슬의 구조를 이루어 자연은 평정을 찾고 질서를 유지하며 스스로 생명을 산출하는 자기 조직력을 가지는 것이다. 땅 속에서 뿐만 아니라 땅 위에서, 그리고 대기와 우주 공간에서도 이런 조화를 이루는 힘이 있는 것이다. 이 무한한 밀알들의 노동으로 어우러진 신비의 결과가 자연과 인간, 우주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생명)를 얻을 수 없다.' 는 성서의 말씀과, '먹이사슬', '생물종의 자기 해방', '타자를 위한 존재', '자기희생' 따위가 밀알노동과 연관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밀알노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형식을 생명순환농업 혹은 자연농법으로 잡은 것에 불과하다. 또 어떤 이는 생태 건축, 대안 학교 따위를 밀알노동으로, 혹은 자연친화적인 에너지 개발을 밀알노동으로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환경문제와 생태계 문제가 논의되는 마당에서 본인은 중복과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입장에 서서 주장하는 바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제 나름의 일가견이 있고 소신과 확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방법 이외의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방향을 잡고 다양한 접근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위에서 제기한 문제와 함께 밀알노동의 관점에서 귀농, 유기농업, 생태 마을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을 가지게 된 개인사적인 고백과 확신도 있지만 철학적 안내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런 자리에서 모두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밀알노동과 귀농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태 마을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본인 개인의 생각이며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위한 자료이며, 우리가 함께 자연 농업을 하면서 마을을 이루어 살려는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여 보완해 나갈 것이다.

첫째, 위에서 말한 밀알노동의 노동론적, 존재론적 실천에 몰입하는 실천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태계의 자리에 젖어 들고, 자연 생태계의 '惚恍(홀황)'에 빠져 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빠졌을 때 생태계를 體化(체화)하게 될 것이고 그 후에 이웃이 보일 것이며 마을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유기농 노동이든 자연농 노동이든 그 결과를 돈이나 자본으로 계산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의 결과를 의미와 가치 및 철학과 신학을 교류하는 보람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결과를 인간을 위한 건강한 먹거리를 목적으로 한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뜻이다.

둘째, 이 밀알노동의 의미와 가치 따위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웃하여 살 수 있다면 생태 마을을 조성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밀알노동은 자연계의 생명을 산출하는 과정이다. 자연에는 땅 위의 식물과 동물이 있고 땅 밑의 미생물과 박테리아 그리고 미물들도 있다. 밀알노동은 이 자연계의 생명들이 어우러지는 노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밀알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써 자연과 함께 자연의 생명을 산출하는 가치와 의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셋째, 자연의 생명 산출의 원리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다. 한울로써 한울을 먹인다는 뜻이지만 이를 쉽게 말하면 먹이사슬의 신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원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자연의 먹이사슬 구조에서 보이는 특성은 먹음과 먹힘의 연속이다. 끊임없는 먹음과 먹힘을 통해서 자연의 생명력이 날로 풍성해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생태계의 신비인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에 경탄하며, 기쁨을 누리고 가장 큰 행복으로 체험될 것이다. 우리의 생태 마을 조성은 이 체험에서 출발할 것이다.

넷째, 따라서 우리의 농업은 자연농업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농사는 자연을 먹고 자연에게 먹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자연에게 먹힌다는 것은 자연에게 돌려줄 것을 아낌없이 돌려준다는 말이면서 자연의 생태계와 함께 삶을 나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는 우리의 인권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연권을 회복하는 노동을 중심에 둔다는 말이 될 것이다.

