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농촌총각은 왜 장가가기 힘들까요?

아하 2012. 4. 30. 12:17

지난 2003년에 작성한 글을 다시 꺼내 놓습니다.

저는 지난 9년간 이 글에서 상당히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소위 "정착의 길"을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나름, 잘 정착한 요즘, 상당히 공허합니다.

새로 길찾고 있습니다.

10년 전 그때의 문제의식으로 그대로 돌아가게 되네요.

제자리 걸음 혹은 뒷걸음질 치기...ㅋㅎㅎㅎㅎㅎ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 역사상 최초로 발생한

도시에 대한 농촌의 패배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

진화에 실패해 사멸해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농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산 것과 죽은 것, 자기복제는 생명의 핵심입니다.

개체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농촌은 이제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숨만 붙어 있는 거지요.

그런데, 살 생각을 안 하는 듯보입니다.

안타깝고 답답한 대목입니다.

 

농촌 총각은 왜 장가가기 힘들까요?

[2003년 3월 15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지금하고는 사정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백승우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지저분해서? 그렇습니다. 일이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뭐, 농촌에 처녀가 없으니까 그렇지요.

왜 농촌엔 처녀가 없을까요?

농촌·농업 문제의 핵심이자 농촌·농업 문제를 푸는 열쇠는 바로 이 질문,

'농촌 총각은 왜 장가가기 힘든가?'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가가기 힘드니까 당연히 애가 없지요. 애가 없으면, 대가 끊깁니다. 텅 비어버리는 거지요.

농촌은 도시보다 문제가 더 많은 곳입니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렇습니다. 다 아시는 바이겠지만 부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농촌을 들여다보면,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식한테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자식을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연세도 많고, 내핍이 몸에 익은 분들입니다.

자식 다 키워내서 혼자 혹은 부부가 농사지어 약간의 수입으로 그렁저렁 여기저기 아파가면서 사시는 분들입니다.

다른 한 편 도움을 줘야 하는 사람들은,

자식을 도시에 보내고, 생활비랑 학비 대줘야 하고, 거의 도시 사람들에 버금가는 자신들의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농토도 많고, 값비싼 장비도 많고, 많이 생산해서 많이 팔아야 하고, 빚도 많고, 재산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도시로 치면, 중소기업 사장 정도 된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이 분들 사실, 살림 넉넉합니다. 정치력, 대단합니다. 체력, 막강합니다. 농사 짓는 실력, 어마어마합니다.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평생 농사지어도 한 작물을 동일한 조건에서 단 한번도 다시 짓기 어렵다는 것.

한 번 실험에 일년이 걸린 다는 것. 저쪽 실험이 내게 딱 맞을 수 없다는 것만 어설프게 말씀드리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쉽다면 또 한없이 쉬운 거고요. 어려운 것은 '상품(商品)'을 만들어 내려고 할 때 어려워지는 거지요.

신영복 선생님은 강연에서, 우리가 왜 이렇게 정신없이 헉헉거리며 빠르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톱니바퀴에 비유하셨는데, 제 1세계 선진국이 큰 톱니바퀴라면,

제 3세계인 우리나라는 그 커다란 톱니바퀴에 맞물려 있는 작은 톱니바퀴라는 겁니다.

선진국은 천천히 돌아도 되는데,

거기에 맞물린 작은 톱니바퀴는 그 속도 따라가려면 정신없이 돌아야 한다는 거지요(신영복, 나의 대학시절, 녹색평론48호, 1999).

제가 보기에 도시와 농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가 큰 톱니바퀴라면 농촌은 여기에 맞물린 작은 톱니바퀴입니다.

도시에 속도를 맞추려면, 정신없이 핑핑 돌아야 합니다.

한국 농촌은 선진국이라는 큰 톱니바퀴에 매달린 작은 톱니바퀴 한국, 그 끝에 매달린 아주 작은 톱니바퀴인 셈입니다.