다섯째, 우리는 이러한 삶의 관점에서 지역 사회를 바라볼 것이고 지역의 경제, 지역의 문화, 지역의 정치, 지역의 역사를 바라볼 것이다. 나아가 민족과 세계의 모든 현상을 바라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일차적으로 자연이 지닌 생태계의 신비를 체험하게 도울 것이고, 그 다음에 자아와 지역사회와 자아와 민족,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보도록 도울 것이다. 이 과정을 교과목으로 하는 이른바 대안 교육의 내용으로 삼을 것이다. 자연의 권리를 신장하고 생태계를 심화시키는 것만이 세계를 구원하고 해방하는 길임을 교육의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가족이 생태 마을을 미래지향적으로 조성하는 지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섯째, 우리는 이러한 삶에 어울리는 문화를 향유할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자연권과 생태계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형성된 문화, 그것이 종교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그림이든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문화를 창출해 볼 것이다. 우리의 이런 문화적 행동이 현실적 이해나 인식에서 보면 다분히 종교적인 것 혹은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종교화된 종교에 젖어들 것이다.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간계(간사)스러운 종교가 아니라 종교적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순수한 종교, 즉 '먹히는 생명과 먹는 생명 사이의 자기 관계(自己 關係)'를 신적(神的)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래서 동학이 그러하듯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비생태학적 원한을 풀고 생태학의 종교적 형식을 '한울로써 한울을 변화시키는(以天化天)'제사, 몸의 산 제사(바울)의 실천을 감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주의와도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우리가 살려고 하는 집은 자연의 생명 산출력을 방해하거나 억제하지 않는 소재를 선택할 것이다. 그 땅에서 나온 나무와 흙을 소재로 할 것이다. 난방도 자연적이며 오수나 폐수도 자연정화 체계를 만들 것이다. 에너지도 생태친화적인 것을 선택할 것이다.

여덟째, 우리 생활권 주변(농토,계곡,산 따위)을 생태적으로 조화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맡길 것이다. 이를테면 야생 동물까지도 유인하여 살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아홉째, 우리는 선사시대, 고조선 시대,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의 생활 환경도 복원해 볼 생각이다. 이는 우리의 경제력과 땅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런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열째, 우리는 가능하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주민과 함께 할 것이다. 바라기는 주민들이 앞장서서 이 일을 하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밀알터 가족 - 허병섭, 이정진: 0657-323-2458 / 권혁천, 정영순: 0655-32-0925 / 최승일, 박미정: 0657-323-0816 / 박창호, 박경미: 0655-323-8948』

이병철 : 새로운 문명 선언서를 본듯한 느낌입니다. 허선생님이 열 가지 구상과 실현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 중에서 몇 가지만 화두를 삼아 얘기를 하더라도 엄청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권의 문제를 고려한 생태 마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지만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환경 운동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기서 다루기 힘들 것 같고, 귀농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환경 활동가로서 귀농과 생태 마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귀농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생각의 단초를 풀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정아 : 농사를 짓는데 퇴비는 무엇을 하시는 가요?

허병섭 : 농사를 처음 하니까 풀무원에서 하는 유기비료를 작년에는 사서했습니다. 다만 자연의 자생력을 믿되 땅이 너무 척박해 있어서 형식적으로 뿌리고 관찰하고 실험하고 있습니다.

오세권 : 저는 서울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직업이나 따지지 않고 여러분들을 만나는데 대부분 그 분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농촌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언젠가는 자연스러운 귀농의 흐름이 생기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농촌의 생태계조차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농촌의 지하수는 50%이상 오염되어 있고, 쓰레기 처리의 문제, 농기계 방치 문제, 농약 문제, 콘크리트 문화의 수입 등이 있는데, 그것을 구체화해서 준비하면서 귀농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허병섭 : 저는 아직 경험이 미천합니다. 우리를 겨냥하지 마시고 토론을 했으면 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그걸 준비하고 귀농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염되지 않은 깊은 계곡에 들어가서 생태 마을을 만들어야죠. 방법적으로는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오염된 농촌으로 내려오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세권 : 화전민들이 살던 방식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아무리 우리가 가능하면 옛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발길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오염이거든요.

이병철 :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개인의 구체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를 해봅니다. 농촌에 문제가 많지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춥시다.

정성출 : 저는 의지로 귀농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 동네에는 가장 젊은 분이 50대입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다 떠나고 남는 땅들을 다 버리니까 공짜로 농사를 짓는데 그것도 아버님이 나이가 드시다 보니 제가 억지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40마지기 정도 짓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손톱과 손바닥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손톱 밑에 때 낀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이제는 우리 농촌에도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땅도 묵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저희 마을에 2만평 정도의 계곡에 땅이 있는데 상수원보호구역이라서 지게질을 해서 농사를 짓습니다. 이 땅이 모두 묵고 있습니다. 5년 이내에 젊은이들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직은 유기농은 생각도 못하고 있지요. 이것을 유기농법이나 생태 마을로 어떻게 전환하는가는 젊은이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환경운동을 하고 있지만 일이 불러서 환경운동도 그만 둬야 되게 생겼습니다. 젊은 사람이 없다 보니 노인들이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저를 부릅니다. 귀농이 특별한 게 아닙니다.