 



어디선가 그 고리를 끊지 않으면, 끊임없이 정신없이 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나 돌아야 할까요? 농번기에 말이지요,

새벽에 일어나면, 어제 쌓인 피곤이 채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손발이 뻣뻣해서 일하려면 한 잔 걸쳐야 합니다.

일하다 보면 배가 출출해지는데, 밥상 차려 먹기에 시간이 빠듯합니다.

날이 쨍쨍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합니다.

그러니, 농주 한 잔 걸치고 또 일하는 겁니다. 낮에 해가 쨍쨍해지면 밥보다 잠이 급합니다.

한 숨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서 또 일합니다. 한 잔 해야 몸이 말을 듣습니다. 오후쯤이면 벌써 거나하게 취해 있습니다.

밤늦게 상차(물건을 차에 싣는 일)가 끝나면 한 잔 하고 하루를 마칩니다.

만취상태로 잠듭니다. 다음날 일어나면 또 몸이 말을 안 듣지요. 한 잔 해야 합니다.

이건 아주 잘 알려진 훌륭한 유기농부 한 분이 여행 중에 제게 들려주신 옛날 얘기입니다.

그리고 제가 실제로 지켜본 우리 지역 유기농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꼭 다 이렇지는 않지만, 농번기(보통 4월에서 11월까지)에는 핑핑 돌아가야 합니다.

요즘은 하우스 농사가 번성해서 철이 없이 핑핑 돌아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제가 사는 곳은 너무 추워서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기 때문에, 겨울에는 어쩔 수 없이 못 돌아갑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여기서도 겨울에 핑핑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일당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농촌에서 최고로 농사일에 숙련된 남성 농부 하루 일당이 나이 불문하고 삼만 오천 원 정도입니다. 여성은 이만 칠천 원 정도 합니다.

공공근로 하루 일당이 이만 원인데, 이분들은 일주일에 하루는 쉬고, 쉬는 날에 대해 만근 수당이 지급됩니다.

그러니까 농부들의 하루 일당은 거의 공공근로 수준입니다.

흔히 노가다라고 하는 막노동자 하루 일당은 남성의 경우 칠 만원 정도입니다.

기술자가 십 만원, 오야지(대장)가 십 오만 원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대졸 초짜 사무직 노동자 하루 일당이 얼마나 될까요?

기능직 노동자들의 일당은 얼마나 될까요? 통계치를 봐야 하는데, 글쎄...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특정분야 일꾼의 일당은 그 산업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농업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것이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로 천 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엄청난 생산력은 농업 이외에는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경제지표로서의 생산성은 사회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같은 경제적인 문제가 농촌총각이 장가가기 힘든 핵심 이유는 아니라고 봅니다.

농촌에는 그래도 이와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다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가치로운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물, 상쾌한 바람, 눈 쌓인 산과 들의 눈부신 아름다움, 칠흑 같은 어둠, 밤의 고요,

달빛 받으며 반딧불 날아오르는 논둑을 걷는 밤 산책의 신비로움. 달콤한 낮잠.

그러니까 온전히 삶을 내맡길만한 자연스러움, 다시 말하면 인간이 수십 만 년을 두고 그에 맞추기 위해 진화해온,

진화의 목표로서의 환경인 자연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매혹적인.

그런데, 왜 농촌총각이 이다지도 장가를 가기가 힘든 걸까요? 저는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보다 문화지요. 권위적인 관계의식, 가부장 의식,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재, 거칠고 투박하고 감정표현에 서툴고,

특히 왔다 갔다 하는 대화가 아니라 혼자서 내뱉는 방식의 대화법.

한마디로 관계에 대한 봉건적 의식과 태도, 행동. 이것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여성이 살기에 농촌은 지옥입니다. 그러니 떠날 수밖에 없지요. 아무도 여기 들어올라고 안 하지요.

공동체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건강한 것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조폭 같은 패거리의식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혹은 동패의식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건강한 공동체성이 아니라는 거지요.