이병철 : 의도적인 귀농자, 어쩔 수 없이 귀농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호용수 님의 얘기를 들어보지요.

호용수 : 농촌에서 젊은이들을 교육시킨다고 해서 다 도시로 보내다 보니까 젊은이들이 없습니다. 저희 마을도 그렇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그 마을 출신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고 그 사람들이 도시 거주자들 중 귀농 희망자를 연결시켜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무연고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좋은 것이 빈집과 농토를 이용하니까 적은 비용으로 정착하고 마을 분들이 도와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마을 주민으로 완전히 동화가 되지못했습니다 초기에는 농촌 분들과 뭔가를 하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왜 그 분들이 자녀를 도시로 보내는가, 그리고 농촌의 현실을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귀농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아주 쉬운 겁니다. 귀농 하면서 뭘 먹고살까 교육은 어떻게 할까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런 거 생각하면 못해요. 가장 쉬운 것은 일단 연고가 있는 곳을 가는 것이고, 아니면 마음에 드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젊은이들을 반가워하시고 많이 도와주세요. 우리는 교육과 경제를 동시에 어느 정도 해결하면서 들어가는 생태 마을 만들기, 그리고 농촌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모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보는 것입니다.

김정아 : 농촌에 가서 기름진 흙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서도 비료와 농약 때문에 기름진 땅이 없습니다. 시골 가보면 흙의 생명력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땅이 기름지고 좋으면 환경도 자연적으로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민웅기 : 귀농한 사람들 인터뷰하자고 해서 끝나고 생각해 보니까 무엇이 성공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업농으로 높은 수입을 올리는 것이 성공인지, 아니면 뭐 특별한 농법을 개발하는 것이 성공인가 하는 겁니다. 저는 운동을 하면서 많이 저 스스로가 황폐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면적인 가치관은 바꿨는데 여전히 아파트에 살고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삶을 살고, 지방 선거에도 출마하고 나서 낙선하고 돈이 없어지니까 전원 주택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살아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까지 그리던 농가 생활을 약 200평의 부지를 찾아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마을은 한 5가구 정도 사는데 거기서 약 1400만원 정도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땅을 구하고 아파트를 팔고, 집을 개량하고 눈 여겨 두었던 농토도 2000평 정도 구하고, 후쿠오까 마사노부의 책을 읽고서는 감동 받아서 자연농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하다 보니 경험이 없어서 완전히 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한테 욕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논농사는 여러 노하우가 있어서 비교적 자신이 있었는데 밭농사는 통 자신이 없었습니다. 고추 농사를 지면서 짚과 약재 썩힌 것을 깔아 줘서 비교적 수확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작물을 바꿀 때마다 이 풀과의 전쟁에서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비닐 쳐서 씨 뿌리고 농약 치고, 제초제 뿌리고 이런 식의 농사를 짓는 곳이 농촌인가 하는 회의가 들어서 유기농을 고집하는데 힘이 많이 들더군요. 힘은 들었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참 좋았습니다. 가족 전체가 동의하고 가치관을 바꾸어서 농촌 생활을 체화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병철 : 전문적으로 농사기술을 축적하신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기술적인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왜 귀농 하는가, 그리고 귀농을 하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얘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귀농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개별적으로 귀농을 하기는 힘들어서 귀농자들간의 정보를 나누고, 또 여러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나의 삶과 귀농에 대한 고민을 한마디씩 돌아가면서 얘기하고 정리했으면 합니다.

정성출 :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 동네에서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있는데 농사를 짓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좋은 환경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집만 번드르르하게 지어서 살고 놀러 다니고 마을일에 협조도 하지 않습니다. 폐가가 생기게 되면 이 폐가를 어떻게 귀농 하실 분들에게 제공하고 연결하는 일을 귀농운동본부에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병철 : 저희들은 심부름이나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오세권 : 귀농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아이들의 문제입니다. 제 경우를 생각해도 집사람과 견해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남자분들보다는 여자분들이 더 고민을 많이 하실 텐 데요.

김근희 : 전화 상담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귀농의 개별문제 환경, 경제, 교육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오히려 아이들 때문에 귀농 해야지요.

이병철 : 밀알터 가족 중에 권혁천, 정영순씨의 경우에는 아이를 시골에 데려가니까 훨씬 아이가 건강하고 밝아졌다는 얘기를 합디다. 또 귀농운동의 중심 축이 대안 교육입니다. 마을 단위나 인근 단위의 작은 학교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분명한 것은 앞으로 4-5년이 지나면 지금의 교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겁니다. 무엇이 올바른 교육인가 하는 것이지요.

김근희 : 한 실례로 강화에서 교사들이 마을 형태로 지역의 학교를 완전히 점령해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몇 십리씩 걸어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교육적 경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민웅기 : 저는 아이들을 좀 떨어져 있는 학교에 버스 태워서 보내는데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골학교가 도시학교보다 나아요. 교사들도 훨씬 순박하고 촌지도 바라지 않고.

이경희 : 튼튼한 귀농이 생태적인 사고만으로 가능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이들이 농촌에 들어가서 유기농 하면서 열심히 산다고 해서 농촌 현실이 전반적으로 바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농촌 사회의 문제를 같이 풀어 나가기 위해서 농민운동과 결합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병철 : 우리는 가치를 그렇게 두고 있는 것뿐이고 도시를 벗어났다고 해서 완전히 자연친화적인 삶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당장 전적인 유기농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농민운동과의 결합의 문제도 우선 같이 사는 것이 전제가 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훈련하는 삶이 처음 몇 년동안 필요하고, 그러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쁨과 소중함을 찾는 것, 그런 훈련이 농촌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운동을 대상화하거나 객체화해서 사회나 지역을 위해서 라고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요즘에는 많이 듭니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임혜진 : 저는 젊은 사람이고, 농촌의 정서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학생 때 조금 접하면서 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활하는 공간은 도시인데 농촌으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 귀농을 꺼리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병철 :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가능성이 있습니다. 멋모르고 덤벼드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르게 농업을 바라보게 되거든요. 일본의 경우에도 새롭게 농촌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일본 농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러리라고 봅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이렇게 저렇게 시행착오도 해보고, 그게 좀 어려우면 좀 여러 명이 도와서 하기도 하구. 이게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바꾸어 보는 것이죠. 제가 여성분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여성이 결단하면 세상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진경아 : 저는 집이 천안인데 시골이고 농사를 짓습니다. 30마지기 정도 농사를 짓고 젖소를 키우는데 학교가 멀어서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그게 좋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까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빚에 쪼들리고 하는 걸 보니 농사는 정말 지을 것이 못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부모님들도 대학 교육까지 시킨 아이들이 농사를 짓기를 절대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환경운동을 하면서 삶이 구체적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구호에만 그치는 일이라고 하는 생각과, 어려움에 대한 걱정 사이에서 자아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도 갈 등을 많이 느끼면서 들어왔는데, 결국은 내가 그렇게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변하자고 얘기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병섭 : 생명의 시대를 맞을 새로운 대안으로서 귀농과 생태마을이라는 주제인데, 오고 있는 생명의 시대에 대한 열망과 기대라는 공동의 생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안이라는 것이 모든 면에 대한 새로운 것, 기존의 제도나 체제, 문화, 교육에 끼어서 부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전적인 새로운 문명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귀농이라는 것이 모든 기존의 가치에 대한 대안 즉 전혀 180도 새로운 시각이라는 대전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대화 내용의 축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이병철 :이 대안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 중에 뒷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저희들이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구체적인 대안이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모색 중의 하나로 귀농을 살펴보았습니다.

박창재 : 마치 귀농교 교주님의 얘기를 듣는 듯합니다(웃음).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우는 도시를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도시의 생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싫증난 사람들이 도피하는 의미로써의 귀농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가 아닌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치관의 전환을 이루어서 귀농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것은 제 주위에도 귀농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귀농운동 자체가 지역들을 중심으로 끈끈하게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전망이 있는 운동이라고 봅니다.

민웅기 : 저는 지속가능한 도시라는 말에 별로 현혹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도시문명은 인정하되 지금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유지해 보자는 시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의제21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조차도 개발논리를 전혀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방법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인 가치의 전환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유현주 : UR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귀농을 통해서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인 문제를 완전히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문감이 듭니다.

이병철 : 정리를 하겠습니다. 지금의 농촌농업문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지금의 환경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농업의 중요성, 그리고 직접 생태적인 삶을 사는 것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환경운동가들이 이 생태문제와 귀농의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 과제로써 각 단체가 함께 참여하고 모임에도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