개인 개인의 의식과 삶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하는 건강한 연대로서의 공동체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건 젊은 사람이나 나이 많이 드신 어르신들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왜곡되고 훼손돼 있는데다가 더 나쁜 건, 자기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절대 옳다는 확고한 가치 의식이지요.

그리고 이보다 더욱 나쁜 건, 자신들과 다른 의식, 행동방식은 옳지 않으며,

옳지 않은 건 절대 용인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동전선을 이룬 배타성입니다.

귀농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마도 이 두 가지를 크게 넘어서지 않을 겁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문화적인 어려움.

억척스럽게 일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고,

동네 사람들과 잘 섞여 들어가서 마을의 일원으로 탄탄하게 자리잡은 분들이 계십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잘 정착하신 분들, 뿌리내린 귀농인들요.

이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왠지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단 말이지요. 할래야 할 수도 없고요.

왜 그런 걸까요? 제가 게을러서, 힘이 약해서, 물러 터져서, 절박하지 않아서, 애가 없어서, 다른 살 구멍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그렇기도 하겠지요. 인정합니다. 다 인정한 바탕 위에서 좀 더 말해보고 싶습니다.

뿌리내리는 순간 부패할 것 같은 두려움이 늘 제게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말이지요. 정말 간절히 정착하고 싶지만 도저히 정착할 수 없는 유랑민 같은 신세입니다.

제가 얼마나 간절히 한 곳에 정착해서 살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증언해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실, 이 정착에 대한 욕망 자체가 부패한 이념 혹은 의식 즉, 이데올로기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지금 당장 여기서, 온전한 삶입니다.

내가 맺고 싶은 관계는 지금 당장 여기서, 온전한 관계입니다.

옳지 않다면, 내가 바뀔 수 있고, 옳지 않다면, 네가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서로 가진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채우는 충만한 삶.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저는 2001년에 깻잎을 따서 팔았습니다.

4월에 씨앗을 뿌려서 장마가 끝날 때까지, 그러니까 8월 하순, 혹은 9월 초순까지 깻잎을 땄습니다.

깻잎은 태양의 아들입니다.

다른 채소도 대충 다 그렇습니다만, 고추와 깻잎은 특히 태양의 아들들입니다. 여름에 먹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깻잎을 따는 일은 세상에 더 없이 행복한 일이기도 하고, 상품경제에 예속된 세상에 둘도 없는 소외된 노동이기도 합니다.

이른 새벽 밭에 나가 예쁘게 잘 자란 깻잎을 따서 맑은 물에 깨끗이 씻어서 밥상에 올리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 그 자체입니다. 반면,

욕 들어먹지 않아야 하니까 좋은 놈만 골라서 아주 재빠르게 서른 장을 일일이 세어가면서 따서, 놓고, 또 따고,

해 떠올라서 따면 바로 시드니까 더 딸 수 없을 때까지 부지런히 따서,

서른 장씩 서른 장씩 조그만 비닐 봉지에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재빨리 넣어서, 봉합기로 봉합해서,

시들지 않게 잘 보관하고, 해질 무렵 다시 밭에 나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다 모아서, 저녁에 물류센터로 가지고 가서 차에 실어 보내는 일은, 지긋지긋한 일입니다.

그래서 한 봉에 생산자가격 450원.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이 일에 매달린 미숙련 농부의 일당은 300봉을 한 번도 넘지 못합니다.

이 와중에 비가 오기도 하고, 주문이 없어서 훌쩍 커버린 부채 만한 깻잎을 하릴없이 따서 버려야 하고,

이제 좀 딸 만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깻잎에 병이 오고,

깻잎이 너무 크다, 너무 작다, 질기다, 이소리저소리 들어야 하고,

주문이 많은 날은 꼭 깻잎이 모자라고, 목 빼고 주문 기다릴 때는 주문이 없고,

무수하게 달라드는 모기에 헌혈해야 하고, 하여튼 좀 지랄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요, 깻잎은 비교적 쉬운 농사고, 수익이 큰 고수익 품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초짜들한테 권하는 품목입니다.

톱니바퀴, 맨 끝에 맞물린 가장 작은 톱니바퀴에 대롱대롱 매달려 핑핑 돌아가는 농업 노동자로 사느냐,

아니면 이것 탁 뿌리치고, 이 사슬을 딱 끊어버리고 즐겁고 행복한 농부로 사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지요.

이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얼마만큼 소비하면서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내 몸으로 하는 농사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굶어죽기 딱 좋습니다.

그래서 투자를 하지요. 돈을 써야 합니다. 생산 기반을 갖춘다고 말합니다.

돈도 빌리고, 땅도 늘리고, 하우스도 짓고, 농기계도 장만하고, 돈을 주고 사람도 사고, 이렇게 돼 가는 거지요.

이 길 말고는 달리 길이 없어 보입니다. 오직 한 길이지요.

저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깔보거나 모욕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늘 이분들이 부럽고, 이분들을 존경한다는 쪽이 더 적합합니다.

제가 살고 싶어도 잘 살아지지 않는 삶을 사시는 분들이니까요.

저는 지금 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살고 싶어도 잘 살아지지 않나?

투자하지 않고 손쉽게, 큰 위험부담 없이 가는 방법은 임금노동자가 되는 겁니다.

월급쟁이가 돼서 노동력을 파는 것이지요.

월급 받는 만큼만 책임지면 되니까요. 이게 쉬우니까, 여기로 도망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톱니바퀴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렇듯이 '생산'의 방향, '경제'의 방향에서 문제를 풀려는 시도들,

예컨대 농민회나 생활협동조합이나 기타 등등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톱니바퀴에 말려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자연의 시간에 따르는 길이 아니고, 사람의 시간을 따라가는 길은 농업, 농사에 맞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어 나거나 땅이 죽어납니다. 행복할 수 없어요.

저는 '문화'의 방향, '소비'의 방향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 바로 이 대목에서 '운동으로서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는 거지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아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고 하는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의 '교육' 말이지요.

이제까지는 잘 없던 새로운 모습의 농부, 그러니까 장가가는데 애 먹지 않아도 되는 농촌총각을 키워내는 일 아닌가 싶어요.

다음 글이 우리가 찾는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03. 3. 15).


"프레다 벤더는 팔꿈치에 기댄 채 그녀의 병실을 쭉 둘러보았다. 다른 산모는 화이트 부인뿐이었다. 간호원이 자신의 아기를 데리고 들어왔기에 그녀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두 번째 간호원이 화이트 부인의 아기를 데리고 왔다.

오, 불쌍한 아기! 저 아이가 맞게 될 세상은 어떤 것일까? 텔레비전에서는 음란한 영화들이 나오는 세상, 담배와 술이 판치는 세상, 기계와 스위치와 콘크리트 길의 세상에서 어떻게 자랄 것인가? 저 아이가 자라서 훌륭한 인물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프레다는 갑자기 달리 생각이 들었다. 화이트 부인 역시 나의 아기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진 않을까? 오, 불쌍한 아기! 너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운명을 타고났구나. 네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라곤 그저 평범한 농부가 되는 것 뿐. 항상 손발이 힘들게 일하고, 평생 땀을 흘리며, 자동차나 텔레비전 같은 쾌락과는 멀어져,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하고, 대성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것은 아예 갖지도 못할 저 불쌍한 녀석…

두 아기가 서로 다른 환경에 태어났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화이트 부인의 아기는 멋진 외모와 두뇌, 돈과 명성, 쾌락에 가치를 두는 세상에 태어났고, 벤더의 아기는 원만한 성격과 양심, 도덕, 그리고 다른 이들의 위에 서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세상에 태어났다(브래드 이고우, 아미쉬공동체, 들녁, 310~311쪽)."